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stain Life Jun 16. 2016

카프레제_2016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토마토와 바질 잎사귀





 망종의 시기. 보리베기가 끝나고 모내기를 마무리 지으면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고 했다. 정말로 그러하다. 끊임없이 비가 내리니 태양빛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무자비한 여름의 쨍한 직사광 대신 축축한 잿빛 대기는 어떤 풍광을 그려낼까. 연일 내리는 비로 호수에 연결된 수도를 틀어 옥상 화분에 일일이 물을 대주어야 하는 수고를  덜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높은 습도와 따듯한 공기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생장하는 식물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살피는 것은 또 다른 유희. 



 토마토가 아주 제철은 아닐 것이다. 이제 막 싱그러운 그린 토마토가 굵은 열매를 탐스럽게 맺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욕심을 부려 3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토마토 모종을 심어 놓았더랬다. 줄기 밑동부터 바알갛게 익어 올라오는 옥상 정원의 토마토. 마침 바실도 꽃대가 올라오기 전 싱그러운 잎을 틔우고 있다. 



 주방 가장 높은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지난 가을의 잣. 잣에 대한 인연은 단연, 바실 페스토에서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구하기도 어렵고, 귀한 몸값을 자랑하는 탓에 페스토용 견과류는 아몬드, 호두 등으로 대체하곤 했다. 우연히 들른 잣나무 숲 캠핑지에서 낙엽 아래로 무심하게 떨어져 있던 잣 방울을 주워다 열매만을 톡톡 골라 놓았더니 이토록 유용하다.  



 단단한 겉 껍데기를 까는 것이 조금 귀찮고, 속껍질을 제거해야하는 것이 번거로우며 사방으로 튀는 뾰족한 껍데기 파편이 발바닥을 위협하지만. 힘 조절을 잘 못하면 잣 열매가 으스러지고 마는 불상사도.  



무엇이 잣이고, 치즈인지 구분이 잘. 



 잘게 으스러뜨린 재료들과 소금+후추의 간으로 마무리. 햇마늘이 무척이나 좋던데, 마늘 향이 강한 듯 싶어 첨가하지 않는 레시피를 고수하게 되었다. 토마토와 치즈를 차곡차곡 쌓고서 올리브 오일에 버무려 곁들이면 된다.



오, 흐린 날 옥상정원의 토마토. 구름 뒤에 모습을 감춘 태양빛마냥 검붉게 빛나고 있구나. +_+ 



 준비해둔 페스토 재료 위로 올리브유를 듬뿍 담아 둥글게 둥글게 비벼서 섞으면 재료들이 서로의 향을 부닥쳐가며 주체할 수 없는 풍미를 풍겨낸다.  



켜켜이 쌓여가는 카프리식 샐러드,
caprese. 


이것도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곱게 갈린 페스토보다는 서걱서걱 씹히는 입자의 식감을 좋아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나의 카프리식 샐러드. 내년에는 모양이든, 맛에든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지. 올해의 카프레제는 무언가 좀 단정해 보인다고나 할까. 가운데 던져 놓은 바질 잎 때문일까? 꽃 장식 같기도 하며...



한 잎 베어 물기 전, 달콤한 꿀을 서너 바퀴 돌리고. 앞접시에 덜어 성큼 썰어낸다. 





이전 02화 초여름, 상큼하게 과카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