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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6. 2023

19화. 고추를 찾아서

조선 분식집2

정훈이 여동생인 진아와 함께 연아의 주막으로 온 후로 어느덧 3일이 지났다.

그 사이, 정훈과 진아는 주막의 일에 꽤나 익숙해졌고, 생활도 안정을 찾았다.

그런 그들과 달리 새카맣게 타들어가기만 하는 연아의 마음...


'으으... 주막 문을 닫은 지 대체 며칠째야? 이러다가 부자가 되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손님들까지 다 떨어져 나가는 것 아니야?'


하지만, 환도 매일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이었기에, 그에게 불만을 이야기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니... 저 양반은 대체 뭘 한다고 저렇게 바쁜 거야? 괜히 닦달했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소리 나올까 봐 말도 못 하겠고... 아휴 답답해...'


그때였다.

답답한 연아의 마음을 읽은 건지, 갑자기 환이 연아를 불렀다.


"박주모!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예? 예..."


'서... 설마?'


며칠 만에 처음인 환의 호출에 반색을 하는 연아.


"여기 왔소! 흠흠... 그래, 무슨 일이시오?"


"아! 다름이 아니라... 이제 팀도 갖춰졌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 봐야지요?"


"네!"


'대체 뭐라는 거야?'


"티... 뭐라고요?"


"아... 맞다...! 흠흠..."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일 할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아... 일할 사람...?"  


수상하다는 듯 환을 쳐다보는 연아...

연아는 종종 환이 쓰는 요상한 말이 신경 쓰인다.


'대체... 이 도령은 진짜 정체가 뭐야?'


"자! 그럼..."


"각자의 역할을 정해줄게요!"

"박주모는 지금처럼 계속 객들의 접대를 맡아주시고..."

"정훈이는 부엌에서 나를 도우면서, 동시에 객들도 신경 써 주길 바라고!"

"나는... 지금처럼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그럼! 그리 알고 시작해봅시다."


- 잡아당, 잡아당 -


이때 누군가 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응? 뭐지?"


"사부... 나는요?"


다름 아닌 정훈의 여동생 진아였다.


"아! 진아야!"

"너는 일 안 해도 돼! 걱정하지 마."


"아니... 나도 일 할래요!"


"아이고 예뻐라! 하지만 괜찮아요!"


"싫어요! 나도 일 할래요!"


환은 그런 진아가 귀여워 죽겠다는 모습이다.

하지만 연아는 어째서인지 그런 진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얘! 떼를 쓰면 어쩌니? 아이면 아이답게 말을 잘 들어야지?"


"하지만..."


"아니! 그래도 얘가! 넌 너무 어려서 걸리적거린단 말이야!"


"아..."


순간 연아는 자신이 뱉어낸 말에 스스로도 놀라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아는 이미 울먹거리고 있고, 환과 정훈도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아니! 어린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을 해요?"


"미... 미안하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나도 모르게..."


"아..."


순간 환은 얼마 전 우물에서 잠깐 스쳐가며 들었던 연아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평소 밝고 모두에게 친절한 그녀가 진아에게 이런 모진 말을 한 데에는 필시 뭔가 깊은 이유가 있으리라...

환은 시무룩해 있는 연아와 진아를 위해 분위기를 바꾸고자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박주모..."


"뭐가 말이오?"


"주방에 고춧가루가 있더군요?"


"고춧가루가 왜? 뭔가 문제가 있소? 상하기라도 한 거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뭐가 문제요?"


"박주모는 어렸을 때부터 고춧가루를 쓰고 살았나요?"


"그렇소!"


"그래요? 그럼... 정훈이 너는?"


"예! 고춧가루는 저나 진아도 무척 익숙합니다."


"그렇구나..."


환은 연아와 정훈의 말을 듣고 고춧가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긴... 그러고 보니, 김치도 현대와는 조금 맛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색의 매운 김치... 그것도 젓갈을 넣어 만든 김치였어!'

'내가 알기로... 고춧가루는 분명 이 시대에는 없어야 해! 사람들이 빨간 고춧가루를 써서 김치를 담가 먹게 된 것도 근대 이후의 일일 텐데...'

'내가 과거로 오면서 역사가 뒤틀려버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온 이곳이 내 시간과 이어진 과거의 조선이 아닌 전혀 다른 어떤 곳인 걸까?'


환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긴 환...

연아는 그런 환이 수상하기만 하다.


'아니... 고춧가루가 왜? 그게 뭐라고 저리 골똘히 생각하는 거지?'

'역시 이 도령은 수상해...'


순간, 고민을 털어버렸는지, 무척이나 상쾌한 표정으로 변한 환이 소리쳤다.


"그래! 결심했어!"


"아이 깜짝이야!"


"대체 뭘 결심했기에 이리 크게 소리치는 거요?"


"아... 하하하! 그러니까... 우리 시장에 갑시다!"


"예? 뭐요? 시... 장?"


"네! 시장이요 시장! 물건 파는 시장?"


"아... 장시를 말하는 거요?"


'이곳에선 시장을 장시라고 하나 보구나?'


"네... 맞아요 장시!"


'뭐야? 방금 분명 시장이라고 했으면서...'


"시전도 있긴 하지만, 좀 멀고... 장시는 근처에도 있으니까..."


'시전은 또 뭐지...?'


'아무튼 시전이든 장시든 어서 갑시다!"


"아니? 갑자기 그곳엔 왜 간다는 거요?"


"아 장사 안 할 거예요?"


"예?"


"재료 사러 가야지!"


"아... 호호... 호호호... 그래야지요! 장사... 어서 갑시다! 어서 가요!"


"아하하하하하!"


"오호호호호호!"


의미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광활한 한양 하늘에 울려 퍼졌다.


**********


그렇게 장시에 도착한 네 사람!

장시는 환이 조선에 처음 왔던 날 연아를 쫓다가 우연히 들렸던 곳으로 주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우와! 대단하다 대단해!"

"이야~ 없는 게 없네?"

"오오! 신기하다 신기해! 대체 저게 뭐래?"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신을 못 차리는 환.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장시는 시전 부럽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처음 왔을 때는, 정신을 못 차리고 봐서였는지 몰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여긴 정말 큰 시장이구나!'


"그래서, 대체 무얼 산다는 말이오?"


"돈은 넉넉하게 챙겨 왔지요?"


"그렇소!"


"그럼... 박주모는 김치를 담글 재료를 구해줘요! 우린 김치가 아주 많이 필요할 거니까... 그런 줄 알고 넉넉히 구매해야 할 거예요!"


"알겠소..."


"그리고 정훈이랑 진아는 가서 계란과 돼지고기를 사다 주고..."


"예! 사부!"


"난 고추랑 그 외의 다른 채소들을 좀 볼게요!"

"내가 말한 것들 다 사면 다시 이곳에서 모입시다!"


"알겠소!"


"예! 사부!"


환의 지시를 받은 일행은 각자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환 또한 고추를 사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사실, 환이 고추를 사러 가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조선이라면, 당연히 없어야 할 고춧가루나 매운 김치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추를 파는 사람들이라면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환은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고추상인을 찾아다녔다.

그런 환의 눈에 들어온 건 배추부터 당근까지 다양하고 풍성한 갖가지 채소들.


"허... 내가 배운 역사에서는... 조선은 채소가 꽤 귀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뭐 어딜 가도 채소가 풍년이네?"


심지어 채소를 파는 상인들 사이에서 고추는 무척 흔하게 눈에 띄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아니면 여긴 정말 다른 차원에 있는 또 하나의 조선?'


환은 온갖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장시를 탐험해 나갔다. 

그때 갑자기 환의 눈앞에 수북하게 고추를 쌓아놓고 판매하는 상인이 나타났다. 

심지어 홍고추에 고춧가루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이라면 분명 고추에 대해 알고 있을 거야!"


환은 흥분된 마음으로 고추를 판매하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고추를 사려는 수많은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인파를 뚫고 힘겹게 그에게 다가간 환...


"저기... 이봐요..."


하지만 수많은 손님들로 인해 환의 말이 그에게 닿지 않는다.


"이봐요! 여기요! 고추 상인님!"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질러 상인을 불러보지만, 환의 소리는 손님들의 소음 속에 사라지고, 그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 이래서야 질문은커녕 고추도 사기가 힘들겠네...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하나?"


어쩔 수 없이 다른 상인을 찾기 위해 발길을 돌린 환은,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고추 상인을 바라보았다.


"어...? 가만...? 저 사람 왜 이렇게 낯이 익지?"

" 내가 어디서 봤더라...? 우리 집 손님이었나?"


어째서인지 상인의 얼굴이 낯이 익다?

환은 한참을 서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음...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맞아!"

"하지만... 설마...? 진짜야? 진짜 그 사람이라고? 이런 미친!"


**********


환이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무얼까? 그가 대체 누구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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