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과 몰입'에 관한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퇴직 후 서울시 50+재단에 발을 들였다. 기왕에 알고 있던 시설인 터라 별 고민 없이 갑자기 많아진 여가를 소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지금의 일이나 활동의 영역보다는 교육 중심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눈길이 가는 몇 개 과정을 선택해서 참가했었다. 당시 재단의 대표 상품이었던 '50+ 인생학교'와 평소 관심이 있었던 '협동조합 전략과정' 그리고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퇴직 이후 강사 활동의 기회를 위해서 '전문강사 양성과정'정도였다. 10개월 여 정도의 서캠(50+재단 서부캠퍼스) 활동이 있었다. 과정마다의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커뮤니티 활동도 의미가 있었다. 당시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나에게는 그 시기가 5060의 갭이어(Gap Year) 기간이었다. 당시의 자세한 인사이트는 따로, 자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이때의 갭이어 기간이 나에게는 정말 귀중했던 '탐색'의 시간이었다.
당시 탐색의 과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때는 몰랐다. 당시의 확장 경험이 이후 얼마나 귀하게 작동할 거라는 걸 말이다. 50+재단 서캠은 나에게는 인생2막의 성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의도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서 내 2막의 밑 그림이 그려지고 윤곽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당시의 밑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다.
효과적인 2막의 탐색을 위해서는 모든 영역에서의 확장이 필요하다. 현재 집안 소파와 물아일체 상태라면 공간(영역)의 확장이 필요하다. 늘 마주하는 공간에서의 새로운 탐색을 통한 인사이트를 얻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다. 확장된 공간에는 결국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같은 고민을 가진 동년배와의 네트워크 확장, 커뮤니티의 확장으로 이어져 공간에서의 수많은 작당들이 활개를 친다. 기관의 지원을 받으면 효능감이 훨씬 커진다. 결국 나의 확장으로 이어져 나도 모르게 방치된 나의 욕망의 실체를 마주하며 인생2막의 성공적인 첫 탐색을 마무리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서 옆에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들이 서있게 된다. 그 동지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2막을 응원한다.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이 시기는 현재까지 내 인생에 최고의 '몰입'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문강사 양성과정은 특별한 테마에 대하여 강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시강을 통해 자격증을 발급하는, 흔히 대하게 되는 시중의 과정이 아니고 강의 기본기에 대한 과정이었다. 과정 중에 본인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PPT를 제작해서 시범강의와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었다. 시강을 통해 두 명을 선발해서 그해 겨울 서캠의 계절학기 12시간 강의 기회를 주는 재미있는 이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운 좋게 두 명안에 선정되어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2시간(3h X 4회)이라니!! 고작 10분짜리 시강을 가지고 12시간짜리 강의로 창작을 해야 한다. 당시의 키워드는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 심하게 말하면 짐작하는 다른 언어도 있다.)였다. 유독 그 시기에 소위 혐오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된장녀'에서 '한남충' '개저씨'에 '틀딱충'까지, 한 때 유행처럼 퍼지다가 어느 시기가 되자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지나고 보니 그 시기에 그렇게 혐오단어가 흉흉했던 짐작 가는 이유가 있으나 이야기의 논점을 벗어나는 지라 생략하겠다. 어쨌건 당시 나는 그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보기에도 나를 포함한 개저씨들이 도처에 포진해 있는 상황이었다. 당사자인 내가 개저씨란 혐오단어를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개저씨의 유형과 특징을 살피고 누구나 개저씨 회피 노력을 통해 '품과 격이 있는 50+'가 되어야 한다는 스토리였다.
개저씨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12시간 강의를 만든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고 나만의 다양한 콘텐츠가 쌓여 어떤 주제를 던져 주더라도 어느 정도는 소화가 가능하다는 건방진 생각이 든다. 교육팀 근무했던 경험으로 대학교를 상대로 취업특강의 경험과 신입사원 교육 등의 강의 경험은 가지고 있다. 일정 포맷이 있는 내용으로 강단에 서 본 경험은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모든 게 달랐다 거의 ZERO! 상태였다. 10분짜리 시강을 위한 PPT가 딸랑 10여 장 정도였고 그것으로 12시간 강의자료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얻은 콘텐츠와 노하우, 그리고 내공은 현재까지 강의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한 달이 넘도록 매일 출근했다. 10분짜리 목차를 스토리 라인을 잡아서 12시간의 목차로 확대하는 것부터 목차에 따른 페이지마다의 키워드를 정하고 관련 콘텐츠를 찾고 공부하고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매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말로만 듣던 "몰입"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몰입의 열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도서관에 똬리를 틀고 앉아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하루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날이 수 차례 있었다. 배고픈 줄도 몰랐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문 닫을 시간 됐다고 퇴관 요청이 있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냥 재미있고 즐거웠다. 큰 깨달음도 있었다.
"일도 이렇게 할 수가 있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하고 싶은 일'이니까 이게 가능한 거다.
인생2막의 초입에서 나는 나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아니 지금도 순간순간 되묻는 질문이다.
내가 정말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활동은 무엇일까?
지금도 나는 이 질문들을 통해서 내 2막의 삶의 방향키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