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2
폭풍처럼 수많은 손님들이 휩쓸고 지나간 주막...
연아는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방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정산을 하고 있었다.
"아유! 이걸 어쩌면 좋아~! 이게 다 얼마래? 이러다 정말 금세 부자 되겠어! 오호호호호호~"
그녀가 그리 기쁜 한 때를 보내고 있을 무렵, 환은 평상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아... 난 이렇게 계속 조선에서 살아야만 하는 운명인 걸까? 요즘은 익숙해진 탓인지 여기의 생활이 전혀 낯설지가 않아...'
'하긴... 최근엔 너무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아예 없었구나...'
'선주는 무사히 잘 있을까? 동한이와 철물점 아저씨는 또 어떻게 됐을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선의 밤하늘을 쳐다보던 환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수가 있었구나!"
무언가 결심한 듯 갑자기 평상에서 일어나 연아를 부르기 시작하는 환.
"박주모! 박주모! 자요?"
"응? 환도령? 피곤해서 잔다더니 무슨 일이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연아가 뜬금없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박주모! 잠든 거예요?"
하지만 계속해서 들리는 환의 목소리.
'아이참! 한참 기분 좋게 돈 세고 있는데 왜 자꾸 사람을 불러대는 거야...?'
결국 정산을 멈춘 연아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아니오! 아직 안 자고 있소!"
"잘됐네요! 그럼, 여기 좀 나와봐요! 할 말이 있으니까!"
'응? 무슨 할 말?'
"이미 밤이 늦었는데 꼭 오늘 해야 하오?"
"네! 오늘 꼭 해야 해요!"
'아이참...'
연아는 행복한 시간을 방해받는 것 같아 조금 짜증이 났지만, 주막을 부흥시킨 일등 공신인 환의 말이라 어쩔 수 없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끼이익 -
"아니... 피곤하다더니 안 자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오?"
"일단 여기 앉아봐요!"
연아는 환의 말에 따라 평상으로 내려왔다.
"자! 여기 왔으니 어서 이야기해보시오!"
한눈에도 뭔가 뾰로통한 표정의 연아. 하지만 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들뜬 표정으로 연아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우리가 지금 장사가 아주 잘 되고 있잖아요?"
"그렇... 소이만...?"
"그러니까! 우리 아예 본격적으로 한번 판을 벌려보자 이거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하루 종일 볶음밥만 만들어대는 것이 지겹기도 하고..."
"또 고기도 아닌데 한 가지 음식만 고집한다면 조만간 손님들의 발길도 끊길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처음보다 손님이 덜 한 것... 박주모도 알고 있잖아요?"
"하긴... 확실히 그렇긴 하오만..."
연아는 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최근 들어 손님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메뉴... 아니, 음식의 종류를 더 늘립시다!"
"음식의 종류를요?"
"네!"
"그럼... 나야 좋다만... 그게 가능하오?"
"네! 할 수 있어요! 박주모가 믿고 맡겨만 준다면 내가 꼭 만들어 낼게요!"
"나야 뭐... 당연히 환도령의 솜씨는 믿고 있으니까..."
"좋아요! 그럼... 그리 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으로!"
"우리 주막에 좀 그럴듯한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름? 이름이라면...? 이미 있지 않소? 박주모네 주막집!"
"아... 하하... 맞아요! 물론 그 이름도 좋죠! 아주 좋긴 한데... 좀 더 임팩트가 있는... 그러니까 좀 귀에 확 들어오면서 널리 퍼질 수 있는 그런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어요! 이름만 대면 단번에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연아는 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소!"
"좋소! 그럼 새로운 이름을 지어봅시다! 대신... 난 그쪽으로는 영 약하니까... 그... 환도령이... 지어주시오!"
"네! 그럴게요! 안 그래도 생각해둔 이름이 있어요."
"그래요? 그럼 어서 말해보시오! 어떤 이름이오?"
"내가 생각해둔 이름은... <연아네 분식집> 이에요!"
"연아네... 분식집?"
"아니... 박주모네... 도 아니고... 남사스럽게 왜 내 이름을 주막집 이름으로 쓴단 말이오?"
"그리고... 분식... 집... 은 또 뭐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난생처음 들어보는 '분식집'이라는 말이 영 생소한 연아! 하지만 환은 그런 연아의 반응을 보며 확신에 찼다.
'분식집을 모르는구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분식집... 은 말 그대로 분식을 파는 집이지요!"
"그러니까... 그 <분식>이 뭐냐고 묻는 거요!"
"네? 아..."
갑작스러운 연아의 질문에 난감해진 환!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현대에서 분식집을 운영했던 환이라고 해도, 조선시대의 사람에게 '분식'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는 건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분식이 그냥 분식이지... 이걸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떡볶이나 김밥, 라면을 파는 그런 곳이라고 해봤자 알아들을 리 만무하고...'
'분식... 분식...? 분식...!'
연아는 그런 환의 모습이 영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말을... 심지어 자기가 말해놓고 설명을 못하는 거야 지금?'
이때, 생각에 잠겨있던 환이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아이 깜짝이야!"
"아... 하하...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그러니까 분식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을 파는 곳이에요!"
"간단히? 그럼 나물이나 김치 같은 반찬에 간단히 요기를 하는 그런 곳이라는 거요?"
"아... 그건 아니고요. 내가 있던 동네에서는 대체로 가루로 만든 면이나 만두 같은 음식을 분식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루분(粉) 자를 써서 분식(粉食)이라고 하는 거죠!"
"가루? 무슨 가루?"
"밀가루요!"
"밀가루? 아니 그 비싼 밀가루를 대체 무슨 수로 쓴단 말이오?"
정색을 하는 연아의 말에 환은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조선에서는 아직 밀가루가 비싸겠구나...'
"뭐 굳이 꼭 그 밀가루를 쓰지 않아도 되고... 메밀가루나 쌀가루를 써도 되니까..."
"아무튼 앞으로 내가 할 요리는 그런 종류의 음식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이름은 분식집으로 합시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영 생소하긴 한데... 환도령이 그리 말하니... 뭐 원하는 대로 하시오! 생각해보니 환도령의 말대로 사람들이 우리 집을 단번에 알고 찾아올 수는 있을 것도 같네!"
"네! 고마워요!"
"그리고... 주막 앞에 간판도 달도록 해요 우리!"
"간... 판?"
"그러니까... 연아네 분식집이란 이름을 천에 써서 그걸 담벼락이나 현관 근처에 걸어두자는 거죠!"
"우리가 비싼 기방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소?"
"네! 꼭 필요해요! 내 말대로만 하면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알겠소... 내 환도령을 한번 믿어보리다! 그리 하지요!"
"네!"
환의 생각은 이랬다.
어쩌면 지금 조선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선주와 동한, 철물점 아저씨를 위해, 주막의 이름을 조선에는 없는 '분식집'으로 지어놓으면... 분식집이 유명해진 후에 그 소문을 듣고 사라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럼 내일 날 밝는 대로 그... 내가 부탁한 일들 좀 준비해주시고요..."
"그래요! 걱정 마시오!"
"그리고, 전 볶음밥 말고 다른 새로운 음식을 준비를 할 테니까... 우리 며칠만 주막 문을 닫아요!"
"아니 왜요? 꼭 문을 닫아야 하오?"
"무엇을 만들지도 고민해봐야 하고, 또 음식 재료도 준비해야 할 테니... 시간이 필요해요!"
"으음..."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문을 열 때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테니까..."
"흐음..."
연아는 주막 문을 닫자는 환의 말에 살짝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어요."
"또 뭐요?"
'화났나 보네? 하하...'
"저기... 부엌에서 날 도와줄 사람을 한 명 더 고용해줘요! 손님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도저히 나 혼자서는 감당을 못할 것 같으니까..."
'아니! 그 정도로 장사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기대를 좀 해봐?'
손님이 많아질 거라고 재차 강조하는 환의 말에 다시 기분이 풀린 연아.
"그... 그렇다면야 당연히 사람을 써야지요! 음! 내일 바로 주막집 앞에 글을 써서 붙여놓으리다."
"네 고마워요!"
환은 환하게 웃으며 연아의 손을 잡았다.
연아는 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손을 뿌리쳤다.
"아... 미안해요..."
"괘... 괜찮소..."
"그리고, 고마울 것 없소..."
어둠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연아의 뺨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럼 우리 앞으로 잘해 봐요!"
"그럽시다."
환하게 웃는 환과 수줍어하는 연아...
마침내 조선 최초의 분식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