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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Aug 31. 2021

내가 드러나는 글을 쓴다

제일 좋은 글은 당신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나탈리 골드버그 Natalie Goldberg


궁금한 게 있으면 책부터 찾아보는 게 습관입니다. 

가장 빠르고, 편하고, 번거롭지 않은 방법이 책을 들춰보는 일이니까요. 누군가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고, 서론이든 결론이든 원하는 부분부터 확인할 수 있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정도면 노력과 비용대비 가장 가성비 높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주제도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검색을 할 때도 있지만 아직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키워드라도 이미 누군가 책으로 엮어 놓은 걸 보면 책으로 만나는 지식의 방대함이 놀랍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합니다.  


작가를 동경하는 마음 때문인지 누군가 추천한 책 제목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무려 86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20년이 넘는 동안 독자와 만난 책을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었습니다. 디테일한 기술보다 작가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각 챕터는 2~3페이지 분량으로 글쓰기와 명상에 대한 작가의 솔직담백한 이야기입니다. 빈 종이 앞에서 우리와 똑같이 걱정하고 부담스럽지만 어떻게 한 페이지 씩 써 내려가는지 누군가의 진솔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기분입니다.


처음 표지를 보고 '제목 참 살벌하네~' 싶었습니다.

꾸밈없이 최대한 진솔하게 쓰라는 말일 텐데, 뼛속까지 내려가라니... 작가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핵심은 기술이나 형식보다 내용의 깊이인가 봅니다.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곰곰이 나의 쓰기를 돌아봅니다. 

글을 쓸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하고서야 본격적인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제목을 달고, 퇴고를 하고,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처음엔 순수하게 내 생각을 담은 문장들이 플랫폼을 통해 발행하는 일이 그저 설렜습니다. 주제도, 내용도, 브런치 '작가'인 내가 자유롭게 정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막막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일이 몇 곱절 까다로웠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밖으로 꺼내 놓으려니 설익은 과일처럼 풋내가 났습니다. 


글을 쓸 때 느끼는 막막함. 그 이유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인데 장문으로 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체계가 없는 생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글감을 머릿속으로 한참을 굴리고, 시간을 들여서 음미하는 예비 동작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내가 표현하고 싶은 줄기가 스스로 명확해졌습니다. 이때 도움이 된 것은 일기처럼 가볍게 기록거나 산책, 명상하기 입니다. 보통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지 않도록 가볍게 비우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신기하게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두루뭉술하던 것들이 명료해집니다. 

문장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줍니다. 읽으면서 어색한 부분은 솎아내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수정하는 과정, 이 자체로 뭔지 모를 답답함을 해소해주는데요. 현재의 막연한 감정이나 생각이 문장을 통해 구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민이 있을 때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것처럼 한껏 마음을 털어낸 후 찾아오는 가벼움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쓴 글을 읽어 봅니다. 

가끔은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을 들여다보며, 글이란 참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설계한 뼈대에서 나온 결과물이기에 여실히 글쓴이를 보여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에서 한결같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처럼 나의 글에서도 결이 드러나겠지~ 싶습니다. 

생각의 넓이, 감정의 깊이, 지식의 정도... 숨기거나 꾸민다고해서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쓰면서도 느낍니다. 그러니,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는 말은, 있는 체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작가의 생각을 담으라는 격려의 말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이도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지만 진실할 수는 있습니다.


브런치가 좋은 이유는 평범한 작가들의 솔직한 사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뭔가 있어보이게' 써야 할 것 같은 제 편견을 깨 주었습니다. 너무 어설픈 글이 아닐까? 고민하기 보다는 현재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꾸준히 쓰는 것, 이제 막 쓰기를 시작한 나에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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