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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6. 2023

16화. 주막집 요리사와 양반집 아씨

조선 분식집2

"아..."

"정녕 이것이 우리가 알던 그 박주모네 주막집이 맞는 것이냐?"


"그... 그러게 말입니다..."


주막 앞에 도착한 지혜와 사월은, 식사를 하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의 긴 행렬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연아의 주막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제 어느 때 찾아가든 늘 남는 자리 하나 둘 쯤은 있는 그런 곳이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손님들이 줄 선 모습은 두 사람에게 무척 생소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이곳을 찾았지만, 오늘 같은 광경은 처음 보는구나!"


"이건 아씨와 저만 처음 보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아씨! 아마 지금 한양 전체를 다녀봐도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 겁니다요..."


"그래? 그리 대단한 일이구나?"

"하... 박주모의 집이 장사가 이리 잘 되니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괜스레 마음 한편이 허하고 서운하기도 한 것이,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다..."


"아씨의 마음, 저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요... 저도 그런 걸요... 여기는 나만 알고 있었던 곳인데, 저리 많은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분하기도 하고..."


"호호호, 너나 나나 비슷한 마음이구나?"


"그런가 봅니다! 오호호호"

"그럼 아씨! 제가 가서 줄을 설 테니, 아씨는 주막 안으로 가셔서 박주모에게 말씀하시고 제가 들어가는 순서를 기다리시지요!"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모두 환 도련님의 밥을 먹기 위해 저리 수고를 하는데... 나만 편하자고 그럴 수는 없지! 나도 같이 기다리자꾸나!"


"정말 괜찮습니다 아씨! 그런 마음만으로도 아마 환 도련님은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니 여긴 제게 맡기시고 안으로 들어가 계시지요!"


하지만, 지혜는 사월의 청을 뒤로한 채 홀로 걸어가 행렬의 제일 뒤에 섰다.


"아유... 우리 아씨는 정말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사월도 그런 지혜를 따라 줄을 섰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지혜와 사월도 주막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주막 안에는 이미 모든 자리를 다 채운 손님들과, 그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아, 그리고 새로 고용한 듯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지혜는 그 모습이 어찌나 활기찬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두 분 이슈?"


"그렇소!"


"그럼,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으슈!"


두 사람은 중년 여성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 자주 왔었던 곳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마치 처음 오는 곳처럼 생소해 보이는구나?"


"저도 괜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요 아씨!"


주막 안에 가득한 손님 때문인지,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두 사람.

그런 그들을 발견한 연아가 접객을 멈추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씨! 아씨!"


"아... 박주모!"


"아니 아씨! 언제 오셨대요?"


"조금 전에 왔어! 잘 지냈어 박주모? 주막이...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 같네?"


"그러게요... 다 아씨 덕분입니다요!"


"내 덕분은 무슨..."


"그나저나... 아씨도 계속 줄을 서 계셨던 거예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아씨가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반시진(1시간)은 족히 기다리셨을 거야!"


"아유~ 말씀을 하셨으면, 제가 따로 자리를 내어드렸을 텐데요..."

"아니야! 다른 객들도 있는데... 나 편하자고 그러면 아니 되지! 하나도 안 힘들었고, 오히려 즐거웠으니까 신경 쓸 것 하나도 없어!"


"대신 제가 환도령한테 이야기해서 정말 정말 맛있게 만들어달라고 할터이니, 드시고 싶은 것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연아의 입에서 나온 '환'의 이름에 지혜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부엌으로 향했다.


"환... 도련님은 잘 지내고 계시고?"


"네! 객이 많다고 심하게 투덜대기는 하는데, 그래도 일을 아주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덕분에 주막이 이리 장사가 잘 되고 있습니다."


"환 도련님의 공이 크구나?"


"네... 처음엔 출신도 그렇고,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복덩어리였지 뭡니까? 호호호~"


연아의 말에 괜스레 지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으흥... 잘 되었구나! 그럼... 내게는 저번의 그 맛있는 밥을 주겠어? 사월이 너는?"


"저도 당연히 그 밥이지요! 안 그래도 올 때부터 배가 고팠는데, 하도 오래 기다렸더니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버린 것 같습니다."


"볶음밥 말이지요?"


"그래! 볶음밥이었지?"


"네!"


"다들 저리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나도 배가 너무 고파졌어! 맛있게 좀 부탁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씨!"


두 사람의 주문을 받은 연아는 자리를 떠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어느새 새롭게 재배치된 부엌에서는, 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밥을 볶고 있었다.


"볶음밥 두 개 더 해주시오!"


"알았어요!"


"이건 지혜 아씨가 드실 것이니까, 맛이나 양에 특별히 신경 좀 써주시오!"


"누구요?"


"지혜 아씨요! 그 있지 않소? 볶음밥을 처음 만들어 내어 드렸던..."


"아... 그 지혜 아씨? 알았어요! 그분이 오셨다면,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어드려야지!"


"그럼, 부탁하오!"


"오케이~"


'오...케이? 대체 뭐라는 거야?'


**********


잠시 후, 볶음밥을 완성한 환이 상을 들고 직접 지혜 일행에게 가져왔다.

환의 얼굴을 본 지혜의 뺨이 붉어진다.


"오랜만입니다! 지혜 아가씨!"


"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자... 잘 지냈습니다... 환 도련님께서도 잘 지내셨는지요?"


"저야 뭐 보시다시피... 이리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주막에 객이 많아져서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한양 전체에 소문이 파다하다고 들었습니다."


"다 지혜 아가씨 덕분입니다! 어찌 보면 이 볶음밥은 그날 아가씨가 주막에 와주신 덕분에 탄생하게 된 것이니까... 아가씨의 공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지혜는 그런 환의 칭찬이 무척이나 기쁜 듯 보였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채 두 손을 뺨에 올리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제가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모든 것은 환 도련님의 음식 솜씨 때문이겠지요!"


"겸손하시기까지... 하하하! 아무튼 그래서! 제가 특별히 두 분의 볶음밥은 신경 써서 만들고, 거기다 계란도 두 개씩 올려드렸으니, 부디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어서! 식기 전에 드세요!"


"네..."


지혜는 환과 대화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볶음밥으로 눈을 돌렸다.

고소한 들기름 향을 품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볶음밥 위에는 지난번에는 없었던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 있어서 한층 더 맛있게 보였다.


- 꿀꺽 -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절로 군침이 삼켜진다.


"우선 계란 노른자를 터트린 뒤, 노른자가 밥에 조금 스며들면, 그 밥을 흰자와 함께 떠서 함께 드셔 보세요!"


"네... 그리 하겠습니다."


지혜는 환이 알려주는 대로 노른자를 터트렸다.

그러자, 노른자가 밥을 덮고 스며들면서 마치 코팅한 것처럼 밥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으음..."


지혜는 곧 진한 갈색 빛이 도는 볶음밥과 계란 프라이를 함께 떠서 입 안으로 가져갔다.


- 우물우물 -


"아..."


짭짤한 볶음밥에 계란 프라이 특유의 고소함이 더해져 몇 배가 된 감칠맛. 

그리고 쫀득거리는 밥과, 미끌거리면서도 조금 텁텁한 계란 프라이가 만나 탄생한 식감은 지혜가 여태껏 맛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너... 너무나 맛있습니다! 지난번 것도 맛있었지만, 그때 이상의 맛입니다!"


"그러게요 아씨. 정말 이렇게 맛있는 밥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맛있습니다."


지혜를 따라 볶음밥을 맛본 사월이도, 입 안에 밥을 잔뜩 넣은 채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하하! 두 분이 그리 맛있게 드셔주시니, 저도 기쁘네요! 그럼... 전 남은 객들 밥을 해야 해서 이만 부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천천히 드시고 가 주세요!"


"그리고 박주모! 이건 내가 두 분께 대접하는 거니까, 내 앞으로 달아둬요!"


"도련님. 아... 아닙니다! 그냥 값을 지불하고 먹겠습니다."


"아니에요! 힘들게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이건 제가 꼭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드세요!"


"그래도..."


"이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음식을 탄생하게 해 준 지혜 아가씨에 대한 제 고마움의 표시입니다. 그러니,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


"환 도련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염치 불구하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럼 전 이만!"


환은 지혜 일행에게 인사를 한 뒤 남은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돌아갔다.

지혜는 그런 환의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아씨! 괜찮으세요?"


"아... 아니다!"


"환 도련님이 우리를 위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볶음밥이 아니더냐! 우리 한 톨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자꾸나!"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아씨!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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