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stain Life Apr 22. 2016

루꼴라 피자

옥상정원의 루꼴라





 루꼴라 rucola, 프랑스 말로는 로켓 roquette. 종묘상에서 상점 주인에게 루꼴라 씨앗을 달라고 했더니 '로켓 샐러드'라고 표기된 봉투를 건넸다. 루꼴라가 로켓인가? 어련히 맞겠지 하며 군말 없이 가져다가 씨앗을 심었더랬다. 다채롭던 빛깔로 옹골차게 시선을 사로잡던 그 씨앗을. 한 달 사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라났다. 한 잎사귀를 톡 떼어 염소처럼 질겅질겅 씹었더니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 맞다. 고소하며 쌉싸름하기도 하고 매운맛까지 감도는. 동일 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제각각의 색채를 띄던 씨앗이라 그런가, 그 맛도 퍽 다채롭다.


 루꼴라를 입에 넣으면 어느 시절의 감각이 스쳐간다. 햇살은 미지근하고 바람은 찼던 봄의 새내기. 어설픔 지수 100이었던 스무 살.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온전히 반응하고 집중했던 시절. 그 무렵, 대학가 화덕피자 전문점에서 루꼴라 피자를 처음 접했다. 피자 위에 풀(?)이 올라간 것도 문화충격인데 그 맛 또한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처음에 받은 강렬한 느낌도 잠시, 이내 고소하고 맵씰한 그 맛에 매력을 느꼈다.

 


  작은 텃밭 화분이 루꼴라 잎으로 포화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수확을 미룰 수가 없겠다 싶어 토마토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마침, 완숙의 정점에 오른 토마토를 헐값에 팔고 있다. 토마토 페이스트를 만들어 도우 위에 얹어 루꼴라와 곁들여 먹으면? 



 수많은 쿡방 TV에 등장한 토마토 껍질 벗기기. 드디어 내 손을 거치게 되었구나. 토마토는 열 십자 무늬로 칼집을 내어 준비한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더해 살짝 대쳐 내면 거짓말처럼 잘 벗겨진다. 손끝을 스치는 그 짜릿함이란. 한여름만을 기다린다. 아버지 밭으로 심어둔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릴 그 여름을. 토마토 좀 갖다 먹으라는 성화가 퍽 반가울 것 같다. 



껍질을 벗겨낸 토마토의 민낯. 스쳐가는 원색적인 이미지. 




매력적인 피사체 앞에서 집중력이 발휘, 오늘의 베스트컷. 




강렬한 여름의 태양빛 아래 바짝 말려둔 태양초가 빛을 발할 시간이다. 





 직접 만든 페이스트라니! 직접 말린 태양초, 내가 씨앗을 뿌리고 거둔 바질 잎에 파슬리까지!



토마토에 수분이 이토록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약불 위에 무심코 얹어 두어야 자작하게 졸아든다. 



 한동엔 냉동고에 화석처럼 처박혀 있던 모짜렐라 치즈가 동이 나고 말았다. 없는 대로 체다/고다 등등의 슬라이스 치즈를 총동원해 피자의 명색을 살려야... 루꼴라 잎사귀 사이로 빛날 파르마지아노 치즈 또한 썰어두고.  



 간밤에 숙성해 둔 도우의 상태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강력분을 쓰더만, 이 또한 동이 나 얼마 남지 않은 중력분을 탈탈 털어 사용했다. 발효는 잘 되었으나 너무나도 질퍽한 도우의 상태에 덧밀가루가 필요한 다급한 시점. 



밀가루를 사러 슬리퍼를 신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 통밀가루 발견. 



 경험치를 자랑할 만한 내공의 아닌데, 어디서 본 것이 많긴 한가 보다. 틀에 맞게 도우 모양을 성형한 다음 토핑이 잘 베이도록 손가락으로 홈을 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도우 성형에 맞추어 뭉근하게 졸아든 토마토 페이스트. 



마지막으로 슬라이스해 둔 양파와 치즈 토핑을 얹으면 준비 완료. 



기쁨에 가득 찬 루꼴라 수확. 



오븐 너머로 치즈는 녹아가며, 후미진 레스토랑 뒷골목에서 풍기는 온갖 음식의 잡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물기를 탈탈 털어낸 루꼴라를 한두 장씩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피자 위로 흐트러 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한 입 베어 무니 갓 성인이 되고 난 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을 때 처음 접했던 루꼴라 피자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고소하고 맵씰하며 짭짜름한 기억.. 아니 그 맛이 나를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안내하는 듯하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어설프기도 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사랑스러웠던 풋풋한 새내기 시절. 내가 서툴게 만든 이 피자 한 조각에 그 기억이 토핑으로 올라와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