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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r 31. 2019

엄마, 나 엄마 딸 맞아?

다리 밑에서 주어온 친 딸.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애들이 달마시안이라고 놀린단 말이야"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뱉었던 말이다. 나는 엄마 자식인데 왜 피부가 다르냐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질병에 대해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학창 시절 내내 몰랐다.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고, 크면 없어질 거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이 있었다.


전교생이 100명 남짓 했던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던 탓에 1학년 때 친구들이 6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다. 3학년 때였나? 그 날은 전학생이었던 남자애가 집에 가려는 나를 불러 세우고 목덜미를 붙잡고 도망가지 못하게 나를 구석으로 밀쳤다.


그 무리엔 적어도 3년 이상 함께 지낸 나만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같은 표정을 한채.


"너는 우리랑 달라. 그러니까 숨도 쉬지 마. 우리한테 전염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책일 질 거야?"


무서웠다. 전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5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조롱하는 시선들과 모습들이 나는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숨을 쉬면 공기를 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변하는 줄 알았다. 나는 세상의 암적인 존재인 건가?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매일매일 상상했다. 내가 죽는 상상을. 그땐 그랬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내일도, 모레도 반복될 거 같아서. 견뎌낼 자신이 없었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왜 말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땐 정말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는데.


내 낮은 자존감의 시작은 어쩌면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따돌림을 받았었던 그날부터.


"엄마, 나는 왜 엄마처럼 피부가 깨끗하지 않아?

나, 엄마 딸 맞아?"


씻고 나온 엄마를 보면, 늘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엄마 딸 맞느냐고.


얼마나 이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냐면, 어느 날은 꿈에서 진짜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며 내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메도 집 밖을 나서기도 했다.


'나는 엄마 딸이 아닐지도 몰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했어. 그러니까 친엄마 찾으러 갈 거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 피부질환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실 수도 있고, 모르실 수도 있는데요. 제게 있어서는 불행의 역사였던 이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써보려고 해요. 특별하진 않지만, 소소한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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