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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Jan 07. 2019

6장 더없이 찬란한 중세의 미술

Medieval Art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세상적 기쁨의 정원'의 부분, 1495-1505>

근대미술과 중세미술

중세의 미술에 관해 쓰기 앞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연대기 순으로 쓴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미술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과거로 돌아가 중세의 미술을 설명하는 것은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중세 미술을 설명하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세미술은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유럽의 명화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상징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근대 미술과 유사하다. 모더니즘 페인팅에서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나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 그림에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전혀 없었고, 평면성이나 숭고와 같은 관념적인 것들이 강조되었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중세의 미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의 미술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중세가 가지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어두움'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영화로웠고, 인간 중심적이었던 로마시대에 비해 그다음 유럽 사회를 이어간 중세시대는 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 탓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음침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중세 예술에 대한 평가도 이와 비슷하다. 위의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뭔가 어둡고 음침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 예술에 대한 이런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중세 사회가 너무 신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었다고 보는 인본주의자들의 비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중세가 남겨놓은 예술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너무 찬란하게 피어났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의 비판과 상관없이 대중매체에서는 꾸준히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과 같은 '중세 판타지물'들을 만들어 내고는 한다. 이것은 어쩌면 중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름다움과 분위기에 사람들이 끌리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사실적인 아름다움이나 묘사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시대의 미술들보다 못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중세의 미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을 가진 미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 '라오콘 군상', 기원전 3세기, 중세의 '사두정치 군상', 기원후 4세기>


그리스 로마 미술보다 오히려 퇴보한 것처럼 보이는 중세미술

중세 미술을 보면 인간이 미술을 어떻게 창조하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위의 두 조각상을 한번 비교해 보자. 왼쪽은 대표적인 그리스 조각인 '라오콘 군상'이고, 오른쪽은 중세 진입 시기의 4명의 황제를 뜻하는 '사두정치 군상(테트라키아 군상)'이다. 얼핏 봐도 알 수 있지만 왼쪽 그리스의 조각은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반면, 오른쪽의 중세 조각은 어딘가 모르게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재미있는 점은 왼쪽의 그리스 조각이 오른쪽의 중세 조각보다 훨씬 옛날의 미술이라는 것이다. 위의 두 조각상에는 대략 6~700년의 연대 차이가 있는데 말하자면 유럽의 미술은 수백 년의 기간 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박하고 어설픈 예술로 퇴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위의 작품뿐 아니라 중세 미술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미술은 왜 중세의 수백 년의 긴 기간 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한 것일까. 


첫 번째 가정 – 경제력 약화

이 현상에 대해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우선 하나는 경제력 문제이다. 유럽은 그리스 로마시대가 끝나고 중세로 진입하는 시기에 전체적인 경제력이 많이 약화되었는데, 이에 따라 미술도 자연스럽게 퇴보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중세의 시작은 보통 기원후 476년 로마의 멸망으로 보는데 조각상들이 '투박해' 지기 시작한 것도 실제로 이 시기 즈음부터이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 이렇다. 찬란했던 로마제국도 쇠퇴의 운명은 피할 수 없었고 국력이 쇠퇴함에 따라 자연스레 콜로세움 같은 대규모의 로마식 건축 사업들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은 본래 건축을 장식하는 부장품의 역할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건축 사업이 줄어든다고 하는 것은 조각의 수요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수요가 준 만큼 실력 있는 예술가들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가 밝지 않은 직업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법이다. 

또 전체적인 경제가 쇠퇴하면서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리던 로마의 귀족들의 수요도 점점 줄어들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신의 개인 별장을 '미술관화'했다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그리스 조각 수집에 열심이었는데 점점 시대가 어려워짐에 따라 귀족들도 그럴 여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 로마라는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과정에서 미술도 같이 쇠퇴했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가정 – 기독교가 원했던 미술

두 번째는 세계관 변화의 문제이다. 중세의 특징은 철저하게 기독교의 시대였다는 것인데 미술이 변화한 원인을 기독교에서 찾는 것이다. 실제로 미술이 '투박하게' 변하는 시점은 로마의 멸망 시점과도 비슷하지만, 기독교가 한창 번창하던 시점과도 일치한다. 기독교는 4세기 전후로 로마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럽의 새로운 종교로 자리 잡은 기독교는 그리스 로마의 조각 같은 사실적인 미술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인 비너스상, 근본적으로는 신을 조각한 것이다>

형상을 세우는 것에 부정적인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왜 사실적인 미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원래 기독교는 그 기원인 유대교에서부터 어떤 형태를 가진 상을 세우는 것을 금지해 왔다. 성경에 따르면, 형상을 세우는 것은 우상숭배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십계 제2 계명-


그리스 로마 조각은 대부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재현한 조각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렇게 신의 형상을 세우는 것을 율법으로 까지 금지했으니까 신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그리스 로마의 미술들은 중세로 진입하면서 쇠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세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아름답게 조각된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신들은 '이교도의 우상신' 일 뿐이다. 지금 시대에는 '이교도'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검은 두건을 쓰고 어딘가에 숨어서 악마라도 숭배할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당시의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보면 제우스나 비너스 같은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믿는 사람들도 '이교도'다. 이런 시대라면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묘사한 조각상들은 '도시를 아름답게 해주는 조각들'에서 갑자기 '제거시켜야 할 이교신의 조각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각상들의 제거를 명령한 기독교는 자신들의 신의 형상을 만들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의 이미지들은 사실적일 필요가 전혀 없다. 중세미술이 교육용 교재로써의 역할을 했다면 ‘상징성’을 띄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른쪽은 지오토의 ‘성모와 아이’,>

     

기독교가 필요로 한 미술 – 교육적인 미술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떤 미술을 필요로 했을까. 중세 기독교가 필요로 했던 미술은 교육적 미술, 그러니까 성경의 스토리와 교리들을 잘 설명해주는 미술들이었다. 말하자면 미술이 기독교의 '교육용 보조교재'로써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조교재가 필요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는 원래부터 사회의 하층민에서부터 시작된 종교였고, 전 유럽의 공통 종교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종교였다. 그런데 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고대에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일부 상위 계층들에 불과했으니까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려면 문자보다는 미술과 같은 '이미지'들이 훨씬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들은 사실적일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교재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선 되도록이면 단순하고 상징적인 이미지가 효율적이다. 왼쪽의 그림은 화장실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픽토그램인데, 화장실이라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사실성이 아닌 상징성이 뚜렷이 부각되는 이미지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 미술에서도 상징성이 강조된다. 예컨대 오른쪽 지오토의 그림을 보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머리 뒤에는 둥근 할로Halo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신성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이다. 감상이 목적이 아니라 기독교를 교육하고 전파하는 '정보전달'이 목적이기 때문에 일러스트처럼 사실성 대신 상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려진 것이다.

     

사실성이 사라진 근본적 이유는 기독교다

우리가 중세미술을 두고 그리스 로마 미술보다 '퇴보'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중세 미술에서 사실적인 묘사가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미술은 그리스 로마 미술보다 시각적으로 투박해 보이고, 우리는 이를 두고 기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 미술에서 사실적인 묘사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세계관 변화의 문제일까. 사실 인간사의 어떤 문제든지 한 가지 원인보다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겹쳐서 생기는 것이 보통이니까 둘 중 한 가지 원인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 둘 중 무엇이 더 주요한 원인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면 세계관의 변화, 즉 기독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우선 경제력은 사실적인 미술의 발달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 만약 경제력이 사실적인 미술의 발달과 상관관계가 있다면 고대의 다른 문명에서 사실적인 미술을 발달시키지 않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고대에는 여러 문명이 있었지만 그중 유독 그리스 로마만 사실적인 미술을 발달시켰는데 훨씬 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던 다른 고대 제국들, 예컨대 페르시아나 이집트, 그리고 아시아의 중국과 같은 다른 문명권에서는 사실적인 미술을 전혀 발달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멀리 역사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를 생각해 보면 현대사회는 역사에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현대미술이 그리스 미술과 같은 사실적인 미술 위주로 발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로마의 경제력 쇠퇴는 당시 미술이 사실성을 잃어갔던 것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퇴보가 아닌 변화다

결국 중세의 미술이 갑자기 투박하게 변하기 시작한 이유, 즉 사실적인 묘사를 잃어간 이유는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중세라는 시대의 세계관, 즉 기독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는 사실적인 예술이 필요가 없었고 대신 기독교가 필요로 했던 미술들, 즉 '상징적인 미술들' 위주로 발달하였던 것이다. 이는 실력이 아닌 의지의 문제이며, 퇴보가 아닌 변화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아름다움, 상징성의 미술

하지만 중세미술이 사실적이지 않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세 미술은 자연의 사실성을 포기함으로 인해 상징성이라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세미술이 상징성이 강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독교의 교육용 교재로써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한편 기독교의 세계관 자체의 영향도 있었다.

기독교의 세계관은 관념적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세계와 진리라는 것은 애초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중세미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독교의 '초월적인 세계'를 미술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영혼을 직접 두드리는 미술로 발달하게 된다. 사실적인 미술보다 시각적 아름다움의 측면에서는 뒤쳐질 수도 있지만 훨씬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호소력 있는 미술 형식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는 '관념이 시각화'한 미술이며 '물질이 아닌 정신'에 더 근접한 미술이다. 


          

<루카의 베를링기에로의 ‘성모와 아이’ 1230, 현대의 크리스마스 카드속의 예수>

관념의 시각화

중세 미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선 '관념의 시각화'를 이해해야 한다. 위 그림은 중세에 자주 그려진 예수와 마리아의 그림, '성모자상Virgin and Child'이다. 위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아기 예수가 보통의 아기와는 다르게 다 자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저렇게 얼굴만 성인인 아이는 없을 테니 그림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세인들은 이렇게 예수를 그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중세인들은 왜 아기 예수의 얼굴을 어른처럼 표현하였을까?

기독교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기일지라도 유일신의 아들, 그리고 현실 세계와 천상 세계의 중간쯤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러니까 중세인들의 사고에서 초월자인 아기 예수가 미성숙한 존재로 표현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즉, 중세미술에서는 실제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관념을 직접 표출하는 '관념의 시각화'가 더 중요하므로 세상의 구원자인 아기 예수를 구원자답게 진지하고 원숙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세 미술의 특징인 '상징성'이다.        

오른쪽은 현대의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다. 이를 중세 회화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한데, 현대인들은 일단 그림은 실제와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아기 예수도 진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세인들의 입장에서는 이 그림은 맞지 않는 그림이다.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절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미술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관념을 표현하는 것' 두 가지 중, 미적인 우열을 가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리얼리티reality가 강조된 사실적인 미술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 자체가 완벽하도록 아름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자연을 모사한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적이지 않은 미술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중세의 미술은 사실적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대신, 초월적 세계관을 담은 매우 독특한 상징적인 미술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독일 쾰른 성당의 ‘게로 십자가’ 965-70, 사과그림>

상징적 미술의 아름다움 - 신성Divinity

중세 미술에서 '상징적 미술의 아름다움'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보자. 왼쪽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 조각상은 독일 쾰른 대성당의 '게로 십자가'이다. 이 조각을 보면 십자가 주변에 뾰족 뾰족하게 뻗어있는 형태들이 보이는데, 이 십자가의 제작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십자가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신성이나 영성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가능할까?'

우선 신성의 단어 뜻을 풀어보면 '신적인 성품이나 정신' 정도가 될 것이다. 현대의 유물론자들은 신이 존재하는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신성을 그린다는 것은 말하자면 '존재하는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말이 된다. 신성이나 영성이 정말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차치하고서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이미지로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게로 십자가와 사과

사과 그림과 중세 미술을 비교해 보자. 우선 사과는 어린아이도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인데, 동그란 형태에 빨간색을 칠하고 꼭지를 다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말이 안 통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도 사과라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과가 아닌 신성이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신성은 사과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므로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중세미술의 대단한 점은 여기에 있다. 만약 기독교 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인에게 위의 뾰족 뾰족하게 뻗어있는 게로 십자가상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누구인 것 같으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신적인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왜 저렇게 매달려 있는 거냐?'

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이는 위의 십자가에서 뾰쪽하게 사방으로 뻗어있는 형태들을 어떤 '초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적인 존재가 저렇게 불편하게 매달려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중세인들은 사과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신성'이라는 관념을 저렇게 무언가 가시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이미지화시킨 것이고 우리는 이 상징을 읽어낼 수 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


반대의 예로, 만약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극단적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방금 전의 고대 이집트인에게 보여준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죄를 많이 지은 반역자나 범죄자여서 형벌을 받는 것 같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에서는 '상징'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저 형벌을 받는 범죄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세 미술들은 사실적 묘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의 미술가들은 신성이나 영성 같은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형상화하기 위해 그들만의 창조성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수많은 중세미술을 하나하나 가만히 감상하다 보면 매우 성공적이다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쾰른 대성당, 13세기~15세기, 고딕 양식>


중세 미술의 꽃성당 건축    

중세미술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것은 성당 건축이다. 중세에는 개별 회화나 조각은 별로 발달하지 않았는데 이는 무엇보다 당시 교회에서 필요로 했던 미술이 성당 건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회화나 조각은 대부분 성당 안을 장식하는 부장품 정도의 역할이었다. 

나는 인류가 역사에서 창조해낸 모든 미술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창조력을 보여준 것은 중세시대의 성당 건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중세의 성당들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알 수 없는 고양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사실적인 미술들이 인물이든 풍경이든 무엇을 따라 그렸다는 점에서 신의 창조물을 '모사'한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면, 중세 성당은 오로지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순수 창작물'이었다.

중세 미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성당 건축양식은 크게 로마네스크와 고딕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이 성당 건축 양식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실리카의 내부구조와 세인트 제노 성당, 이탈리아 베로나, 10세기경,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기본구조바실리카Basilica 

중세인들은 성당을 지을 때 그 기본 구조를 로마의 '바실리카'라는 법정 건물양식에서 빌려왔다. 중세시대는 로마 멸망 직후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건축양식을 이어받아서 사용한 것이겠지만 종교건물을 짓는데 법정 건물 양식을 빌려왔다는 것이 특이하다. 생각해 보면 목적이 비슷했던 그리스 로마 신전 같은 다른 종교건물을 참고하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전은 '이교' 색체가 너무 짙었는지도 모른다. 

로마시대에는 법정 건물을 부르던 말이었던 '바실리카'는 중세를 거치면서 성당을 부르는 말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만약 고대 로마인에게 바실리카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을 알려주었겠지만 현대에는 바실리카라고 하면 그냥 성당을 의미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의 정식 명칭은 'Notre-Dame Basilica'다. 

바실리카의 구조에 대해서 짧게만 설명하면, 위의 그림처럼 중앙에 신랑Nave이라고 부르는 높고 긴 거대한 공간이 있고, 그 양옆을 받쳐주는 비스듬한 지붕의 측랑Aisle이 있는 건축양식이다. 문을 열고 신랑Nave을 따라가다 보면 끝에 사제나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는 반원 형태의 강단(제실Apse)이 있는데 로마시대에는 아마 재판장이 앉는 자리였을 것이다. 

이 바실리카 양식이 성당 양식으로써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천장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실리카 안에 들어가 보면 높은 천장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이 있는데 여기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신비로운 빛까지 같이 조화를 이루면 정말로 천상의 신비가 이런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중세의 신도들은 독실한 신앙인들이었으니까 아마 더 깊이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1.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

이 바실리카 양식을 기본으로 해서, 중세의 성당 건축은 두 단계를 거쳐 발달하게 된다. 초기 양식을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하고 후기의 양식을 고딕이라고 한다. 우선 로마네스크 건축은 그 이름처럼 아직 '로마 시절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같은 로마 건축을 떠올려 보면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실용적인 느낌이 드는데 로마네스크 성당도 이런 로마의 건축의 강건한 특징이 아직 남아있는 양식이다. 로마네스크 성당을 가만히 보다 보면 교회라기보다는 요새나 성채 같은 방어용 건물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밀라노 대성당, 이탈리아, 14~16세기, 고딕양식의 성당>

2. 고딕 양식 Gothic

이 로마네스크 양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고딕 양식이다. 고딕이라는 말은 고트Goth족의 양식이라는 말인데, 고트족은 로마인들을 멸망시켰던 북방 야만족 중 하나였다. 고딕 양식이라는 말은 최초에는 다소 경멸하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로마인들은 강건한 느낌의 로마 양식을 최고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을 멸망시킨 고트족의 화려한 양식을 야만스러운 양식으로 보았던 것이다. 아마도 자신들이 그 야만족들에 의해 멸망당했으니 그렇게 낮춰서 부르는 것으로라도 불만을 표시했던 게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고트족을 포함한 다른 야만족들은 나중에 전부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니까 고딕 양식을 단순히 야만족의 양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럽 고유 기독교의 양식인 것이다. 

고딕 양식은 쉽게 표현하면 단순했던 로마네스크 양식 위에 첨탑과 같은 장식을 더해 외적으로 화려하게 진화된 것이다. 고딕 양식은 중세 말기인 12세기 즈음부터 나타나는데 잘 살펴보면 기본 구조는 바실리카라는 점에서 로마네스크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화려함 때문에 내부 구조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고딕 성당인 위의 밀라노 대성당을 잘 보면 외부는 매우 화려하지만 기본구조는 로마네스크와 같은 전형적인 바실리카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란 대성당의 첨탑들, Spire는 중세 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이다.>

첨탑Spire

중세의 고딕 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는 하늘로 높게 뻗어있는 뾰족한 장식 구조들이다. 이 구조는 첨탑Spire과 작은 첨탑Pinnacle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축 외부뿐 아니라 성당의 내부 장식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첨탑은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오면서 벽의 하중을 나누어 받는 기둥의 역할로써 설치되기 시작했는데, 점차 장식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화려하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고딕 성당의 외부와 내부를 두루 장식하는 첨탑 구조들은 기본적으로 수직으로 위로 곧게 솟아있다는 단순한 시각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첨탑들은 왜 수직으로 높이 뻗어있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이것은 신, 곧 하늘을 향한 동경이 직접 시각화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음'이라는 매우 간단명료한 형태로 시각화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로 곧게 뻗어있는 첨탑들은 강건한 성채나 요새 같았던 초기의 로마네스크 성당에서 화려한 고딕 성당으로 변모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강인함과 화려함의 완벽한 조화바실리카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은 강인하다는 것이고 고딕 성당의 특징은 화려하다는 것이다. 미술에서는 간혹 전혀 상반된 두 개의 감각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의 '강건함'과 고딕의 '화려함'이라는 전혀 반대의 감각이 만나 최고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수많은 첨탑들로 장식된 중세의 성당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알 수 없는 신비한 감정이 느껴진다. 중세 성당이 하늘의 신성Divinity을 나타내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목적에 부합하는 최고의 아름다움'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신의 집을 만드는 사람들

중세 성당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딕 성당을 디자인한 중세의 건축가들에게 있어 그들의 창조의 목표는 지상이 아닌 하늘에 있었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신이 거주하는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고딕 성당이 아름다운 것은 아마 이렇게 '신의 집'을 직접 짓는다는 중세 건축가들의 소명의식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중세의 성당 건축을 디자인한 것은 건축가들이지만 실제 성당 건축의 '주문자'들은 교황청과 지역의 대주교들이었다. 이 주문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신성한 목적'을 공유했을 것이다. 성당을 크고 아름답게 건축하면 헌금이 더 많이 걷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현대적 사고방식이다. 중세의 헌금은 사실상 세금과 같은 의무 징수 형태였기 때문에 성당 건축이 크고 화려하다고 돈이 더 많이 걷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의 종교 권력자들은 앞 다투어 더 화려한 성당을 건축하기에 힘썼는데 이는 거대하고 초월적인 건축을 통해 천상 세계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더 강한 믿음을 심어주고, 이를 통해 종교의 권위를 더 강화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직자들 자신이 '신의 집'이라면 가장 아름답게 지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을 할 때 이렇게 종교적 목적이 우선한다면 건축가들이든 주문자들이든 예산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들이 지향했던 종교적 목표에 집중하여 건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의 섭리'가 모든 것에 우선했던 중세에서만 가능한 환경인 것이다. 현대와 비교해 보면 근현대의 건축은 대부분 시멘트와 유리로 덮인 네모난 건축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자본주의 시대에 적합한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번다 거나, 조직을 더 크게 한다거나 하는 세속적 목적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는 중세 특유의 '초월적 느낌의 건축'을 시도할만한 환경이 조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중세 성당은 인류사에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 건축양식 일지도 모르겠다.        


신성한 공간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성당 건축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건축물이 어떤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조금 전 게로 십자가에 관해 질문했던 고대 이집트인에게 다시 가서, 이 건축물이 무슨 건축물인 것 같으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나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신성한 공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집'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의 집'은 건축가들의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보면 중세 성당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중세 성당을 보면서 단순히 크기의 웅장함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블라우뷔렌의 아베이 교회의 제단화, 독일, 15세기>

중세의 미술은 특별하다

중세 미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성당 건축, 그리고 다른 여러 중세의 미술들은 그저 '암흑기의 예술'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아름답게 피어났다. 계속 강조해서 이야기했지만 사실적 묘사는 미술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은 기술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정말 어려운 일은 '창조'다. 존재하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어떤 형상들을 오로지 상상력과 영감에 의존해 더듬어 가며 찾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미술은 인간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신성의 이미지'를 그렇게 더듬어 가며 찾아서 완성시킨 미술이다.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관념을 시각화하는 중세 미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 그리고 이를 완성한 중세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그저 경이롭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인류사에 가장 아름다운 그 무언가를 후대에 남겨준 것이다.    


중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서양사를 곰곰이 살펴보다 보면 인문학자들이 중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중세는 로마 멸망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로마시대 자체가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희망에 가득 차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로마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 매력적이고 매사에 긍정으로 가득 찬 '로마'라는 젊은이가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해 나가다가 결국 서서히 파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 젊은 주인공의 파멸을 부추긴 것이 기독교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세가 끝나고 이성과 합리주의를 부활시킨 르네상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전신이다. 그러니까 영화로웠던 로마제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근현대 사이에 껴있는 중세Middle age라는 시대는 말 그대로 역사 속에 어쩔 수 없이 있었던 '잊고 싶은 중간 시대' 혹은 '마녀사냥과 속죄의식으로 점철된 어두운 시대' 정도로 치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중세에 대한 평가는 인문학자들이 만들어 낸 허상은 아닐까. 그 영화로웠던 로마에도 항상 비합리는 존재했으며, 기득권 로마 시민들이 행복했던 만큼 노예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어두웠던 중세를 극복하고 새로 건설한 근대의 이성 중심주의는 결국 수천만의 원주민과 노예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제국주의를 탄생시켰으며 그 끝에는 인류사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비극,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렇게 보면 과연 중세시대만이 그렇게 인간에게 불행한 시대였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간이 추악한 것이지 중세가 특별히 더 추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없이 찬란했던 중세의 미술

중세의 미술은 더없이 찬란하다. 중세인들은 '신의 세계'가 실존한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종교적 관념을 시각화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인류사에서 가장 영적이며, 아름다운 미술들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신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수많은 중세 예술가들의 헌신에 의해 피어났다. 이것을 '헌신'이라고 까지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세의 예술가들 스스로는, 자신의 노력이 신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신론자이건 무신론자이건 상관없이 중세 미술에서 '신성Divinity' 혹은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관념이 시각화하는 과정은 흥미롭게 지켜 볼만 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에는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인류의 역사에서 앞으로도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 순수한 미술이 바로 중세의 미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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