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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6. 2023

14화. 조선 최초의 주막집 볶음밥 탄생!

조선 분식집2

연아가 솥뚜껑을 사러 나간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가 부재중인 사이, 환은 마당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서 열심히 간이 아궁이를 만들었다.

그가 만드는 아궁이는 비록 투박하게 돌을 쌓아 올린 것뿐이었지만, 제법 모양을 갖춰가면서 상당히 그럴듯하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환은 그런 자신의 작품이 꽤나 마음에 든 듯 연신 뿌듯한 표정이다.


"아니, 박주모는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아까 새로 안치고 간 밥도 진작에 다 됐는데... 대체 장사는 언제 하려고 이렇게 늦어?"

"그 사이에 주막을 찾았다가 박주모가 없는 걸 보고 그냥 간 손님들도 있잖아?"


자신이 만든 아궁이와 주막 입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괜한 짜증을 내는 환.

아마도 자신이 만든 아궁이를 연아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데, 그녀가 오지 않자 조바심이 난 듯했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그의 시선이 자꾸만 주막 입구에 머문다.


"음... 흠... 끄응..."


그러다 환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맞다..."


그건, 연아가 무거운 솥뚜껑을 혼자 사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하아... 내가 아궁이 때문에 미처 생각을 못했네... 그 무거운 걸 사러 가는데 박주모 혼자만 보내버렸어..."


뒤늦은 후회와 걱정... 결국 환은 온갖 생각에 휩싸여 자신이 만든 아궁이 주변을 빙빙 돌며 주막의 입구만 쳐다보았다.


"뭔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오다가 넘어지거나 한 건 아닐까?"

"설마... 교통사고...?"

"일리가 없겠지... 조선인데..."

"아니야! 여기도 말이나 마차는 다니잖아? 음..."


그때였다.


"헉헉헉..."


주막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연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 왔소 환도령!"


새끼줄로 칭칭 동여 멘 커다란 솥뚜껑을 등에 야무지게 둘러메고, 평소와 다름없는 씩씩한 목소리로 환의 이름을 부르는 연아.

그제야 환도 마음이 놓인다.


"으흠... 음음... 이... 이제야 왔네요?"


"아유! 말도 마시오... 이게 어찌나 무겁던지... 내 들고 오는 동안 아주 식겁을 했소!"


"아버지가 있었으면 사다 주셨을 텐데... 뭐...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까..."


자신의 몸집보다 커 보이는 솥뚜껑을 환에게 건네는 그녀의 얼굴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환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괜히 안쓰러우면서도 미안했다.


"어휴... 박주모... 거... 보기보다 힘이 장사네요? 이 무거운 걸 혼자 들고 오다니..."


솥뚜껑을 건네받으며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툭 던져보지만 여전히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 환.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니까... 환도령은 그저 이걸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만 하시오!"


소매로 얼굴의 땀을 훔치며 밝게 웃는 연아의 표정에 미안함은 더욱 커졌다.


"그... 그거야 걱정 말고... 내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우선 좀 쉬어요!"


"쉬기는요? 그래? 밥은 다 되었소? 아... 아궁이는?"


연아의 입에서 '아궁이'란 말이 나오자, 환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 있게 손으로 자신이 만든 아궁이를 가리켰다.


"자! 이 튼튼해 보이는 녀석이 바로 내가 만든 간이 아궁이입니다! 어떤가요?"


살짝 찌푸린 미간으로 환이 가리키는 곳에 시선이 멈춘 연아...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다.


"그러니까... 이게 환도령이 만든 아궁이인 거요?"


"하하하! 그렇지요!"


"그래요...? 흐음..."


연아는 환의 자신작을 요리보고, 조리 보며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자신 넘치는 환의 표정에 비해, 그녀의 얼굴은 영 못마땅한 것처럼 보였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네요... 나쁘지는..."


"네...? 그게 무슨...?"


환은 연아의 적당한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면... 뭐... 엄청... 엄청난 거지!"


"그건 그렇고..."


바로 환의 말을 끊는 연아.


"여기 쓰인 돌들이 상당히 크고 좋아 보이는데...? 대체 어디서 났소?"


그러자 시무룩해졌던 환의 얼굴에 자신감이 되살아난다.


"돌!"

"그렇죠! 돌! 질문 아주 잘해줬어요!"

"안 그래도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르는 내가 돌을 어떻게 찾아야 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있었는데요...?"


"그때 마침 주막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생각을 했죠! 저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자!"


"아이들에게...? 아니! 뛰어 노느라 정신없을 아이들에게 대체 어떻게 일을 시켰단 말이오?"


"후후... 그것이 바로 나, 이 몸의 뛰어난 능력이라는 거지요!"


"아휴! 알겠소! 답답하니까... 그... 어서 본론만 말하시오!"


연아의 재촉에 말을 이어가는 환.


"그러니까... 원래 볶음밥이란 음식은 아이들 맞춤형이거든요? 난 여태까지 내 주변에서 볶음밥을 싫어하는 아이를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죠! 만약 너희가 아궁이에 쓸 돌을 가져와 준다면, 여태까지 먹어본 적 없는 정말 맛있는 밥을 대접해주겠다고..."


"아니... 그건 그냥 아이들에게 밥을 줄 테니 돌을 가져오라고 꼬신 것 아니오?"


"물론! 그런 해석도 가능하지만! 난 더 큰 부분을 생각했죠!"


"아이들 밥 먹이는데 무슨 큰 뜻이 있단 말이오?"


"허허! 모르는 소리! 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주막이란 곳은, 아이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지요?"


"그... 그렇소... 아예 안 오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오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소!


"그러니까! 봐요! 만약 아이들이 우리 주막에서 볶음밥을 맛보고 간다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다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박주모네 주막에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었노라고!"


그러자, 환의 말을 듣던 연아가 무릎을 탁 쳤다.


"아! 맞네! 맞아!"

"매일 모여서 노는 아이들의 소문은 어른들 그 이상일 테니... 환도령의 말에 일리가 있소!"


"그렇죠! 그러면 볶음밥을 먹어본 아이의 말을 듣고, 먹어보지 못한 다른 아이가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말할 거고... 그럼 그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방문..."

"결국 우리 주막의 소문은 아이들의 입을 통해, 또 어른들의 입을 통해 동시에 퍼져갈 테니, 그만큼 빠르게 한양 곳곳에 전달이 되겠지요!"


환의 계획을 듣는 연아의 눈이 반짝인다.


"앞으로 우리 주막은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와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해요! 원래... 세상에서 분식을 가장 좋아하는 건 아이들이니까..."


"방금 뭐라 했소? 부... 분식?"


"그런 게 있어요! 나중에 다 설명해드릴게요!"


"아... 알겠소!"


"그럼... 이제 남은 건, 내가 만든 볶음밥이 과연, 계획대로 조선... 아니 이 한양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인데..."


"잘 될 거요!"


"네...?"


"내 이래 봬도 주막집 딸로 태어나서, 맛있기로 소문난 우리 엄니의 음식을 먹으며 자랐소! 내 입맛은 정확하니 걱정 마시오!"


"내가 환도령의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했다면,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이 있을 거요!"


"하하...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기운이 나요!"


"빈말이 아니오!"


"네... 알겠습니다." 


환은 자신의 음식에 대해 확신하는 연아의 태도가 내심 기뻤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그럽시다!"


환은 우선 연아가 가져온 솥뚜껑을 깨끗이 닦은 뒤, 아궁이에 뒤집어서 얹고 미리 준비해 둔 장작을 넣어 불을 붙였다.


'타탁 타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장작불.

불꽃이 사납게 올라오기 시작하자, 환은 손바닥으로 솥뚜껑 위의 온도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되겠군!"


솥뚜껑이 꽤나 달아오른 것을 확인한 환은 그 위로 연아가 준비한 탕국을 부었다.


- 치이익 -


뚜껑 위에 닿자마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연기를 내기 시작하는 탕국...

연기는 자극적인 냄새를 끌어안은 채 주막의 낮은 담을 넘어 마을로 퍼져갔다.

여기에 환이 주걱으로 밥을 크게 퍼서 넣으니, 국물이 자작하게 섞이며 밥에 골고루 양념이 배기 시작한다.

밥을 적당히 섞다가, 파와 김치, 그리고 계란을 툭 하고 깨트려 섞으니 모양을 갖춰가는 볶음밥. 

환은 재료들이 적당히 섞였을 때쯤 들기름을 충분히 부어 볶아주었다.

그러자,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주막집 마당에 가득 퍼진다.

그 매력적인 향에 이끌려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


"아니 저게 무슨 음식이래?"


"뭔데 저리 맛있어 보이는 거야?"


"아이고... 나 워쪄? 침이 자꾸 나와서 미쳐버리겠네..."


이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주막으로 들어왔다.

환에게 돌을 가져다주었던 아이들이었다.


"너희들 왔구나? 어서 앉아라! 안 그래도 너희들 주려고 막 음식을 완성한 참이었어!"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환.

연아의 안내로 아이들이 평상에 앉자, 환은 국밥 그릇에 완성된 볶음밥을 넣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누룽지도 박박 긁어서 잘 섞어주었다.

그런 뒤, 달궈진 솥에 다시 들기름을 뿌리고, 아이들의 숫자만큼 계란을 깨서 넣었다.


- 탁탁 치이익 -


- 지글지글 -


난생처음 보는 요리에 평상의 아이들은 물론 담 넘어에서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의 눈까지 휘둥그레진다.

이를 예상했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이는 환.

마지막으로, 완성된 계란 프라이를 각 그릇 위에 얹고, 오매불망 음식을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내어주었다.


"우와!"


밥을 받아 든 아이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 얘들아, 너희가 내 첫 손님이다! 이건 볶음밥이라는 이름의 음식이야!"

"계란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잘 터트려서 밥과 함께 떠먹어보렴!"


생전 처음 보는 생소한 음식... 아이들은 환의 지시에 따라 계란을 터트린 뒤 조심스럽게 밥을 떠먹어보았다.


"우... 우와아! 맛있어요!"


"맛있습니다!"


"맛있어!"


아이들의 입에서 계속해서 '맛있다'라는 말이 쏟아지고, 숟가락을 든 손은 점점 빨라져 갔다.


"으으음..."


"나도! 나도 하나 주시오!"


"여기 먼저 줘요! 여기도!"


어느새 주막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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