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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6. 2023

12화. 이게 대체 무슨 음식이오?

조선 분식집2

잠시 후 요리를 끝낸 환이 상을 들고 나왔다.

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국... 밥? 분명 탕국은 없었을 텐데...'


"아니! 대체 그게 뭐요?"


주막의 부엌살림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지라, 궁금해진 연아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밥 그릇에 담겨 이리 김이 나는 음식이 네 개나 만들어질 만한 재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직접 맛을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 탁 -


연아와 지혜의 일행이 앉아있는 평상 위에 자신 있게 상을 놓는 환.

그와 동시에 환의 요리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세 사람의 시선이 국밥 그릇으로 꽂혔다.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엌에 재료가 별로 없어서 그냥 있는 걸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국밥 그릇... 의 안에는, 탕이 없는 정체불명의 '밥'이 들어 있었다.


'탕이 없어? 비빔밥... 인가?'


게다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는 고소한 향이 은은하게 묻어있어, 안 그래도 허기진 그녀들의 코를 심하게 자극했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나는데... 이게 대체 뭐요?"


더욱 궁금해진 연아가 다그치듯 환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들기름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비빔밥인가 싶지만... 이리 뜨겁고... 또 나물도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지혜도 신기하다는 듯 연아의 말을 도왔다.


"우선 식기 전에 드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 설명해드릴게요!"


"잠시만요! 아씨 상은 따로 차려드릴게요! 저희들하고 겸상을 하실 순 없죠!"


"아니야.. 난 괜찮아 박주모! 그냥 같이 먹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씨가 우리랑... 그럴 순 없습니다."


하지만, 배고픔...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지혜는 이미 밥을 퍼서 자기의 입으로 넣고 있었다.


"아이참! 아씨...!"


- 오물오물 -


순간, 동시에 지혜에게로 향한 세 사람의 시선.


"어머나~!"


조심스럽게 한 숟갈을 떠먹은 지혜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음식입니까? 난생처음 맛보는 음식인데..."


"왜요 아씨? 맛이 없습니까? 이상한 게 들어있나요?"


"아니... 밥이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넘치는지... 이런 맛있는 밥은 내 생전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아!"


그러자 지혜의 뒤를 이어 밥을 맛본 사월도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요 아씨! 어찌 이리 맛이 좋을까요?"


그녀들의 반응에 더욱 궁금해진 연아도 냉큼 밥을 한 숟갈 떠먹어 보았다.


"아..."


지혜와 마찬가지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은 연아.


"이... 이게 대체 뭐요? 밥에 무슨 짓을 한 거요?"


연아는 숟가락으로 정체불명의 밥을 헤집어 보기 시작했다.


"김치에 파... 달걀... 그리고 쌀밥에... 들기름..."


"오! 역시 부엌 주인! 재료를 다 맞췄네?"


"그런데 말이오... 대체 이 감칠맛의 정체는 뭐요?"


"하하하! 역시 날카로우십니다 주모! 그건 솥에 남아있던 국밥의 국물이에요!"


"국밥... 국물?"


"부엌에 먹을게 너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싱거운 나물 반찬에 맨밥을 대접할 수는 없고... 지금부터 또 국밥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환도령 특제 볶음밥!"


"볶음밥?"

"밥을 볶아서 먹는다고요?"


'아... 아직 밥을 볶아 먹는 시대는 아니었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밥을 볶았다기보다는..." 

"국물이 남은 솥에 그대로 찬밥을 넣고, 국물과 함께 비비며 데우다가..."

"밥이 국물과 어우러져 적당히 뜨거워지면 여기에 다시 들기름을 붓고, 김치를 잘게 썬 것과, 달걀 그리고 파를 넣은 뒤 국자로 타지 않게 잘 섞은 음식입니다! 간은 소금으로 살짝만...!"

"그럼 볶음밥이 아니라, 섞은... 밥인가? 하하하!"


'그렇구나...'


환의 명쾌한 설명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연아였다.


"아 이건 진짜 맛이 좋아요! 특히 이 누룽지 또한 정말 고소하고 맛있군요. 이런 음식은 정말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대체 이런 음식을 어디서 배웠소? 청국? 왜국?"


"아... 하하하... 하하..."


'뭐라고 답해야 하나...'


"밥을 볶는 것은 원래 청국의 요리법이긴 합니다... 만!" 

"남은 국물에 김치와 계란을 넣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탄생... 아니 제가 이것저것 해보다가 고안해 낸 것입니다."


"아니, 대체 무슨 음식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저런 보잘것 없는 재료로 이런 맛있는 밥을 만들어낸단 말이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작은 식당... 아니 주막을 하나 하면서 음식을 했었... 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겁니다... 하하하... 하하..."


하지만 연아는 그런 환이 자신에게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주막은 어디에 있었나요? 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면 소문이 자자했을 것 같은데?"


환의 음식에 감동한 지혜도 궁금했는지 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아... 그것이... 그... 그렇습니다! 충청도 산골에 있는 작은 주막이라서... 그냥 동네 사람들만 아는 그런 수준이랄까... 하하하... 하하"


'충청도? 거짓말! 사투리가 하나도 없구먼...'


웬일인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연아는 환의 거짓말을 꿰뚫고 있었지만 어떤 말도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모를 수도 있었겠네요... 이리 맛있는 음식을 이제야 알았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맛있게 드셔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어느새 세 사람의 국밥 그릇은 싹싹 비워져 있었다. 

그릇에 남은 마지막 밥알과 건더기를 모아 입안에 집어넣은 지혜는 무척이나 만족한 표정으로 환에게 말했다.


"제가 최근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이 좋았습니다."

"혹시 다음에 제가 오더라도, 또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환...도련님?"


"아이고! 아무 때나 오세요! 이런 간단한 음식이야 언제든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게 간단하다고...? 허세 부리기는!'


두 사람의 대화도, 환의 요리도 왜인지 마음에 안 드는 연아였다.


**********


한편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주막을 나온 지혜와 사월은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 맛본 볶음밥의 만족감과 포만감은 그들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사월아! 정말 신기하지 않았니?"


"뭐가요 아씨?"


"우리가 방금 주막에서 맛보았던 그 음식 말이다! 볶음밥...이라고 했었지?"


"네! 아씨!"


"특별히 많은 재료가 들어간 것도 없고... 심지어 만드는 시간도 순식간이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내가 어제저녁에 먹었던 고기반찬 보다도 맛있었을까?"


"그냥 밥일 뿐인데 말이야..."


"그러게요... 저도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요. 특히나 양념이 밥알 하나하나에 골고루 스며들어 있어서, 정말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밥 양이 적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걸 다 비웠어! 평소 먹는 양의 두배는 족히 되었을 거야!"


"그랬나요? 저는 좀 모자라던데... 호호호"


"참으로 신기하구나... 지금 이리 배가 부른데도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그렇습니다요 아씨!"


"신기해... 음식도... 그걸 만든 사람도..."


"네? 아씨... 지금 뭐라고...?"


"아니... 그 음식을 만든 그분... 환 도련님이라고 했나?"


"네! 분명 그런 이름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쩜 그리 키도 크고, 말씀도 잘하시는지..."

"그런데도, 피부가 웬만한 여인네보다 더 하얗고 매끈매끈한 것도 그렇고..."


"네... 뭐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그렇기는 하더라고요!"


"아까, 환 도련님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을 때 말이야..."


"네!"


"어째서일까... 분명 이 분이 만들어주시는 음식이라면 맛이 있을 거야...라는 괜한 믿음이 생겼어! 이상하지?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그러셨나요? 전 그냥 말 많고 넉살이 좋은 정도로밖에는 안 보이던데요..."


"아니... 아니다!"

"자 어서 서두르자꾸나! 아버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먼저 집으로 가야지! 밖에 나간 걸 아시면 또 뭐라고 하실게 분명하니까!"


"네 아씨!"


웬일인지 아씨가 평소보다 말이 많다고 느끼는 사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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