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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Feb 02. 2016

집을 고치다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의 어느 세입자 6



오랜 시간 감춰져 있던 한옥의 본모습 둘러보기



 과거에 지어진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집 대문에는 열이면 여덟 아홉, 도성 성곽문을 본뜬 금속 장식의 디자인이 문의 정 중앙을 점하고 있다. 오래전에 장착된 것과 비교적 최근 설치한 잠금장치가 불규칙하게 중첩된 한옥의 대문은 마치 여러 사람의 소장자를 거쳐감에 따라 여백 위로 소유자의 낙관이 쌓여가는 산수화의 모습 같이 느껴진다. 한 때 이 집에 머물렀을 누군가의 손때가 시도 때도 없이  묻어났을 생활의 흔적들. 그리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습관.  


서까래의 미학


천장을 올려다본 서까래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붙인 이미지(왼쪽부터 현관, 1번, 2번, 3번칸이다.)


 삼량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으나 안채의 가운데 칸으로는 멋 부린 오량의 천장 구조가 위용 있는 자태를 뽐내며 중앙을 점하고 있다. 그리고 반전된 'ㄱ'자로 꺾이는 모서리 부에 위치한 한 칸은 방향을 틀어 서까래를 얹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천장 구조로 엮인 한옥의 세 칸. 대들보 아래로 칸을 구분 짓는 미닫이 문이 달려 있던 문틀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나 추측컨데 1988년 이후(초배지로 사용한 신문지가 1988년자 일간지였던 것으로  미루어)문을 없앤 뒤, 세 칸을 합쳐 커다란 안채로 사용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천장 위로 삼량의 서까래가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본래의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던 이 집에서 한옥의 요소가 유일하게 드러나 있던 곳이 현관의 서까래였다. 그렇게 안채와 일자로 연결된 천장의 구조가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고재 테이블 : 한옥의 구석진 곳에 숨겨져 있던 선반의 탈바꿈



 수십 겹으로 쌓인 도배지를 벗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오래된 나무판. 천장에 매달아 수납 용도로 쓰일 당시 고정을 위해 뚫어 놓은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다. 꽤나 묵직한 통나무 판재로, 다리를 달아 좌식용 테이블로  재탄생했다. 그렇게 소파와 러그, 고재 테이블이 놓인 '1번 칸'은 좌식의 형태로 활용 중이다.   




공사 당시 '판도라의 천장'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에게 번뇌를 안겨 주었던 공간.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로 인해 서까래를 비롯, 서까래 사이를 받치고 있던 흙과 돌더미가 무너져 내린 상처투성이의 천장. 완전히 부러져 버린 두 개의 서까래는 빠져버린 그 모습 그대로 보수를 마쳤다.



차마 폐기하지 못하고 남겨둔 상처 투성이의 서까래. 묵직한 통나무의 부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벌레가 갉아먹은 속은 텅 비어 있다.  





묵직한 통나무에 홈을 파 미닫이 문을 끼워 넣었을 흔적. 기둥 중앙부에 재단된 나무가 끼워졌을 틈을 나무 조각과 시멘트 따위로 메꾸어 놓은 흔적. 저물어 가는 태양이 낮은 각으로 빛을 비추며 침실을 밝히던 순간. 세월을 등에 업고 각종 자재들로 덧칠되어간 한옥의 한 벽면.



그리고 다시 지속 중인 한옥에서의 일상. 여느 겨울날의 풍경. 오후의 빛을 걸러내는 블라인드. 현재 온도 15도, 습도는 52%.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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