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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6. 2023

18화. 주막을 찾아온 소년

조선 분식집2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환의 요청으로 주막 문을 닫은 지 어느덧 일주일...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조용해야 할 주막이 아침부터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어흠! 거 아무도 안 계시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고요한 아침을 깨는 우렁찬 목소리!  


결국 그 소리에 잠이 깨고 만 연아가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으아아! 아니, 대체 누가?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서 이리 소란스럽게 구는 거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결국 연아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대체 아침부터 누구야!"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댕기머리를 한 어린 소년의 모습.


'아이?' 

'얘는 누구...?'


연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소년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연아와 비슷한 키의 소년은 동글동글한 눈동자에 꽉 다문 입술이 꽤나 총기가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리 왔는데... 무슨 일이실까?"


소년은 딱딱한 태도의 연아를 보고 잠시 당황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정을 관리하며 연아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어험... 거 안녕하시오? 혹시 그쪽이 여기 주인 되시는지요?"


아이 같지 않은 당돌한 말투...


'그... 쪽? 허...'


연아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어른스러운 척하는 소년의 모습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여기 주인 맞는데? 왜?"


"그러시오? 내 오늘 주인장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왔소이다."


"할 말...? 혹시 밥을 먹으러 왔다면, 미안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영업을 하지 않으니, 다음에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연아의 말에 소년은 몹시 당황해 소리쳤다.


"밥 먹으러 온 거 아니야!"

"흠흠...  아니... 아니오!"


"그래? 주막집에 밥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면... 술을 마시러 온 것일까?"


"아이 진짜! 내가 술을 왜 마셔? 그것도 아니야!"


계속해서 비꼬는 연아의 말에 약이 올랐는지, 소년은 결국 어른스러운 척하던 태도가 아닌, 본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거 말이야 이거!"


울상을 지으며 연아에게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보여주는 소년.

그건 연아가 주막 앞에 붙여두었던 구인광고지였다.


"아니! 남이 힘들게 써서 붙여 놓은 걸 왜 떼어온 거야?"


"여기! 여기에 조수를 구한다고 쓰여 있잖아?"


"그런데?"


"그래서 내가 온 거야!"


너무도 당당히 자기를 어필하는 소년의 모습에 기가 막힌 연아.


"아침부터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우린 실력 있는 조수를 찾고 있거든! 너 같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누... 누가 어리다고 그래?"


"아직 수염도 안 난 녀석이! 그리고 너 왜 자꾸 어른한테 반말이니?"


"그나저나, 얘가 묘하게 낯이 익은데... 대체 어디서 봤더라?"


소년과 옥신각신하던 연아는, 갑자기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뭔가 상당히 낯익은 얼굴...


"맞다! 그러고 보니 너 한동안 계속 우리 주막에 와서 볶음밥 먹었지?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그... 그래 뭐! 값은 다 치르고 먹었는데... 뭐... 뭐가 잘못됐어?"


"아침부터 사람 잠 깨워놓고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너랑 장난할 시간 없으니까 어서 집으로 돌아가!"


이때 두 사람의 말소리에 잠을 깬 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암...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이리 시끄러워요?"

"어라? 얘는 또 누구래?"


그런 환을 보고는 바로 그의 앞으로 달려가 말을 거는 소년!


"호... 혹시 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계신...?"


"음식? 그렇지, 내가 음식은 하지!"


그러자 소년은 갑자기 환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부님! 전 사부님의 음식을 맛보고 너무나도 감동받은 나머지 제자가 되고자 이렇게 찾아온 정훈이라고 합니다!"


"아... 응?"


갑작스러운 소년의 행동에 몹시 당황한 환.

그런 환을 향해 초롱초롱 눈빛을 밝히는 소년.


"그... 그래?"


"사부님의 음식을 맛보고 제가 어찌나 감동을 했는지... 매일같이 주막에 찾아와 그 신기한 밥을 맛보았습니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오직 밥 만으로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저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사부님의 음식을 배워서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이고 싶습니다."


"음..."


소년의 말을 듣고 고민하는 환... 연아는 그런 환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그에게 다가와 귀속말을 하며 참견을 시작했다.


"이보시오 환도령! 어쩔 생각이요? 설마... 저 아이를 진짜 쓸 생각은 아니지요?"


"왜요? 난 저 아이가 마음에 드는데...?"


"지금 장난치는 거요? 이건 순간의 감정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오! 우리의 생계와 관련이 있는 문제란 말이오!"


환이 듣고 보니, 연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에서... 그것도 주방에, 의욕만 앞서는 서툰 사람을 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환과 연아를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환은 한참을 고민하다, 마침내 결심이 섰는지 침착하게 연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해요! 저 아이에게 우리 분식집에서 필요한 일을 시켜보고, 만약 무리 없이 해 낸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죠!"


"끄응..."


여전히 정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연아.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환의 결정이기에 우선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오!"


"정훈이...라고 했지?"


"예! 사부님!"


"우선... 저기 있는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오지 않을래? 우물은 문을 나가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으니까!"


"예! 그리 하겠습니다. 사부님!"


정훈이는 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물지게를 지고 문을 나섰다.

그의 작은 몸 때문인지 유난히 커 보이는 물지게... 조금 서두르는 모습은 오히려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디... 오다가 넘어지지나 않을지..."


"그건 모르니까... 기다려 보도록 하죠!"


하지만 잠시 후, 정훈이는 야무지게 물을 길어왔다.


"호... 꽤 하잖아?"


"뭐... 물이야, 여기 한양에 사는 아이라면 누구나 다 일상일 테니... 당연히 기본으로 해야지!"


"그럼, 정훈아! 이번에는 부엌 뒤로 가서 쌓여 있는 장작을 좀 패 보겠니?"


"예! 사부님!"


비록 몸집이 작아 여러 번 내려치긴 했지만, 정훈이는 이번에도 제법 그럴듯한 폼으로 장작패기에 성공했다.


'이 녀석... 어쩌면 의외로 물건일지도?'


환은 점점 더 정훈이가 마음에 들었다.


"자! 그럼... 마지막 관문이다!"


"예! 사부님!"


환은 정훈이를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정훈아... 여기 있는 파를 좀 썰어볼 수 있겠니?"


"예..."


- 탁.탁.탁탁. 탁.탁탁. -


비록 많이 서툴기는 했지만, 정훈은 조심스레 칼을 들고 아주 정성스럽게 파를 썰기 시작했다.

그런 정훈이 왠지 자꾸 신경 쓰이는 환!


'이 녀석... 전혀 칼을 잡아본 적이 없구나... 서툴러도 너무 서툴러...'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데... 흠...................'

'좋아 뭐!'


"그래! 합격이다!"


"예? 저... 정말입니까?"


"이... 이보시오 환도령!"


"어허! 내가 데리고 쓸 사람이니 내 결정을 따라 주세요!"


"끄... 끄응..."


정훈은 환의 채용 결정에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이라니요? 대체 무엇입니까 사부님?"


환의 말에 아직 뭔가 더 남았나 싶어 긴장한 정훈.


"그... 사부님 호칭 좀 어떻게 안될까? 난 사부님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영 불편하네?"


"무슨 말씀입니까! 사부님은 충분히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래도... 그 뭐야... 그냥 형이나 그런 걸로는 안될까?"


"안됩니다! 하늘 같은 사부님을 그리 가벼운 호칭으로 대하는 것은 저의 배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허... 그럼, 그 <님> 자만 좀 빼자! 그냥 사부... 어때?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해!"


"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부니... 아니 사부!"


"그래! 훨씬 낫네!"


"좋아! 정훈아! 그런데 부모님한테 허락은 받았니?"


"그 부분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래? 이미 허락을 받았구나?"


"그게 아니고... 전 부모님이 없습니다."


"아... 그... 그래?" 

"미안하다..."


"사부가 뭐가 미안합니까? 괜찮습니다."


분명 아픈 가족사일 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훈은 씩씩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럼 가족은 아예 없는 거야?"


"누이가 하나 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둘이서 생활하는 거야? 어디에서?"


"원래 거지패와 떠돌며 동냥을 하고 살았지만, 얼마 전부터 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근처 어디?"


"저기 개천의 다리 밑에 있는 움막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사연이 있는 아이가 맞구나... 옷차림도 비록 허름하지만 그에 비해 깨끗한 편이고...'


"우리 주막 음식이 싸지 않을 텐데... 부모님도 안 계신 네가 어떻게 돈을 벌어 사 먹었어?"


"사부, 정말 저 기억 안 나세요?"


"기억...?"


"저기 있는 저 부뚜막... 그때 돌을 가져오라고 시키셨죠?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바로 저입니다."


"그랬어?"


"예! 그때 밥도 넉넉히 싸주셔서 누이에게도 줄 수 있었는데..."  


"그랬더니, 누이가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라며..."


환은 정훈의 사연을 들으며 선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크흑... 무조건 채용!"


"이... 이봐요 환도령!"


"그리고... 너 오늘부터 여기서 살아라! 물론 누이도 함께!"


"뭐... 뭐라고요?"


어린 소년을 조수로 쓰는 것도 못마땅한데, 주막에서 지내라고까지 하는 환의 말에 기가 막힌 연아.


"걱정 말아요! 내 방에서 함께 지낼 테니!"


"아무리 그래도..."


"어허! 내 부탁 안 들어주면, 나 다른 곳으로 가요?"


"끄응..."

"환도령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별 수 없지! 대신 너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응! 주인 누님"


"응?"


"아니... 네 주인마님!"


"마... 마님..."  


"하하하!"


"정훈이 넌 어서 가서 누이를 데리고 와! 짐도 다 옮겨오고!"


"고맙습니다 사부! 정말 고맙습니다!"


정훈은 주막 문을 나설 때까지 연신 뒤돌아보며 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선주는 무사한 걸까...'


환은 정훈이 사라진 후에도 주막 문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선주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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