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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Dec 09. 2015

한옥의 겨울나기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의 어느 세입자 4





기분 좋은 불편함이 있는 한옥에서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점점 겨울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한기가 서린 건조한 동절기의 기후 속에서 마음을 내어서라도 간간이 수분을 보충해야만 하는 계절이 온 것이죠. 실내 공기를 데우기 위한 난방열까지 더해지니 잘린 나뭇가지의 축 늘어져 있던 잎사귀들은 빳빳하게 말라 갑니다. 이 상태로 아마 몇 년 동안 유지되겠지요.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그간 잊혀 있던 털실 뭉치들이 오랜만에 겨울의 낮게 내리쬐는 햇살과 조우합니다. 퇴색된 기억을 더듬어가며 손끝이 기억하고 있는 감각을 좇아 짬이 날  때마다 한 올 한 올 실을 엮어 나가는 것도 겨울의 소일거리 중 하나이죠.



 볕이 떨어지는 각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태양이 지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짧다는 동지의 절기를 곧 목전에 두고 있죠. 무자비하게 내리쬐던 직사광선을 처마 끝으로 쉴 새 없이 튕겨내느라 정작 집 안으로는 빛을 들이지 않던 여름날의 한옥집, 겨울이 깊어  갈수록 완만하게 비추는 낮은 각도의 태양빛이 처마 밑으로 은근히 침투해 집안 깊숙한 구석까지 잦아듭니다. 좀처럼 볕이 들지 않던 은밀한 음지를 점령해 버린 귀하디 귀한 겨울의 화한 빛을 잡아두고도 싶지만 조각난 오렌지빛의 따스함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말죠.



 며칠 전 밤과 아침 사이 제법 흩날리던 함박눈이 채 녹지 못하고 이웃집의 기왓장 사이에서 얼음 덩어리가 되었군요. 공기는 쌀쌀하지만 태양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틈을 타 옥상을 정리하기 위해 사다리 발판을 내딛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실내로  들여놓던 장미는 노지에서도 월동이 가능할 만큼 장성했습니다. 뿌리 속이 얼지 않을 정도로 흙을 더해 깊숙이 묻어두기만 한다면 별 탈 없이 겨울을 나겠지요. 배수로 난간에 쌓인 낙엽과, 고사한 식물의 잔해들 또한 모아 한 곳에 담아 두고요.  



 낙엽과 흙더미 속에 파묻혀 월동을 준비하던 고양이의 허브 '캣닢'도 작은 화분으로 옮겨와 실내로 들입니다. 소리 없이 가장 먼저 봄을 알려 오는 식물이기도 하지만 겨우내 야옹이들의 간식이 필요해서요.



스쳐갈 때마다 마음 한 편이 든든해 오는 겨울의 과일청.  



 한층 차갑게  내려앉은 묵직한 공기층이 맨살에 부닥쳐 올 때마다 두툼한 옷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 입게 됩니다.



언제나 풍성한 고양이의 털 또한 겨울철이 되면 더욱 부풀어 오르는 듯 보입니다.  



이불 아래 두 겹으로 체온을 유지해 줄 푹신한 담요를 감싼지는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네요. 올 겨울도  어김없이 숨 쉬는 한옥의 외풍을 막아 줄 일명 '단열 뽁뽁이'가 자연스레 등장했습니다.



집안을 장식하고 있던 늙은 호박도 서늘한 마당 한 편으로 옮겨 두고서 본격적인 월동 준비를 시작합니다.  



 초여름 수확된 햇마늘이 벽에 걸린 채로 건조한 대기 속에서 바짝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필요한 만큼 손질해서 사용해 왔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푸른 싹이 나고 썩어버리기 때문에 알알이 껍질을 벗겨낸 뒤 냉동 보관해 둘 생각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상태가 양호합니다. 마늘 대가리를 도려내고 얇은 막으로 감싼 속 껍질을 벗겨냄에 따라 진득한 마늘의 진액이 손끝으로 엉겨 붙어 가네요.



 서리가  내려앉을 때 즈음 수확한다는 겨울 콩 '서리태' 도 한 꾸러미 쟁여 놓았습니다. 콩껍질이 바싹 마른 뒤에야 단단하게 여문 콩을  골라내는데요. 미루고 미루다 월동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 봅니다.



 가을날, 탈곡을 마친 뒤 너부러진 볏단 사잇골로 마른 먼지더미를 마셔가며 수확한 햇땅콩도 껍질 속에서 알알이 꺼내어 두고요.



늦은 감이 있지만 배추와 무, 파도 겨우내 보관을 위해 나름의 옷을 입습니다.  



 묵은지를 뒤로 하고, 요즘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오르는 올해의 어머니표 김장 김치로 쌀쌀한 날씨에 은근히 저하된 식욕을 돋우어 봅니다.



 마당으로 들이치는 찬바람에 출출함이 배가되던 차에 배추를 다듬으며 벗겨 놓은 널찍한 겉잎으로 밀가루 개인 물에 적셔 심심한 전을 부쳐 봅니다. 경상도 북부 지방에서 흔히 먹는 것으로 뭇사람들에겐 생소한 음식이죠. 아무런 밑간도 하지 않은 전에 간간한 양념장과 곁들여 먹으면 기름에 부쳐진 밀가루의 고소함과 촉촉한 수분을 가득 머금은 배추의 단맛이 어우러져 별미를 선사하죠.



따듯한 봄이 올 것을 알기에
정성스레 겨울을 준비해 봅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부쩍 이나 앞당겨진 요즘, 따스한 겨울의 볕이 금세 달아날까 봐서 황망하게 바지런을 떨며 보낸 어느 겨울날의 일상. 겨울이 올  때마다 옷장 깊숙한 곳을 들락날락 한 지 10년이 지나가고 있는 두툼한 모직 코트 속으로 저물어가는 태양빛이 내려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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