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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Jan 13. 2019

8장 Ⅱ중세

기원후 476년 서로마 멸망 ~ 14세기 르네상스


<바르나바 다 모데나의 '성모자상', 이탈리아, 14세기, 중세의 예술은 ‘사실적 묘사’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볼 수 있다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이다>


2-1. 중세시대 (기원후 476년~ 14세기)


중세의 시작 (476~14C)

로마가 멸망하면서 중세가 시작된다. 중세시대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기독교의 시대'이다. 기간은 서로마가 멸망하는 476년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14세기까지 대략 천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중세의 시작을 서로마의 멸망으로 보는 이유는 아마 고대사회를 이끌었던 로마 제국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일 텐데, 영화로웠던 로마와 함께 고대는 끝이 나고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중세 초기의 유럽, 로마는 멸망하고 이후 야만족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국가 경계선이 생기기 시작한다. 현대의 유럽 국가들은 로마가 파편화되면서 등장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새로운 국가들의 탄생

중세의 시작은 세계관의 변화로 보면 기독교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고, 영토 중심으로 본다면 로마 멸망 후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탄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비유해 보면 로마라는 거대한 유리병이 깨지고 그 깨진 유리 파편들이 각자 나라가 된 것과 비슷하다. 이 파편 조각들이 각각 현대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여러 국가들의 전신이 된 것이다. 

로마 제국은 게르만German족이라고 통칭하는 북방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하였다. 원래 초기의 게르만족들은 로마제국의 영토를 침략했다가 약탈하고 다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도적떼 같은 느낌이었지만, 로마 말기의 야만족들은 침략 이후 돌아가지 않고 로마 영토 안에 그대로 눌러살기 시작하게 된다. 이 북방 야만족들이 이렇게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도 훈족 같은 다른 신흥 야만족에 의해 밀려났기 때문인데, 그래서 게르만족의 침략이라는 표현 대신 밀려서 들어왔다는 의미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당시의 로마제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해상도시 베네치아의 탄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도시가 되어있지만, 원래 해상도시 베네치아는 로마가 멸망하기 직전 게르만족으로부터 도망친 로마인들이 해안가의 습지대에 세운 도시이다. 로마인들이 습지대로 도망친 것은 게르만족들은 본래 해적이 아니었으므로 해안가 쪽이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해안가 습지에 피난 도시를 세워야 할 만큼 로마 말기의 사람들은 현실적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게르만 야만족들이 로마 제국 영토를 침략하고 눌러앉는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의 경계선이 차츰 정착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게르만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이 점령하였기 때문에 '프랑크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France가 된 것이고, 영국의 경우 England라고 부르는 것은 앵글로 색슨족 증에서 '앵글로 Anglo족의 땅Land'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또 독일의 영어 명칭인 Germany도 '게르만족 사람들'이라는 뜻의 Germania에서 유래하였다. 


<고대에서 중세의 차이>

시대정신의 변화 기독교의 시대

중세에 있어 영토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변화, 즉 기독교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태어난 1세기부터 시작되어 천천히 전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로마에 의해 박해받는 종교였지만 기원후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하여 공인받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국교로 선포되면서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된다. 지금도 유럽은 기독교의 색체가 짙은데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는 점차 유럽의 중심 세계관으로 자리 잡는다. 이는 그리스 로마의 '인간 중심의 시대'에서 중세의 '신 중심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신 중심의 시대로 바뀐다는 것은 유럽인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예컨대 같은 농부라도 로마시대 농부들은 어떻게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얼마나 수확을 늘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인간적인 목표 위주로 살아갔다. 이런 삶의 태도는 오히려 현대와 더 비슷하다. 반면 중세의 농부들은 농사짓는 것 자체도 신의 명령이라고 생각하며 일했고 삶의 목표도 농사를 잘 지어서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는 농부로서 어떻게 살아야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식이었다. 삶의 행복보다는 영혼의 구원을 더 중시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성직자들

중세가 철저한 '기독교의 시대'였다는 것은 중세 성직자들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성직자들은 현대로 치면 기독교의 목사나 불교의 승려와 같은 존재니까 정치적 실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권위'는 가지고 있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의 성직자들의 실제로 '권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11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교황의 파문을 피하기 위해 교황이 거주하는 카노사성에 가서 3일 동안 눈을 맞으며 무릎을 꿇고 빌었던 사건이다. 파문은 어떤 사람을 더 이상 기독교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교황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황제나 왕을 압박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없는데도 파문이라는 말 한마디로 왕들을 실제로 '무릎 꿇게'만든 것이다. 동 서양의 어떤 역사를 봐도 한 국가의 지도자를 군사력이 아닌 말 한마디로 굴복시킨 사건은 없었다. 

중세의 교황이 이렇게 왕의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던 것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신앙심이 중세인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황의 말은 곧 '신의 목소리'였고 거기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것이다. 



<보통 십자군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여러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다양하게 있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교황의 명령에 따라 유럽 각지에서 여러 귀족 가문의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

중세가 기독교 중심의 시대였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의 후반기인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말에 따라 유럽 전역의 왕과 제후들이 군사력을 움직여 예루살렘 탈환 전쟁을 시작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군사력은 실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데, 전 유럽의 군사력이 교황의 말 한마디에 움직인 것이다. 이를 현대와 비교해 보면 어느 대형교회 목사의 말 한마디에 여러 국가의 대통령들이 군사행동을 일으킨 것과 비슷하다.

이 거부할 수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따라 유럽의 여러 국가와 가문들은 똘똘 뭉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성지'인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원정을 가게 된다. 2백 년 동안 이어진 십자군 전쟁사에서는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와 이슬람의 살라딘Saladin같은 영웅들의 활약이나, 성전기사단이나 성 요한 기사단 같은 기사들의 활약, 또 롱기누스의 창Lance of Longinus(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알려져 있는 창)이나 최후의 성배Holy Grail(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다는 포도주잔)와 같은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현대에도 십자군 전쟁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리고 현대의 영화나 문학의 '중세 판타지물'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은 1095년에 시작되어 이후 200년 동안 여덟 차례의 원정이 이어지는 동안 1차 원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나마 1차 원정이 성공했던 것도 뜬금없는 침략에 중동 사람들이 당황했기 때문이었고, 얼마 후 전력을 정비한 이슬람 세력은 살라딘의 탁월한 지도력 아래 십자군 원정대를 쫓아내어 버린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어진 원정에서 다시는 예루살렘을 수복하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

십자군 전쟁 실패 이후 이후 중세의 기독교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기독교가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것은 중세라는 시대 자체가 저물어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럽 사회는 그다음 시대인 근세로 진입하게 된다. 근세는 다시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로 돌아가는 시대인데 십자군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종교적 사건이 역설적으로 인본주의 재탄생의 계기가 되었으니 재미있다. 

우선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이 전쟁을 일으킨 주체인 교황의 권위를 땅바닥으로 추락시키게 된다. 중세 사람들은 교황의 말을 '신의 직접적인 명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리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유럽의 왕들이 전쟁자금 조달로 국가 재정이 휘청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십자군 전쟁을 이어나간 것은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이 직접 명령한 전쟁이 실패하게 되었으니까 신의 전지전능함에 금이 가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쟁 실패 이후 교황의 권위가 추락함과 동시에 중세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의 권위도 약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방으로 전쟁을 떠나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동방 세계와의 교류가 뚫리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동방 세계에 남아있던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이 서유럽으로 역수입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동방에서 건너온 과거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은 중세에 갇혀있던 서유럽 지식인들에게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점차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또 전쟁을 위한 군수물품을 계속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방 무역이 활성화되었고 피사, 제네바, 베네치아 같은 무역도시들이 성장하게 된다. 무역도시의 발달은 그리스 로마에 발달했었지만 중세에 사라졌던 도시문화가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의 봉건제는 농업 중심의 사회구조인데, 도시문화의 재 등장은 다르게 표현하면 '닫힌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열린 도시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도시문화의 발달은 흩어져 있던 지식인들이 도시에 모여 머리를 모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을 것이다. 


흑사병과 중세의 종료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끝난 이후, 또 한 가지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의 변화를 주었던 사건은 흑사병Black Death이다. 흑사병은 대략 유럽 인구의 절반, 혹은 3분의 2 가량 되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는데, 이는 당장 내 가족 중 한 두 명은 반드시 죽는 것을 목격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당시에는 바이러스나 균 같은 미세 생물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므로 이 상황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막연한 공포 같은 것이었을 텐데,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내세 보다 현세 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단순히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흑사병이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흑사병만으로 중세의 종료를 설명하기는 부족하지만, 이 시점을 전후로 중세는 붕괴하기 시작하고 유럽 사회는 이제 다른 시대, 곧 근세로 접어들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시작은 르네상스Renaissance 였다.         


<독일 쾰른 대성당의 내부 모습, 독일 쾰른, 13~15세기, 중세의 예술은 교회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2-2. 중세의 미술

중세의 미술은 6장에서 다룬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중세 미술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1. 전적으로 기독교 중심의 미술이었다는 점

2. 관념의 시각화를 이룬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중세의 미술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실적 묘사 능력이나 테크닉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어설프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세의 예술가들은 사실적인 묘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그들이 가진 종교적 관념들을 이미지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중세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사실적 아름다움'이 아닌 '초월적 아름다움'이다.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성'이나 '영성' 같은 종교적인 관념들이 이미지화시킨 미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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