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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Nov 17. 2022

5년이라는 시간의 의미

대장암 치료 후 5년... 완치라는 말을 듣기까지...

"어르신 5년째 검사도 이상 소견이 없으시네요. 축하드려요. 이제는 대장암은 완치라고 생각하셔도 될 거 같아요."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이지요.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어르신이 더 고생하셨고 이제부터는 건강 검진하신다고 생각하고 1년에 한 번 정도 검사하면서 지켜보면 될 거 같습니다."

"너무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잘 나으셔서 제가 더 감사하네요. 1년 뒤에 뵐게요."

밝게 웃으시며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와 보호자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


 또 한 분의 환자가 대장암 수술과 항암을 하고 5년이라는 시간을 이겨내고 진료실 문을 나가신다. 일반적으로 암이 진단이 되면 5년간은 중증 등록이 되면서 본인 부담 의료비를 경감받는다. 그래서 그 중증 적용이 끝나는 5년 동안 재발이 없을 경우에 일반적으로 '완치'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5년 이후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의사로서 완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사실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재발이 없는 환자들이 거의 대부분이기에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히 완치라는 말씀을 드린다.


 5년이라는 시간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매우 지난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병원에 와서 검사를 해야 하고 검사 결과가 어떤지 마음을 졸여야 하며 결과가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산을 하나 넘고 나니 그다음 산이 나타나듯 시간은 다시 돌아와 검사를 하고 또다시 마음 졸이고...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완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 5년이라는 시간은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하는 심정이셨을 것이다.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재발한 건 아닌지 전이가 된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하고 먹고 입는 것부터 움직이는 것까지 무엇하나 암과 별개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으셨으리라. 그 5년이라는 시간 중 내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은 아주 미미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를 받으면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들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사람 수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암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느끼는 의미는 조금은 더 특별할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5년이라는 시간은 긴 터널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아주 어두운 터널일 수도 조금은 밝은 터널일 수도 있겠지만 암이라는 터널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 5년이라는 시간 터널 안에는 암을 진단받고 느꼈을 슬픔과 우울, 수술을 받은 후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항암 치료하면서의 고통과 인내가 모두 들어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환자의 주변에 있는 보호자들과 의료진에게 전달이 된다. 환자들의 아픔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보호자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암 환자의 보호자는 가족 구성원 전체가 된다. 환자 옆의 보호자는 아들일 수도 딸일 수도 남편일 수도 있으며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며느리나 사위인 경우도 있다. 그들은 환자가 불안해하면 다독여 주었고 치료를 두려워하면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했다. 환자가 아파하면 애써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하지만 뒤돌아서 눈물짓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보았다. 환자의 아픔을 온전히 감수하면서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하기도 하고 같이 기뻐하기도 한다. 깊은 공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리라. 하지만 가족이 없거나 가족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 환자가 느끼는 어려움과 고통은 더 심할 것이다. 환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나 감정적인 문제를 의료진으로서 모두 감내하며 보듬기는 많이 어렵다. 거기서 시작되는 의사로서의 좌절감이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환자와 보호자가 겪었을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5년이라는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셨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부터는 암이라는 공포와 부담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하게 생활을 누리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오늘도 외래에는 5년을 넘어 6년, 7년이 되신 환자 분들이 다녀가셨다. 반갑게 인사하며 살이 좀 찌신 거 같다며 가벼운 인사도 건네고 언제나 그렇듯 검사는 이상 없다는 말을 해드렸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가시기 전에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외래에는 5년을 향해가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있다. 이제 한 번의 검사만 남은 분, 이제 수술하신 분, 수술을 기다리시는 분... 그 모든 분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5년이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5년이라는 시간이 조금은 덜 힘들었으면 한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말 한마디나 지식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의 무게를 덜어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을 참고 문제없이 인내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제 암 걱정하지 마시고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세요."라고 모든 분들에게 이야기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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