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2
환은 전날 물지게를 지고 무리한 탓에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고... 허리 아파... 팔 아파... 다리 아파... 이렇게 힘든데 오늘 또 물을 길어야 하는 건가?"
나름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환이었으나, 익숙하지도 않은 무거운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긷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도령... 일어나셨소?"
하지만 이를 알턱이 없는 무심한 연아가 문 밖에서 환을 깨우기 시작한다.
'헉! 올게 온 것인가... 더 쉬고 싶은데...'
"환도령... 환도령..."
"으으..."
"이보시오 환도령! 아침이오! 어서 일어나시오!"
연아는 환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하려는 듯 연신 환의 이름을 불러댔다.
"아이참! 해가 중천에 떴단 말이오! 그만 자고 어서 일어나시오!"
"으아!! 알았어요! 알았다고! 일어날게요! 일어난다고..."
연아의 끈질긴 기상 시그널에 결국 환은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야 했다.
"네... 일어났어요! 그래, 대체 무슨 일이길래 사람을 이리 간절하게 깨우셨나요?"
환이 문을 열고 나오자, 오매불망 그가 일어나기만 기다린 듯 문 앞을 서성이던 연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일어났구려! 그래, 밤새 잠은 잘 잤소?"
"네... 뭐... 덕분에요..."
피곤과 짜증이 가득한 환의 얼굴.
하지만, 연아는 환의 상태가 어떤지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만 한없이 들뜬 표정으로 자꾸만 환을 재촉했다.
"어서 나와서 이야기를 좀 합시다!"
"네? 아침부터 무슨 이야기를 해요?"
"내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어서 밖으로 좀 나오시오!"
연아의 부탁에 마지못해 밖으로 나와 마루에 앉은 환.
여전히 졸린지 연신 하품을 해댄다.
"하암... 그래요! 하려던 이야기가 뭔가요?"
그런 환을 쳐다보는 연아의 표정이 밝다.
"환도령!"
"네..?"
"내 청이 하나 있소!"
"아침부터 무슨 청을? 거, 물이라면 내가 밥 먹고 바로 뜨러 갈 테니 걱정 말아요!"
"바로 그 밥 말이오..."
"네? 밥이 왜요?"
"지금부터 환도령이 아침밥을 좀 만들어주시오!"
"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 그대로 환도령이 우리의 아침밥을 만들어달라는 말입니다."
연아의 말을 들은 환은 자연스럽게 하얀 연기가 새어 나오는 부엌으로 시선을 돌렸다.
"밥 있구먼? 킁킁... 국 냄새도 나고..."
"나 배고프니까 장난치지 말아요! 밥을 먹어야 또 나가서 물도 길어오고 할 것 아닙니까?"
"오늘 물은 안 길어도 되니까! 빨리... 어제 그 음식을 만들어 주시오!"
"탕국은 이미 끓여놨소!"
"어제 음식? 아! 볶음밥?"
"그렇소! 바로 그 볶음밥을 만들어주시오!"
"아니... 아침부터 무슨 볶음밥을 먹자고... 난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 일단 부탁 좀 합시다."
"네네! 알았어요 알았어! 거 만들면 될 것 아닙니까?"
환은 연아의 청에 못 이기는 척 부엌으로 갔다.
이미 부엌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파와 김치 등 재료 손질도 되어 있었다.
'박주모, 센스 좀 있는데?'
- 탁탁 탁탁 -
- 치익치익 -
환은 연아가 준비한 탕국과 재료들로 어제와 똑같은 볶음밥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반숙 계란 프라이도 만들어서 완성된 볶음밥 위에 얹었다.
어제와 또 달라진 볶음밥을 보고 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이게 무엇이오? 수란(水卵)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확실히 계란을 밥 위에 이리 얹어 놓으니 뭔가 색깔도 예쁘고, 훨씬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 같소!"
"자! 그럼 내가 하는 대로 따라서 해봐요!"
환은 숟가락을 들고 계란 프라이를 반으로 잘랐다.
계란 노른자가 터지면서 흰자 위에 흘러내리고, 또 볶음밥으로 스르륵 스며들자 밥은 한층 더 맛있게 보였다.
"으음... 역시 볶음밥의 완성은 계란이지!"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연아는 어느새 군침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그럼 나도 한번 해 보겠소!"
연아도 냉큼 숟가락을 들어 환이 했던 그대로 계란 프라이를 반으로 잘라, 볶음밥과 함께 떠먹었다.
"으음..."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연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렸다.
"너... 너무 맛있소! 이게 정녕 내가 만든 탕국에서 태어난 음식이란 말이오?"
"하하하... 볶음밥은 원래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음식이니까요!"
연아는 쉬지 않고 볶음밥을 입으로 가져가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환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연아의 모습에 은근한 희열을 느꼈다.
어느새 바닥까지 그릇을 싹싹 비운 연아.
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더니 식사에 만족한 듯 배를 두드리며 평상에 드러누웠다.
"아... 정말 맛있게 먹었소... 어제 먹었는데도 전혀 질리지가 않고, 오히려 오늘 더 맛있게 느껴지니... 참으로 신기한 음식이오!"
"하하하! 그리 맛있게 먹어주니, 나도 기분이 좋은데요?"
"아니... 이런 음식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요?"
"이거 봐 이거 봐... 어제 분명히 말했잖아요! 내가 만들어낸 음식이라고!"
"말해보시오! 대체 음식 만드는 건 언제부터, 얼마나 한 거요? 보통 솜씨가 아닌데...?"
"음식...? 오래 했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도와서 하기도 했고... 또 학교에 호텔에..."
"학... 교...? 호... 뭐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러니까... 뭐 아무튼! 엄청나게 오래 했다는 뜻입니다! 흠흠!"
환의 말을 듣고 있던 연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환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이오 환도령!"
"네?"
"이 음식... 볶음밥? 이거 우리 손님상에 내놓읍시다. 그러면 분명 우리 주막도 예전처럼 손님들이 많이 들어올 거요!"
"예전?"
"우리 엄니가 있을 때는... 우리 주막에 찾아오는 손님들로 늘 문전성시였소!"
"우리 엄니가 워낙 한 미모 하기도 했고, 또 음식 솜씨도 뛰어나서, 이 근방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뭐 보시다시피 이렇소!"
"게다가, 얼마 전 저기 아래 큰 주막이 새로 생겨서... 그나마 있던 손님들도 빼앗기고, 이젠 단골손님들로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오."
"그렇군요!"
"그래서 내 이렇게 부탁하는 거요!"
"내가 만든 볶음밥으로 손님들을 불러 모으자... 이거지요?"
"그렇소!"
환은 연아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주막에서 요리를 하면서 지낸다?'
'그럼,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요리로 일도 하면서 주막에 계속 신세를 질 수도 있고... 그렇게 내 요리가 유명해지면, 선주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질 수도 있을 테고...'
'안 할 이유가 전혀 없군!'
요리를 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환. 다만 연아에게는 여전히 고민하는 듯 연기했다.
"음... 내가 원래 이 아무 데서나 막 음식 만들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박주모가 그리 청을 하니..."
"그럼 해주겠다는 뜻이오?"
"네... 뭐... 까짓것 할게요! 해! 대신!"
"대신...?"
"거... 물 길어오는 것... 그것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너무 힘들면... 이 입에서 단내도 나고... 그럼 음식 만드는데 지장도 생길 거고..."
"물 걱정은 하지 마시오! 장사만 잘 되면야... 사람을 써서 해도 되고... 안되면 내가 길어 오리다!"
"흠흠... 뭐 그렇게 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그럼, 이제 된 거요?"
"아! 하나 더!"
"하나 더...?"
"나 때문에 돈 많이 벌게 되면... 나도 돈을 좀 쓸 일이 있을 테니까... 적당히 좀 챙겨주시고..."
"새경 말이오? 걱정 마시오! 내 알아서 넉넉히 챙겨드릴 테니!"
연아와의 흥정에 성공한 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좋아요!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게요!"
"아이 좋아라! 고맙소 환도령!"
"하하하... 하하... 나도 좋네요..."
"그럼 당장 시작합시다!"
환이 결정을 내린 것을 확인한 연아는 마음이 급한지 바로 환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런 연아를 환이 만류한다.
"그전에 준비가 필요해요!"
"준비...? 어떤 준비 말이오?"
"우선... 솥뚜껑을 좀 사다 주세요! 가장 큰 걸로!"
"솥뚜껑?"
"네! 솥은 너무 깊기도 하고 여러모로 밥을 볶기 불편해요! 그러니, 솥뚜껑을 좀 사다 주세요!"
"알았소! 그거면 되는 거요?"
"그리고... 음식은 부엌이 아니라 마당 한쪽 구석에서 만들 겁니다."
"어째서 그러시오? 부엌을 쓰는 쪽이 훨씬 편하지 않겠소?"
"아니요! 밖에 돌을 쌓아서 작은 아궁이를 만들 거예요! 거기서 음식을 만들면, 편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냄새에 이끌려서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맞네! 냄새... 그럴 수 있겠소!"
"그럼, 내 그리 알고 준비하리다!"
"아궁이는 내가 만들 테니까... 박주모는 솥뚜껑을 사다 주시고..."
"그리고, 밥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밥도 좀 많이 해주세요!"
"알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