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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Jan 13. 2019

12장 컨템포러리의 세계

Contemporary Art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의 육체적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동시대의 미술Contemporary Art

현대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을 말한다. 현대미술은 동시대의 미술Contemporary Art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위한 '지금 시대의 미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무색할 만큼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미술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사람들은 미술관에 가서 난해한 현대미술을 보며 당황해하고는 한다. 앞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설명을 하긴 했지만 미술에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는 사람조차도 여전히 개별 작품들을 볼 때는 해석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위와 같이 박제된 상어는 미술로써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것일까.


현대미술은 개념미술의 후손이다

현대미술은 개념미술Conceptual Art의 후손이다. 개념미술에서는 예술가의 '아이디어' 즉, 생각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결국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제된 상어가 왜 예술인지를 이해하려면 이 작품의 중심 아이디어가 '죽음'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거의 미술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뒤샹은 이를 '망막 중심의 예술Retinal art'이라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는 눈에 보이는 실제 작품만큼이나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현대미술

그런데 이렇게 미술이 아이디어 중심으로 발달한 것은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해진 것이다. 각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따로 이해하지 않으면 예술을 감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미술 전시를 가면 각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따로따로 살펴봐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대 미술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미술이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위주였던 것에 반해 현대미술에서는 각자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먼저 이해하고 나서야 감상할 수 있으니까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귀찮은 상황이 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그 귀찮음을 감수하면서 까지 예술을 감상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 미술은 점점 발전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대중들과 멀어지게 된다. 


다양성의 강화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선 예술에서 아이디어가 강조되는 것은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더 강화시켜 주었다. 예술가들의 아이디어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작품들이 생산되고, 또 그만큼 다양한 예술을 볼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였던 것처럼 근현대 미술의 다양성은 인상주의부터 시작되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 경향이 강화되었다. 

그 경향은 지금까지 이어져 예술가들은 지금도 수많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계속 '새로운 미술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미술들을 보고 있으면 미술이 이렇게까지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다양한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들은 본래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대중성을 포기하고서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미술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직업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집House’ 1993>

내적인 풍성함

한편 미술이 아이디어 중심으로 발달한 것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 위주였던 고전 미술에 비해 어떤 내적인 풍성함도 갖추도록 해 주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미술이 아이디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잘생겼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어리숙한 남자가, 더 많은 지혜를 갖추고 지적으로 성숙해진 것과도 비슷하다. 아름다움에 지성을 더한 것이다. 고전시대까지의 미술은 계속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위주로 발달해 왔는데, 현대미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여러 아이디어들은 시각미술을 좀 더 내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아이디어를 자세히 듣고 나면 이미지가 훨씬 풍부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위의 레이첼 화이트리드라는 예술가의 조각의 경우, 이미지만 보면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도대체 왜 저런 콘크리트가 예술이 될 수 있느냐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디어는 '기억의 저장'이다. 이 작품은 단독주택 한 채를 통째로 거푸집으로 사용하여 콘크리트를 안에 부은 후 벽들을 전부 뜯어내서 위와 같은 '조각'을 만든 것인데, 그녀는 자신의 집 안에 남아있는 소소한 삶의 기억들을 통째로 보존하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현대미술에서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므로 그 아이디어를 듣고 나면 납득도 되고 이미지 자체도 훨씬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현대 예술가들의 예

이렇게 아이디어가 미술에 더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현대미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잠깐 현대미술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할 만한 몇몇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것이다. 성공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이미지만 보면 도대체 왜 이런 게 예술일까 하는 의심이 들기 쉽다. 하지만 작가의 아이디어 혹은 컨셉Concept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나서 작품을 보면 시각적으로도 더 납득되고, 이미지도 더 풍성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명하는 방식은 작품의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구분하여 설명할 텐데, 작가들의 성향에 따라서는 아이디어와 이미지 중 한쪽에 더 치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린다.  


  

<제프 쿤스의 'Rabbit' 1986, 스테인리스 스틸>

제프 쿤스

이미지 : 제프 쿤스는 현재 살아있는 예술가 중에서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위의 토끼 풍선은 작품의 재료가 무엇인지 보지 않으면 그냥 헬륨 풍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조각은 헬륨 풍선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철 덩어리이다. 이미지만 분석해 보면 풍선의 '가벼운' 물성과 철의 '무거운' 물성이 상반되어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제프 쿤스는 이 두 상반된 성질의 매체를 결합시킬 때 발생하는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디어 : 제프 쿤스는 키치Kitsch라는 개념을 사용한 작가다. 키치Kitsch라는 개념은 쉽게 설명하면 고급문화를 따라 하는 저급문화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이발소에 걸려있는 복사된 모나리자의 그림이라던가, 천 원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고급스러운 유럽풍 느낌의 찻잔 같은 것이다. 토끼 풍선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종의 가벼운 대중문화, 나쁘게 표현하면 저급 문화이지만, 제프 쿤스는 이 '저급문화'를 '고급문화'의 상징인 미술관에 가져다 놓음으로 해서 문화적 계층의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제프 쿤스의 재료 선택은 매우 기발하다고 밖에는 평할 수 없는데, 대중문화의 가벼움이라는 점에서는 '풍선'을, 고급문화의 무거움이라는 점에서는 '철'을 택하였고, 이 두 가지 상반된 물성이 동시에 작품 안에서 충돌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Untitled from Marilyn Monroe’, 1967, 10개의 프린트 중 하나>

앤디 워홀 

아이디어 : 앤디 워홀은 '팝아트Pop Art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앤디 워홀의 경우는 이미지보다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앤디 워홀의 아이디어는 '예술의 공장화'다. 현대인들은 산업화 이후 물자가 매우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것은 대량의 물건을 찍어낼 수 있는 기계화된 공장 덕분이다. 앤디 워홀은 예술도 이와 비슷하게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판화 같은 형식을 취해서 수많은 예술작품을 정말로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듯 판화로 찍어내서 팔게 된다. 

이미지 : 앤디 워홀은 '대량 복제 시대의 예술의 공장화'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기발하기는 하지만, 결과로 나온 작품들이 그렇게 시각적으로 특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실제로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볼 때 눈으로 즐길만한 작품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강한 색상의 판화나 드로잉들은 산업 디자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앤디 워홀의 예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이미지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대량 복제 시대의 예술의 공장화'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그 아이디어의 배경이 된 20세기 미국의 양산형 대중문화, 또 이런 생각의 전환으로 후대에 많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에게 던진 문화적 담론들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나누어진 어미와 아이' 2012, 소와 송아지의 사체, 에드워드 코일러의 '정물화' 1696, 왼쪽위에 해골이 그려져있다>

데미안 허스트

이미지 :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로 최근까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예술가다. 그의 작품들은 상어를 통째로 포름알데히드라는 사체 보존 용액에 넣어 박제시킨다거나, 죽은 나비들을 겹쳐서 작품을 만든다거나, 소의 사체를 썩게 하여 파리가 들끓게 하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잔인하고 공포스럽다. 보통 평론가들로부터 '폭력적인 예술'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아이디어 : 데미안 허스트의 예술은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소재만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그의 예술이 자극적인 이유는, 그의 예술의 주제인 '죽음'이라는 주제 자체가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예술가로 데뷔한 이후 꾸준하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 왔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는 겪어야 할 죽음이라는 소재를 예술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예술은 고전시대에 자주 그려졌던 '바니타스Vanitas'라고 불리는 정물화 형식과 같은 맥락이다. 바니타스는 책이나 악기, 과일 같은 일상의 정물과 해골을 같이 그려 넣는 형식의 그림인데, 이 '일상'과 '죽음'의 기묘한 조합은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인간의 그 모든 것은 허무Vanity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데미안 허스트도 같은 의미로 예술을 통해 계속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 미셀 바스키야 ‘제목 없음’, 1982>

바스키야

이미지 : 바스키야의 회화는 반 고흐의 회화처럼 일종의 '내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미술은 앤디 워홀 같은 아이디어 중심의 미술에 정 반대에 있는, 이미지 중심의 미술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바스키야 같은 느낌의 현대회화를 볼 때 '이런 그림은 어린아이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라고 비판적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 평가는 매우 적절하다. 예컨대 어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릴 경우, 상처 받은 내면이 거친 이미지로 그림에 그대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바스키야의 회화에서도 인간의 '내면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내면을 시각화하는 표현적 그림들은 사실적인 회화에 익숙한 현대의 대중들로부터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그림은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그림을 보면 항상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디어 : 이렇게 '내적 표현'이 강한 회화는 아이디어보다는 그 창작자의 삶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삶에서 나온 예술이기 때문이다.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바스키야는 흑인으로써의 정체성이 회화의 주제이다. 자신이 자랐던 뉴욕 흑인 슬럼가에서 볼 수 있는 낙서나 그라피티, 혹은 아프리카의 토속 이미지 등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흑인으로써의 정체성을 회화로 드러낸 것이다. 바스키야가 활동하던 1970년대에는 미술관에 가면 흑인을 볼 수 없었다. 그만큼 흑인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바스키야는 이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 그의 특유의 반항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것이다.   


       

<에니쉬 카푸어 ‘Cloud Gate’ 2015, 시카고의 밀레니엄 공원에 설치>

애니쉬 카푸어

이미지 : 애니쉬 카푸어의 설치미술의 핵심은 '숭고의 체험'이다. 위 사진은 '시카고의 콩'이라는 별명이 있는 '구름 문Cloud gate'인데, 작품 앞에 가면 거울 같은 표면의 곡면에 반사되어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마치 '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그 체험이 애니쉬 카푸어의 미술의 주제다. 애니쉬 카푸어가 의도했던 바를 모르고 보면 그저 '둥근 콩 모양의 철 조각' 정도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의 예술이 의도한 바는 감상자가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경험할 때 느끼는 기묘함이지 반짝거리는 둥근 형태는 아니다. 

아이디어 : 이런 효과는 4장 모더니즘 페인팅의 미국 색면추상 화가들이 추구했던 '숭고'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색면추상 화가들은 색을 통해 '숭고'의 개념을 표현하려고 했고 실제로 관람하는 사람들이 거대한 그림 앞에 최대한 가까이 서서 숭고를 몸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 거대한 색에 압도되는 일종의 '신비 체험'을 하길 바랬던 것이다. 애니쉬 카푸어의 작품 역시 거대한 반사체에서 느껴지는 체험이 중요하다. 에니시 카푸어는 인도 출신의 영국 예술가니까 색면추상 화가들과 출신은 다르지만(색면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은 유대인이었다) 인도가 종교성이 강한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신비 체험' 혹은 '종교적 체험'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디어와 이미지, 혹은 내용과 형식

이렇게 다섯 명의 현대 예술가를 살펴보았는데, 이미지 중심이었던 고전시대의 미술과는 달리 이렇게 현대미술에서는 이미지 속에 담겨있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는 이미지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디어가 이미지 자체를 압도하기도 하는데, 계속 강조하였던 것처럼 미술이 아디이어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미술이 고전 미술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풍요롭게 발전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현대미술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에 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아마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디어에 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개별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는 현대미술은 단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던 고전 미술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추상회화(724-4), 1990, 게르하르트 리히터>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 - 직관적 창조

한편 현대 미술을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도, 현대미술에는 분명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 존재한다. 이는 '직관적 창조'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현대미술에서도 아이디어 중심의 미술의 밖에 있는 영역인데, 왜냐하면 어떤 예술가들은 때로는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 미술을 창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미술이 추상화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은 처음으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현대의 많은 화가들은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위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를 보며 이것이 무엇을 그린 것 인지 '언어'로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게르하르트 리히터에게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물어본다면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초기 추상화가들은 음악이나 자연, 혹은 신화와 같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추상화를 그리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예술가들은 아예 무엇을 그린 것인지 지시할 수 없는 추상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어떤 생각을 가지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미지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근대의 대표적인 추상화가였던 잭슨 폴록과 드 쿠닝은 마치 접신한 것 같은 몰두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추상회화들은 어떤 영감이나 직관에 의지해서 그린 것이므로 애초에 논리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무당에게 왜 접신할 때 그렇게 몸을 흔드냐고 물어보면 명확한 답변을 얻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해석은 비평가의 영역이다

이처럼 현대의 예술가들은 실제로 자신이 무엇을 창조하는지 논리적으로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직관에 의해 창작하기도 한다. 이는 꼭 추상화가 아니더라도 조각이나 설치 등 다른 여러 미술에서도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술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잘못된 태도가 아니다. 예를 들어 작곡가들에게 당신은 왜 지금 시대에 이런 음악을 만드는지, 그리고 당신의 음악이 왜 아름다운지를 물어보면 설명하지 못할 텐데, 음악적 아름다움 또한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명 불가능 해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미술에서도 예술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흐름 안에서 어떤 '예술가의 직관'으로 여러 이미지들을 생산해 낸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런 이미지들을 생산해 냈는지 논리적으로 정확히 풀어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이미지 메이커Image-maker이지 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은 그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어떤 이미지를 창조해 낼 뿐이다.

이렇게 탄생한 이미지에 대해서는 비평가들이나 철학자들에게 해석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옳은 태도일 수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역공학Reverse Engineering과 비슷한데, 왜 이 시대에 이런 종류의 이미지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역으로 해석을 맡기는 것이다. 예술가가 만약 어떤 미술을 창조했다면 그것은 분명 지금 시대가 잉태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길을 지나가다가 굴러다니는 사과를 보고서 '주변에 사과나무가 있겠구나'하고 추론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서양 근대의 철학자들과 비평가들은 그 '사과나무'를 찾아주는 해설자의 역할을 해 왔고 이 과정에서 근대 서양미술을 더욱 빛나게 하기도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1501-1504, 엔디 골드워시, 현대,  동굴 속의 고드름을  꺾어서 손으로 녹이면서 이어 붙인 작품이다>


현대미술도 여전히 시각예술이다

이렇게 현대미술은 아이디어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분명 고전 미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현대미술이 고전 미술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와중에도 분명 변하지 않은 미술의 속성은 있다. 미술은 시각 예술Visual Art, 즉 '보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미술이 '보는 예술'이라는 차갑게 느껴질 만큼 당연한 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미술의 감상에서 아이디어를 강조하다 보면 자칫 본질을 놓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분명 아이디어 중심으로 발전했으므로 그만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은 '이미지'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렇게 탄생한 '이미지'를 감상한다. 현대미술의 감상은 다르게 표현하면 예술가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어떤 식으로 '이미지화'시켰는지를 감상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예술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미지 메이커Image-maker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일찍이 이런 예술가의 숙명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나는 대리석 안에 천사를 보았고 그가 자유를 찾을 때까지 조각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대리석 안에 갇힌 이미지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이미지 메이커'의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이런 예술가의 역할은 현대에 와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이디어 중심의 현대미술도 결과적으로는 항상 새로운 이미지들을 생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미술의 가장 큰 장점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이미지 메이커의 역할이 더 강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미술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고전 시대의 예술에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혹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한 새로운 이미지들을 계속 다양하게 탄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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