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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Feb 01. 2016

오래된 집에서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의 어느 세입자 5

 



 오랜 시간 감춰 있던 한옥의 본모습을 찾아가다.


2015년의 서울, 고층 건물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산새를 훌쩍 넘어버린 초고층 건물이 눈에 띈다.


 우연히 과거 신문에 난 도심 주거형 한옥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1930년대를 기점으로 해방 후 60년대까지 활발히 조성된 개량 한옥이 들어선 주거지를 다룬 이야기였는데, 재미있는 점은 도심을 둘러싼 대단지로 조성된 주거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현재와 꼭 같다는 것이었다. 재개발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건축되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를 놓고  뭇사람들이 우려를 표하듯 당시에도 개량 한옥으로 조성된 '닭장'같이 꼭 같은 모습으로 구획된 주거 지구를 도시 경관을 해치는 흉물스러움의 상징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한 때,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주거 양상이 널리 퍼져갔다. 지금도 여전히 아파트 라이프스타일은 유효하지만 한 편으로는 개성 있는 각양각색의 주택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기도 하다.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거주하는 집의 모양새는 하나같이 다른 모습을 띄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주인이 손수 집을 지어야만 했으므로. 

 

여전히 흐르고 있는 골목길 사이로 / 도시형 개량한옥이 사라진 자리에는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한 때 즐비한 한옥집 사이에서 이웃의 옷가지를 관리하며 성업을 띄었을 오래된 세탁소. 어떤 해석이나 편견도 덧붙여 지지 않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골목 일대를 감싸 안은 듯


 일제 시대 근대화를 겪으며 도심지로 대거 유입된 인구는 주거 환경을 포화상태에 이르게 했다. 그리하여, 소위 '집 장수'라 일컬어지던 건설 업자들은 필지를 쪼개어 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고, 소형 개량 한옥은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주거형태로 도심지 곳곳을 점거하게 된 것이다. 


근대주거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익선동 일대

 

 현재 도심 속 한옥지구는 시 관할 아래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구획 당시 한옥 주거 지구가 서서히 신식 건물로 대체됨에 따라 희소가치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재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선 도심 주거형 한옥. 어떤 지구는 시 당국과 건물주의 이익이 상충되어 방치된 채 숨을 헐떡이며 폐허의 아우라를 풍기고(따라서 역설적으로 힙스터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 어떤 지구는 시간이 멈춘 듯한 잔잔한 삶이 지속되는 공간을 지금 이 순간까지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다양한 형태를 모색 중이다.  


  

  한옥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품에서 아파트 입성을 거쳐, 원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현재. 서울 도심지 올드타운의 20평 남짓한 이 소형 주택이야말로 상기 역사를 간직한, 여전히 건재한 오래된 집 중 하나이다. 


 이 집과 처음 마주했을 땐, 허름한 외관과 구식 기반 시설, 좁은 골목을 통해 무거운 짐을 손수 옮겨야만 하는 불편함, 인터폰은 고사하고 초인종 없이 대문을 두드려야만 안과 밖이 소통할 수 있는 아날로그스러운 장치, 그리고 집안에서 풍기는 특유의 오래된 냄새로 인해 인생의 경험치가 날로 쌓여가는 듯했다. 



 그러나 고양이 미셸이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옥상과 마당이 있는 이 작은 한옥을 만끽하는 듯 보였으므로 미셸의 동족이 한 마리 더 늘어난 채 그럭저럭 잘 지내 온 것이 3년. 둘은 이 작은 한옥집 창밖으로 펼쳐지는 찰나의 순간을 같은 시선으로 교감할 만큼, 겨울이 오면 한기가 서리는 집 안에서 따듯한 온기를 서로 나눌 만큼,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집과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판도라의 천장을 열다



 예상과는 달리 대들보며, 서까래, 그리고 회칠마저 양호한 상태가 아닌가! 다만 복개된 천장을 건드릴 수 없던 이유는 가운데 한 칸의 측면 천장으로 흙더미가 꽤나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서까래가 부러질 정도로 훼손되었다면 복개된 천장을 드러낸다 해도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대들보며, 서까래, 그리고 회칠마저 양호한 상태가 아닌가! 다만 복개된 천장을 건드릴 수 없던 이유는 가운데 한 칸의 측면 천장으로 흙더미가 꽤나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서까래가 부러질 정도로 훼손되었다면 복개된 천장을 드러낸다 해도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화근은 형광등이 달려있던 천장의 바로 그 구멍이었다. 그곳을 스쳐갈 때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환상적인 천장의 서까래와 회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다. 손바닥 만한 크기로 뚫려 있던 구멍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 어떻게든 삽을 뜨기로 마음이 기울어 버린 우리는 벽체와 천장을 휘감고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기로 했다. 




 모서리 가장자리를 뜯으며 천장을 가리고 있던 합판을 기울이자 먼지와 돌덩이가 순식간에 떠밀려 내려왔다. 이미 부러져 버린 서까래 또한. 지붕 아래 수 십 년간 바짝 마른 상태로 쌓여 있던 먼지는 속수무책으로 공간을 뒤덮어 버렸다. 묵직한 돌덩이를 비롯한 폐자재가 굉음을 내며 바닥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슬로우 모션으로 펼쳐지는 중이었다. 약 10초나 흐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당으로 뛰쳐나와 안채로 연결된 문을 모조리 닫고, 둘이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방 안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돌조각 같은 것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흙더미 사이로 박히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5분쯤 흘렀나. 500시간이 흘러간 듯한 시공간의 상대성. 


최초로 집을 지었을 때의 흔적이 드러난 한 벽면. 진흙과 대나무, 짚 등을 엮어 벽채를 메꾸던 전통 방식이 드러나 있다.


 모서리 가장자리를 뜯으며 천장을 가리고 있던 합판을 기울이자 먼지와 돌덩이가 순식간에 떠밀려 내려왔다. 이미 부러져 버린 서까래 또한. 지붕 아래 수 십 년간 바짝 마른 상태로 쌓여 있던 먼지는 속수무책으로 공간을 뒤덮어 버렸다. 묵직한 돌덩이를 비롯한 폐자재가 굉음을 내며 바닥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슬로우 모션으로 펼쳐지는 중이었다. 약 10초나 흐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당으로 뛰쳐나와 안채로 연결된 문을 모조리 닫고, 둘이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방 안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돌조각 같은 것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흙더미 사이로 박히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5분쯤 흘렀나. 500시간이 흘러간 듯한 시공간의 상대성. 


 뿌옇게 집안을 가득 메운 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리려면, 반나절은 꼬박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넋이 빠져버린 두 영혼과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안채는 다음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드러난 공포의 판도라 상자는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목재를 갉아먹는 곤충인데 이곳에 지내며 종종 목격하곤 했던 날개 달린 검은 벌레가 이토록 난봉꾼이었음을 비로소 알아버린 것이다! 서까래뿐만이 아니다. 목재로 된 한옥의 구조물이라면 무자비하게 점령해 버린다. 오랜 시간 합판과 시멘트, 종이 벽지 등에 꽉 막혀 지내다가 이제야 숨을 쉬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기자.  


상처 투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세를 뽐내는 오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엄 있는 자태로 드러난 오량의 구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했다. 지체할 것 없이 이 한옥의 본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일단락 짓길. 보수를 재촉하는 기운이 서까래와 대들보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풀 먹은 벽지. 여느 단열재만큼이나 두텁게 벽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벽지를 차례로 벗겨내자 최초로 공간을 감싸 안았을 초배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1988년에 발행된 일간지.   



 그때 그 시절 유행하던 벽지의 역사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던 순간. 뜯어내는 족족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다가 거의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낸 한 벽지의 패턴에 시선을 사로잡혀 잠시 작업 속도를 늦추던. 



 번뇌에 들게 한 문제의 오량식 천장. 왼쪽은 이미 부식이 진행되어 판낼 따위로 서까래 사이를 받쳐 보수해 놓은 흔적이 띈다. 서까래 사이의 흙더미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렸다. 오른쪽이 한옥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 서까래 두 개가 떨어져 나가고 기왓장까지 드러나버린 곳이다. 저 틈 사이로 쏟아져 내린 흙, 돌덩이만 해도 마대자루 다섯 포대. 어림잡아 20kg / x 5 = 100kg가량. 



 을지로를 오가며 부자재를 실어다 나르길 수 차례. 주차 위반 딱지 또한 등기로 열심히 수령해 가며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 또한 지새웠던. 핸디코트와 우레탄, 마스킹 테이프, 헤라와의 싸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한옥 본래의 원형. 공사를 시작하기 전, 한옥집 한가운데 막걸리와 북어채를 두고 성주신께 고사를 올린 정성이 닿았는지는 몰라도 무탈하게 이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는데.


나를 둘러싼 공간에서 펼쳐지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하여


꼬박 한 달이 걸린 공사 끝에 겨우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세간살이

 

 부러진 서까래 사이로 쏟아져 내린 흙과 돌더미 사이에서 출토된 부자재 / 동시에 너무나도 사적인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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