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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타올 Dec 15. 2022

아파트의 복수, 이사를 떠난 직후 시작되었다

집짓기는 개뿔... 닥치고 아파트에 살았어야


모두가 추앙하는 존재라고 해도 누군가는 '별론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취향 좀 다르다는 이유로 농락에 휘말려 몇 년 치 연봉과 드림카를 허망하게 날린 대환장 파티 같은 이것은 분명 치정극이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주제에 아파트가 싫었다. 정확하게는 아파트의 가격이 싫었다(?). 


아파트는 천장바닥좌우 윗집옆집아랫집 사방팔방이 붙어 있는 공동주택이다. 이를테면 수백 세대가 집을 공동구매 한 셈인데 헉 소리 나는 부적절한 가격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택시보다 비싼 버스요금은 아무래도 합당하지 않다. 


오늘의 가해자가 내일은 피해자로, 돌고 도는 '층간소음 뫼비우스의 띠'는 집에 대한 정의를 신박하게 재정립했다. 


첫 아이가 배밀이를 시작하자 국가통합인증마크(KC)가 보증하는 고퀄의 화이트 웜톤 매트로 체육관 부럽지 않은 시설을 갖췄다.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질수록 매트 면적은 늘어났다. 집인지 체육관인지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지만 누구도 감히 힘차게 걷거나 당연히 뛸 수 없었다. 그 고통의 연속성은 도무지 이번 생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집인지 체육관인지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지만 누구도 감히 집에서 힘차게 걷거나 당연히 뛸 수 없었다.


아파트를 싫어하는 취향은 뜻밖에도 우아하게 자존감을 지켜줬다. 수십억 호가하는 아파트도, 그들이 사는 세상 누군가도 '너네 자랑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쯤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그저 우리들은, 비싼데 불편한 아파트에서 살아내야 하는 가엾은 중생일 뿐이었다.


아무리 럭셔리한 아파트라도 '노잼'이었다. 흥미도 욕망도 생기지 않았다. 20평 아파트에서 10년을 살고 아이들은 커갔지만 평수를 넓힐 계획은 세울 필요가 없었다. 40평이든 80평이든 그곳이 아파트라면 엎치나 메치나 였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아파트를 벗어날 방법 찾기에 몰두했다.


아파트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세상 물정 외면하며 해맑게 살던 내게 평소 애정하던 지인이 조언을 건넸다. 아파트 청약이라도 넣어 보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너만 가난하게 살 거니' 걱정하는 진심이 담긴 다정한 표현이었다.


지역 아파트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었다. 아파트로 큰돈 만졌다는 주변인들 소식도 흔하게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뚝심 있는 '아파트 프로 불편러'였으므로 '아파트에서 살기 싫다' 비장하게 선언했다. 참다못한 다정한 지인은 고구마 백 개를 삼킨 답답함을 토해냈다. "안 살면 되잖아. 오르면 피 받고 팔아!"

    


아하! 우영우 변호사 앞을 날아다니던 거대한 혹등고래가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기적의 깨달음이었다. 만약에 아파트가 돈을 벌어다 줬다면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건 아파트가 먼저 내게 모욕감을 줬다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 부모님은 광역시로 유학 간 삼남매의 평안을 위해 짐작건대 마이너스 통장을 바닥까지 긁어서 13평 주공 아파트 전세를 장만했다. 계약하는 날 특별시에서 내려온 화려한 복장의 집주인은 사기꾼이었고, 호구였던 우리는 전세 사기를 당했으며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다. 평안하지 않았던 아파트와의 악연을 끊을 필요가 있었다.


'넓고 최고급인 너의 아파트'가 '좁고 후진 나의 아파트'와 도긴개긴이라는 심각한 인식의 오류는 겁나 좋고 비싼 아파트에서 살아보지 못한 처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미천한 경험과 소소한 불편에 사로잡혀 대의를 놓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파트는 어쩌면 행복을 주는 집일지 모를 일이었다. 전 남친이 쓰레기였다고 연애를 포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연애는 계속되어야 했다. 황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약 통장 어디 있어?"

"청약 통장 없는데."

"헐. 나도 없는데. 왜 없지?"

"뭐어?"

"그럼 없다 치고, 만들면 되지. 당장 만들어서 오늘 아파트 청약 넣자. 피만 몇 억이 될 거래. 대박이지? 이제 우린 부자야."

"대체 뭔 말을 하는 거야?!"


무식은 죄가 없지만 예의 없음은 죄다. 청약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는 무식함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그런 판국에 신기루 같은 부당이익금을 꿈꾸며 들떴다니. 뻔뻔하게 버릇없이. 나를 '부자 엄마'로 만들어 줄 뻔했던 아파트 청약과는 허무하게 각자의 길을 갔다. 아파트는 역시 노답이야, 단순명료한 결론이 나쁘지 않았다.


감가상각되는 신비한 아파트


한편에는 미심쩍은 의문이 남았다. 전국 아파트가 싹 다 오르는데 왜 내가 사는 아파트 가격은 자꾸 내리는 걸까 궁금했다. 입사 지원서도 내보지 못한 대기업에서 만들고 가까운 대학 캠퍼스를 정원처럼 내려다보는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아파트인데. 최소한 물가 상승분만큼은 올라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에 남편은 어떤 전문가도 내놓지 못한 기똥찬 진단을 해냈다. 값 떨어지는 아파트가 '정상'이라는 것이다.


자동차를 몇 달만 타도 가치 평가에서 수백만 원이 차감되는 것처럼 시간 흐름에 따른 유형 자산의 가치 감소는 당연하다. 고로 사람이 사용해 낡아가는 집에 감가상각비를 적용하면 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우리 아파트가 정상적이라는 분석이었다.


듣고 보니 어디 한 군데 틀린 말이 없다. 이래서 어른들이 기술을 배우라고 했나 보다. 공대생 기술자 남편의 판단은 정확했다.


최저 기온을 갱신한 어느 겨울밤, 보일러가 멈춰 섰다. 감가상각 원칙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는 희귀한 우리 아파트는 스스로 정체성을 증명했다. 영끌해서 집 짓느라 한 푼이 아쉬울 때였다. '경축 아파트 탈출' 이삿날이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이었다. 야속한 보일러야, 조금만 더 버텨주지. 그간 불태운 정이 있는데. 매정한 귀뚜라미 같으니라고.


급한 대로 전기장판을 꺼내 온 식구 옹기종기 끌어안고 하룻밤을 보내는데,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캠핑 왔다 생각하며 오리털 파카 입고 이삿날까지 버텨볼까, 궁서체로 고민했다. 그러나 애 키우는 집에서 온수를 못 쓰는 상황은 난망하기 이를 데 없었고 별수 없이 애프터서비스를 요청했다. 보일러를 살피는 수리 기사님 앞에서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딱 한 달만 작동하게 아니 작동하는 척하게 해 주실 순 없을까요, 뿌잉뿌잉. 얼기설기 눈속임하고 튀어라 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마음의 소리 일발 장전하고 애타는 눈빛 발사하며 기사님을 협박한 파렴치한이었음을 자백한다. 기사님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사를 코앞에 두고 보일러를 교체(당)했다. 


'일반 보일러 vs 30만 원 비싼 콘덴싱 보일러'라는 답이 정해진 질문 앞에서 남편은 의아하게도 콘덴싱 보일러를 선택했다. 엥? 곧 이사 가잖아? 친환경 보일러 올해 지원금도 끝났다는데? 우리가 살 집도 아닌데 돈을 더 주고 굳이? 남편은 확고했다. 응, 더 주고 굳이 콘덴싱 보일러로 할게요.


참고로 남편은 '싸야 좋다'는 신념을 가진 최저가 검색계의 고인물이다. 


수년 전에 홈쇼핑에서 구매한 석 장에 4만 9900원 여름 바지를 올해도 어김없이 꺼내 입었으며, 앞으로도 주야장천 입으실 계획이 다 있는 분이다. 그런 너님이 대체 왜? 남편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시큰둥하게 답했다. 좋잖아, 지구한테.


하. 이 자식 매력 터지는 거 보소. 그래, 우린 지구인이었지. 우리의 소원은 남북통일이고 어릴 적 내 꿈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미스코리아)였지. 그리하여 반짝거리는 콘덴싱 보일러의 비닐도 뜯지 않은 채 우리는 아파트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한동안 기분이 근사했다. 아파트의 새 주인이 된 신혼부부에게 지구인 선배로서 임무를 완수한 뿌듯함이랄까. 감가상각되는 아파트에 살던 소시민은 그렇게 마음 부자가 되어 지구를 구했다면 훈훈했겠지만 아파트는 지독했다. 아파트를 얕잡아 보고 괄시했던 예의 없음을 잊지 않고 '사이다'로 화답했다. 


▲ 아파트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사를 하던 날이다.


이래도 아파트가 싫어?


이윽고 때를 기다려 왔다는 듯이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건 우리가 이사를 떠난 직후였다. 저 돈이면 2010년생 나의 프라이드 자동차를 레알 프라이드 넘치는 드림카로 바꿀 수 있을 텐데 생각이 스쳤다. '그럴 수 있지' 싶던 마음이 '어떻게 그럴 수가'로 변했다.


아파트값이 쭉쭉 올라 드림카 받고 몇 년 연봉을 더한 만큼이 되자 단전에서 깊은 '빡침'이 밀려왔다. 어리석은 나는 어째서 그깟 거 벌겠다고 안달복달 직장을 다녔을까. 아니다. 애초에 대학을 간 것부터가 문제다. 등록금, 생활비에 취준생으로 허비한 돈과 시간을 아파트 투자 완전정복에 쏟았다면 지금쯤 몰디브 앞바다 요트 위에서 모히토 빨고 있었을 게 확실했다.


그간 무시했던 아파트가 달리 보였다. 앞으로 이십 년을 죽어라 출근하고 그 돈을 몽땅 저금 한다고 해도 여기 저기 거기 아파트 시세차익보다 적은데? 저건 내 돈인 것인가, 네 돈인 것인가. 이게 맞는 건가, 틀린 건가. 아 몰라. 닥치고 아파트에서 살아야 했는데 뭐 하려고 집 짓는다고 '쌩쇼'를 했을까.


미련한 애송이야, 이래도 아파트가 싫어? 도시를 점령한 아파트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한없이 초라한 자아를 목격하며 공손한 자세로 항복했다. 네네, 정말 진정 잘 알았습니다. 아파트가 왜 비싼지 사람들이 왜 아파트를 추앙하는지요.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 해요. 이러다 다 죽어요.


바람이 있다면 부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잔인한 아파트가 벌이는 치정극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남북통일 찍고 세계평화를 이룬 미스코리아 지구인이 우주 수호를 위해 출정하는 심정으로 원대하게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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