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모습이든 난 옆에 있을 거야.
“근데, 그거 어디 많이 아픈 거야?”
수술 후 드레싱 한 자리가 목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부위고 밴드도 손바닥만 하게 붙여놨으니 지인들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대충 얼버무리고 넘겼을 텐데. 이날은 무슨 일인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사실 희귀 피부질환이 있어.”
생각보다 지인들의 반응은 평온해 보였다, 일부러 그러는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그들은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난 후에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이 말했다.
“잘 자라줘서 고마워.”
먹먹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어떤 말보다 굉장한 힘을 가진 말 같았다.
나는 내 일이니까 내가 견디기에도 버거울 때가 많아서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아니, 이런 내 모습을 알고 다들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건 모두 내 곁에 있다는 거다. 나는 철저히 혼자 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누구도 떠나지 않았고,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한 명 한 명 털어놓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불안하기보다 편안해졌다. 십 년 묵은 체증이 가라앉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눈칫밥을 먹어 체한 상태인데 손가락 하나를 땄다고 체증이 가라앉는 것처럼.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하나를 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 그랬다.
“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이렇게 밴드를 왜 붙이고 나타나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미안하니까 조심스러우니까 묻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 네가 말해줄 때까지.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지도 몰라. 그리고 정말 네 곁에 남는 사람들은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이 없어. 그건 나도 똑같고.”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나 사실이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묘한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사람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정말 말해도 될까? 내가 생각하는 타이밍과 이 사람의 타이밍이 지금 이 순간이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