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2
"아주 자알~ 먹고 갑니다!"
"아유! 네네~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오시오들!"
마지막 손님들이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막을 나가자, 연아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흐흥~ 흐흥~"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은 감추기가 힘들 정도로 넘쳐흐른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주막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손님을 받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환의 볶음밥이 가진 힘이었다.
"아이고... 힘들어서 더 못해! 난 더 못해요!"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밥을 볶았던 환은 결국 평상에 쓰러져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게요... 고생하셨소~"
하지만 연아는 환이 하소연을 하든 말든, 눈앞에 가득 쌓인 엽전을 세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한 푼, 두 푼, 서 푼... 일 전... 십 전... 아이고! 아하하! 이십 전... 아하하! 아하하하하!"
환은 그런 연아가 괜히 얄밉게 보였다.
"아니... 대체 오늘 매상이 얼마나 되길래, 돈을 세면서 그리 웃어 대는 거예요? 꼭 미친 사람처럼..."
그러자, 환의 말에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쏘아보는 연아.
환은 갑작스러운 연아의 반응에 당황해서 변명을 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가 미쳤다고 한 건 진짜 그랬다는 게 아니라..."
하지만 연아는 오늘 무척이나 대범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오? 나 미친 것 맞소! 기분이 좋아 미친년~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환.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래서... 거 오늘 대체 얼마나 판 거요 우리?"
"음... 그러니까... 간간이 국밥 손님도 있긴 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다 볶음밥 손님이었으니까..."
"가만 보자... 한 그릇에 5푼을 받았으니..."
"오늘만 200그릇이 넘게 팔았소!"
"저... 정말?"
연아의 말을 들은 환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환이었지만, 그래도 하루에 200그릇이라고 하면 현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상당한 매출이었기 때문이다.
"와! 내가 만들었지만 이건 정말 놀랍다... 놀라워... 대박! 대박!"
"그러게 말이오! 우리 이러다 금방 부자 되겠소!"
- 촤르르 촤르르 -
연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엽전을 들었다 놓으며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환 또한 그런 연아의 얼굴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자! 그럼 우리도 밥 좀 먹읍시다! 나 배고파 죽겠어요!"
"알겠소! 저녁은 내가 차릴 테니, 환도령은 가만히 누워서 편히 쉬고 계시오!"
"네네~"
**********
한편 주막에서 꽤 거리가 떨어진 지혜의 집에선, 어쩐 일인지 사월이 아침부터 부산하게 지혜를 찾는다.
"아씨! 아씨! 아씨!"
"아니, 넌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로 그리 소란스러운 거냐?"
방에서 자수를 놓던 지혜가 꾸짖는듯한 어투로 사월에게 물었다.
"아이참 아씨! 제가 이리 뛰어왔다는 건, 아씨께 무언가 전해드릴 소식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게? 무슨 소식을?"
"그... 있지 않습니까? 박주모네 주막이..."
순간 '박주모네 주막'이라는 말에 지혜의 눈빛이 반짝인다.
"박주모네 주막... 이 왜?"
"아 글쎄... 박주모네 주막이 지금 난리가 났답니다."
"무슨 난리? 그곳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아 왜... 그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 아씨랑 저랑 같이 먹었던 그 맛있는 밥?"
"그래! 잘 알지! 그 맛있는 밥... 그런데 그 밥이 왜?"
"아 글쎄! 지금 박주모네 주막에서 그 밥을 팔고 있는데...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아주 난리라지 뭡니까!"
"그래?"
"예!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으흥~"
사월의 말을 듣던 지혜.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밥이 그리 맛이 좋더니... 결국 손님상에 내놓았나 보구나? 그 밥이라면 난리가 날만도 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사월이 전해온 소식에 기분이 좋아진 지혜는, 어쩐 일인지 갑자기 자수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그리곤,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월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사월아! 내 잠시 출타할 테니 어서 준비를 하거라!"
"네? 아니 오늘은 특별히 예정이 없는데... 대체 어디를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답답하긴...! 내 예정은 방금 네가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
"네? 무슨... 아니 설마 아씨...?"
지혜의 말에 사월은 화들짝 놀랐다.
"아씨! 박주모네 주막에 또 가시려고요?"
"그래! 마침 아버님도 출타 중이시니, 우리 빨리 가서 밥만 먹고 오자꾸나!"
"아니... 불과 며칠 전에 갔다 오셨으면서... 얼마나 됐다고 오늘 거길 또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뭐...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간다는데... 언제 갔다 왔는... 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
"그렇습니까? 흐흠..."
하지만 사월은 지혜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유난히 기분이 고조된 것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설마 아씨... 그 집 도련니...임..."
"음음! 사월이 너 지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혜는 사월이 환의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이자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럼 넌... 박주모네 밥이 또 먹고 싶지 않은 거냐? 지금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저도 먹고 싶긴 하지만..."
"그럼, 가서 먹고 오면 되지!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는 거냐?"
"그래도... 대감마님이 아시면 또 불호령이 떨어질 겁니다. 안 그래도 아씨가 자꾸 몰래 밖에 나가는 걸 탐탁지 않아하시는데..."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님은 오늘 친구분인 최진사님 댁에 가셨으니, 바둑도 두시고 약주도 한잔 하시고 하면, 아마 그리 일찍은 아니 돌아오실 것이다."
"에휴..."
사월의 강한 만류에도, 지혜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그런 지혜의 마음을 뒤집을 힘이 사월에게는 없었다.
"그냥, 어서 가서 밥만 먹고 오자꾸나!"
"네네... 알겠습니다. 아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결국 지혜와 사월은 외출 준비를 한 뒤, 집을 빠져나가기 위해 대문으로 은밀히 향했다.
대문 안 마당을 쓸고 있던 행랑아범이 이들을 발견했지만, 이미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아씨! 또요?"
"그래 행랑아범! 나 잠깐만 나갔다 올 테니까... 가마 좀 불러줘!"
"마님이 아시면 가만히 안 계실 텐데요?"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마만 좀 불러줘"
행랑아범은 지혜의 부탁에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곧 수락을 했다.
한눈에도 그가 지혜를 상당히 아끼고 귀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씨 부탁이신데 당연히 제가 들어드려야죠!"
"대신! 가마는 제가 불러드리지만... 저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겁니다!"
"아이참! 당연하지! 행랑아범은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안 들키게 빨리 갔다 올 테니까!"
"예예!"
이때, 뒤에서 이들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깨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를 안 들키게 빨리 다녀오겠다는 게냐?"
"아... 아이고 마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혜의 어머니 '김씨부인'이었다.
"어... 어머님..."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란 세 사람.
"넌 또 몰래 어딜 나가려고 그러는 게냐?"
"그것이... 그냥 잠시 바람을 쐬러..."
"너는 저번에도 그러다가 아버님한테 들켜서 크게 야단을 맞았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버님이 야단치시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누가 너 때문에 그래? 괜히 너한테 엮여서 죄 없는 행랑아범이랑 사월이까지 혼이 날까 봐 그러지!"
"그래서... 마침 오늘 아버님이 출타 중이시기에..."
"어딜 계속?"
".........."
김씨부인은 딸의 이러한 행동이 심하게 못마땅스러웠다.
고생 끝에 어렵게 얻은 자식이기에 갓난아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길렀는데... 이렇게 예쁘게 큰 딸이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너도 이제 나이가 나이니만큼...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을 가야지... 안 그래도 요즘 네 아버지가 혼처를 알아보고 다니시는 것 같던데... 너 이리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하지만 지혜는 그런 김씨부인의 걱정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님도 참! 제가 무슨 나쁜 일을 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밖에 나가서 세상 구경도 조금 하고, 그런 김에 맛있는 음식도 조금 사 먹고... 그럴 뿐입니다. 어머님이 걱정하실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전 아직 시집갈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아십시오!"
지혜는 김씨부인에게 그리 소리친 뒤 대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갔다.
"사월아! 어서 나와!"
"아... 아씨!"
지혜의 돌발행동에 놀라 안절부절못하는 사월은 김씨부인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김씨부인은 그런 지혜를 보며 체념한 듯, 사월에게 자신의 딸을 따라갈 것을 명했다.
"사월아! 아씨 잘 보살피고, 대감마님 돌아오시기 전에 꼭 돌아와야 한다!"
"네 마님..."
사월은 김씨부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황급히 지혜를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