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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Dec 31. 2018

4장 모더니즘 페인팅

근대 미술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줄기


<잭슨 폴록의 ‘No.5' 1948>

잭슨 폴록 no.5의 가격

사람들이 현대 미술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은 위와 같은 종류의 그림들이다. 이 그림은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화가 잭슨 폴록의 'No.5'인데, 물감을 바닥에 맘대로 뿌린 것 같은 이 그림은 1800억이라는 가격에 어느 부호에게 거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품이 다른 물건들에 비해 왜 이토록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그림에 과연 어떤 미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품게 된다. '바닥에 그냥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아닌가? 어린아이도 그릴 수 있는 이런 그림이 무슨 가치가 있는 거냐?'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그 생각이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말하겠다. 사람들이 가지는 비판의식 자체는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계가 대중을 기만하는 것일까.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한다

대중들의 의심과는 상관없이 미술계에서는 실제로 이 그림에 가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낙서 같은 그림이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더니즘 페인팅Modernism Painting, 즉 근대 회화의 발전사를 이해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근대 회화의 발전사를 이해하지 않고 잭슨 폴록의 그림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바둑의 규칙을 전혀 모르고 바둑 경기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바둑의 규칙을 전혀 모르고 바둑을 보면 그저 하얀 돌, 검은 돌일 뿐인 것처럼, 잭슨 폴록의 회화도 근대 미술의 발전사를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그저 이해할 수는 없는 물감 자국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미리 덧붙이자면, 근대회화의 발전사를 이해하고 나서도 잭슨 폴록의 그림이 미적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나는 여전히 별로다'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감상은 전적으로 관객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회화는 무엇인가?'

모더니즘 페인팅, 즉 근대 회화는 1870년대 인상주의부터 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의 미국 미술까지 약 한 세기 정도의 회화들을 가리킨다. 피카소나 고흐도 물론 이 흐름 안에 포함되어 있다. 

2장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상주의 이후 사실적인 고전회화의 전통은 붕괴하였고 이때부터 화가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난 수백 년의 역사 동안 선배 화가들은 계속 사실적인 그림만 그려왔는데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그려야 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이때부터 회화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회화란 무엇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사실 꽤 교묘하다. 만약 누군가가 '예술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이렇게 범위가 넓은 질문은 애초에 정답이 있지 않으므로 각자 소신대로 답변해도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회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범위가 좁기 때문에 마치 어떤 명확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다. 회화는 무엇일까? 어떤 대상을 보고 똑같이 그리는 것이다? 아니면 고흐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이 질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각자 답을 내어놓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근대 회화가 꽃을 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예술가들이 질문을 고민하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사 자체에서 어떤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화가들의 답변들, 즉 모더니즘 페인팅 Modernism Paintings의 발전사를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계속 강조하였던 것처럼 인상주의 이후부터의 미술사는 거미줄처럼 다양하게 뻗어 나가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수없이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주로 큰 흐름들만을 살펴본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따라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앙 루이스 지로데의 ‘어네스트의 초상’, 1807, 클로드 모네의 ‘파라솔을 쓴 여인’, 1875>


1. 인상주의 1870~

인상주의는 근대회화의 출발점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회화란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회화란 빛을 그리는 것이다'라는 답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반사된 빛을 보는 것'이므로 빛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고전 미술의 사고방식에서 아직 벗어나지는 않았다. 

'빛을 직접 그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위 두 그림에서 드레스의 색을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왼쪽의 고전 회화에서는 하얀 드레스는 본질적으로 흰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흰색으로만 그렸다. 반면 오른쪽 모네의 그림을 잘 관찰해 보면 같은 흰색 드레스를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흰색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늘색, 연보라색, 연노란색 등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네가 흰색이라는 물질의 본래 색은 고려하지 않고, 드레스에 실제로 반사되는 색을 포착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맑은 날 하얀 티셔츠를 입고 야외에 나가면 옷이 약간 푸르게 보이는데 이는 하늘색이 흰옷에 반사된 것이다. 모네는 그 색을 포착해서 그린 것이다. 

한편 인상주의 그림들은 그림을 그릴 때 계획대로 차근차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 눈에 비치는 빛들을 바로바로 찍어서 그린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그림이 차분하고 견고 하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뭔가 날라 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위의 두 그림 중 어느 그림이 더 견고해 보이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왼쪽 고전회화 쪽이 더 견고해 보인다고 생각할 텐데, 이는 조금 뒤 설명할 세잔과 연결된다.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나무와 밀밭' 1889, 폴 고갱 'Arearea' 1892, 폴 세잔 '테이블 구석' 1895>

2. 후기 인상주의 (1880~)

후기 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는 인상주의 직후 나타난 다양한 미술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인상주의 이후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본격적으로 구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많지만 그중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고흐, 고갱, 세잔을 보통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화가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3명의 화가는 이후 미술세계에 표현주의, 원시주의, 입체주의라는 3가지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 세명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흐

우선 3장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흐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회화는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감정적 표현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흐의 유산은 이후 인간의 감정을 직접 시각화하는 표현주의의 길을 열어주었고 멀리는 추상미술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고갱

고갱은 '원시주의Primitivism'의 흐름을 만들었다. 고갱은 새로운 회화의 답을 '원시적 이미지'에서 찾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던 고갱은 도시적인 삶을 정리하고 가족까지 내팽개치고는 타히티라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가서 그림을 그렸다. 타히티 섬에 사는 때 묻지 않은 원주민들의 삶과 그들의 토속 미술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다. 고갱은 문명과 단절된 어떤 '원시적인' 이미지에서 새로운 회화를 찾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갱의 친구들을 그의 그림을 '야만적Barbarian' 이라고 평했는데 고갱은 이런 평가에 매우 만족해했다고 한다. 


세잔 

세잔은 이후 피카소로 잘 알려진 '입체주의Cubism'의 흐름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 입체주의의 흐름은 회화란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 세잔의 미술에 대해서는 짧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체주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인상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길 바라는 일종의 안티-인상주의Anti-Impressionism의 성격을 가진다.


후기 인상주의는 보통 이렇게 3명으로 대표된다. 고흐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흐름을, 고갱은 원시주의Primitivism의 흐름을, 그리고 세잔은 입체주의Cubism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고흐의 ‘오베르의 성당’ 1890, 뭉크의 ‘절규’ 1893>

3. 표현주의 – 고흐 사후 1890~

표현주의Expressionism는 '회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정한다. 3장에서 설명하였던 것처럼 표현적인 그림을 처음 그린 것은 고흐였지만, 이후 '절규'로 유명한 뭉크를 통해 표현주의라는 사조로 정착하게 된다. 

표현주의는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 감정과 같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대상의 형태가 점점 붕괴되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재현'이 아니라 '표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왼쪽은 고흐가 그린 성당 그림인데, 성당 건물이 마치 흘러내리는 것처럼 형태가 많이 찌그러져 있고 오른쪽의 뭉크의 '절규'에서도 인간의 형태가 찌그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표현에 집중했기 때문에 사실성이 붕괴하는 것을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타울의 성 클레멘트 성당의 천장화, 12세기>


미술에서 사실성이 붕괴하는 것은 중세시대에도 있던 현상이다. 중세의 미술은 상징성이 강했기 때문인데, '상징성'이 강하다는 것은 쉽게 예를 들어 위의 중세 벽화에서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이면 그 상징성을 반영하여 크게 그리는 것이다. 실제 대상의 크기보다는 내적으로 느끼는 크기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표현주의에서도 역시 내적인 표현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사실성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고, 중세에도 다른 의미에서 내적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사실성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둘 다 대상의 실제 대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들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1905>

4. 야수주의  - 1905~

야수주의Fauvism는 계보로 정리하면 고갱의 원시주의Primitivism의 흐름을 이어받은 사조다. '야수'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강한 색채를 활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야수주의의 대표 화가는 마티스였는데 고갱과 고흐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강한 색체에 영향을 받아 야수주의라는 사조를 만들게 된다. 강한 색체의 사용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원시적 미술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의 마티스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야수주의에서는 단순히 색채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원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색조차 무시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위의 그림에서 처럼 여인의 얼굴색을 살색이 아닌 녹색으로 칠한다거나, 나무를 보라색으로 칠한다거나 하는 현상이다. 

이는 모더니즘 페인팅의 발전 과정에서 회화가 고전의 형식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상주의나 후기 인상주의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색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야수주의부터는 아예 눈에 보이는 색까지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비평가들은 '색체로부터의 탈출'이 시작되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형태로부터의 탈출'이 나타나는 미술은 피카소의 입체주의다. 



<피카소의 ‘바이올린과 포도’, 1912>

      

5. 입체주의 1907~        

후기 인상주의에서 세잔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이 입체주의Cubism이다. 입체주의를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면 회화를 '도형의 전개도'처럼 펼쳐서 그린다는 것이다. 왜 전개도였을까. 입체주의자들은 전개도의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대상을 더 진실되게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상을 전개도로 펼쳐 놓으면 정면뿐 아니라 뒷면이나 옆면까지도 다 그릴 수 있으므로 대상의 안 보이는 부분까지 뒤집어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입체주의의 결과물은 여전히 난해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입체주의는 크게 아래 세 가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 세잔의 아이디어인 '사물을 구, 원통, 원뿔로 분석해서 보는 방법'

2. 세잔의 아이디어인 '다 초점Multi Perspective'

3. 원시적 아프리카 미술        


3의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력이 나타나는 것은 고갱을 포함한 여러 근대의 화가들이 당시 제3세계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입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1, 2의 아이디어가 세잔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는 세잔의 아이디어를 발전, 확장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피카소는 스스로도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이해하려면 세잔이 왜 1,2의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   


       

<카라바조의 ‘도마의 의심’ 1602,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낮' 1890, 배경이 검은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고전회화는 인상주의 회화에 비해 강하고 단단한 느낌을 준다>

세잔의 아이디어 1 - '사물을 구, 원통, 원뿔로 분석해서 보는 방법'

세잔은 원래는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모네를 포함한 여러 인상주의자들과 같이 활동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인상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일종의 안티-인상주의자가 된 것이다. 세잔은 왜 갑자기 안티-인상주의자가 됐을까.

세잔은 인상주의 그림이 새롭고 혁신적인 그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주로 반사된 빛만 신경 썼기 때문에 그림이 전체적으로 빈약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 왼쪽 카라바조의 그림을 오른쪽 인상주의 모네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고전회화는 강하고 단단한 느낌이 든다. 세잔은 고전회화가 가지고 있던 장점이었던 '견고하고 강인한 이미지'가 인상주의로 가면서 무너졌다고 보았다. 인상주의자들이 너무 '표면'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그림이 전체적으로 빈약해져 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세잔은 이 '견고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다시 되살리고 싶어 했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자들’ 1898-1905>

고전회화처럼 다시 강한 그림을 그리길 원했던 세잔이 생각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내부 구조'의 강화다. 인상주의가 '표면'을 그렸다면 자신은 '내부 구조'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잔은 대상을 구, 원뿔, 원통 같이 도형적 구조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마치 건축을 단단하게 짓기 위해 내부 뼈대와 구조를 신경 쓰는 것과 비슷하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자들'을 보면 세잔은 여자들의 몸과 팔을 마치 딱딱한 목각인형처럼 그려놓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대상을 구조적으로 그림으로써 뭔가 단단한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인상주의들이 전적으로 '표면'에만 신경을 썼다면 세잔은 반대급부로 뼈대와 같은 '내부구조'만 신경을 쓴 것이다.   

      

<세잔의 ‘주방의 탁자’, 1888-90, 그림이 굉장히 난잡해 보이는데 이유는 초점이 여러 개인 것처럼 그렸기 때문이다. 물병, 바구니, 사과 각 사물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가 다른 것>


세잔의 아이디어 2 - ‘다 초점Multi Perspective’

두 번째는 다 초점Multi Perspective원리다. 세잔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상주의의 연약함을 극복하여 고전회화의 특징인 '견고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되살리고 싶어 했다. 세잔이 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각 대상마다 고유의 초점을 부여한 것이다.

위의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 각 사물들이 전부 다른 각도에서 본 것처럼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구니는 정확히 옆면에서 본 것처럼 그려져 있고 그 옆 항아리는 약간 위쪽에서 본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황당하게도 한 화면에 여러 초점이 섞여 있는 것이다.

세잔은 고전 회화들처럼 하나의 초점만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각 사물마다 각자의 초점을 부여한 것인데, 이는 각 사물에게 사물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최적의 초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바구니라는 물건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옆면이고 그 옆의 항아리는 약간 위에서 그려져야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보았다. 세잔은 이렇게 대상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초점을 각자에게 부여한 것인데, 그렇게 대상의 개성을 강화시켜 주면 강한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투탕카멘왕과 아누비스가 그려진 이집트 벽화, 기원전 14세기경>

대상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초점을 선택해서 그리는 방식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이는 이집트 미술이다. 위의 이집트 그림을 보면 눈은 정면, 얼굴은 옆면, 몸통은 정면, 발은 옆면을 그리는 식으로 대상의 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초점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사람이 만약 몸은 정면으로 놓고 허리는 오른쪽으로 90도 튼다면 아마 허리가 부러지겠지만, 이집트인들은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보다 특징이 잘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대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는 바구니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방향이 옆면이므로 옆면만을 그렸던 세잔의 생각과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세잔의 정물화는 고전회화에서처럼 정물들을 잘 조화시켜서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기보다는, 개별 정물들을 각자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따로 그린 후 한 화면에 몰아넣은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전혀 통일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전 회화처럼 어떤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각 사물의 개성과 본질이 더 잘 드러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짧게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세잔의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고전 화가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이나 미학자들 중에는 세잔의 이런 사고의 전환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이런 사고의 전환 때문에 세잔은 후대에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입체주의는

입체주의Cubism는 세잔의 직계 후손 같은 느낌이다. 사물을 도형처럼 '구조적'으로 그리는 것과 '다 초점'으로 그리는 것은 둘 다 세잔이 추구했던 논리였는데 이를 피카소와 브라크가 발전시키면서 등장한 미술이 입체주의였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바이올린 그림의 경우, 보통 사람들에게 바이올린을 그리라고 하면 자기 눈에 보이는 앞면만을 그릴 테니까 바이올린의 옆면이나 뒷면은 당연히 볼 수 없다. 하지만 위의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바이올린의 앞면뿐 아니라 뒷면과 옆면, 그리고 동그랗게 말린 고사리 같은 머리 부분까지 여러 초점에서 본모습을 한 화면에 모두 욱여넣어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전개도처럼 바이올린을 펼쳐서 그린 것이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하면 입체주의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이는 피카소가 했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술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새의 노랫소리는 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가?'

기본적으로 피카소를 포함한 입체주의자들은 과학자나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정해진 방식을 완벽하게 지키면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입체주의라는 형식은 갖추었지만 일단은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전개도라는 느낌은 알 것 같지만 어떤 부분을 보면 전개도 아닌 거 같고 너무 복잡해 보인다'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 또한 맞는 생각이다. 



<칸딘스키의 ‘구성 7(Composition VII)’ 1913>

6. 추상 회화의 탄생 1910~

추상회화의 탄생은 모더니즘 페인팅, 즉 근대 회화의 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이다. 우선 회화는 야수주의에서는 색체로부터 탈출을, 그리고 입체주의에서는 형태로부터 탈출을 경험한다. 이 두 '탈출의 현상'은 회화가 고전회화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회화는 고전회화의 기본이었던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바람이나 소리 같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 외에 사랑이나 고통, 광기 같은 여러 감정들, 그리고 신성이나 영혼 같은 고차원적 개념들을 모두 포함한다. 

추상화는 크게 두 가지의 계보가 있다. 우선 고흐가 감정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뭉크가 이를 이어받고 다시 독일 표현주의가 이어받아 칸딘스키가 최초의 추상화를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세잔과 피카소로 이어진 입체주의에서 출발하여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으로 연결되는 흐름이다.

추상미술의 탄생은 그렇게 보면 한 명의 독자적인 발명이라기보다는 인상주의 이후의 여러 예술가들이 복합적으로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나타난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봐야 한다. 가장 초기의 추상화가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독자적으로 추상화를 발전시켰다기보다는 고흐나 마티스, 피카소를 포함한 수많은 선배 화가들의 그림들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추상미술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최초의 추상 화가는 칸딘스키이다. 칸딘스키는 첫 추상화의 시도로 음악을 그리려고 했다. 이는 적절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음악이야 말로 완벽하게 추상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예로 든다면 월광 소나타를 들을 때는 뭔가 고요한 달빛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거꾸로 곡의 제목을 모르고 피아노 소리만 들을 때는 '월광 소나타'라는 제목을 맞출 수가 없다. 음악은 이렇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소리를 사용하여 뭔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추상적인 예술이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추상화를 음악을 이미지화시키는 과정으로 생각했는데 예를 들어 노란색은 트럼펫의 가운데 도와 같은 느낌의 소리라던가 하는 식으로 연결점을 찾는 것이다. 또 제목을 '구성 7', '즉흥 2'처럼 지었는데 이는 음악에서 '베토벤 7번 교향곡' 또는 '4번 소나타' 이렇게 이름 짓는 것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런 칸딘스키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는지는 각자 판단해야겠지만 어쨌든 칸딘스키는 이렇게 음악과 연결 지어 최초의 추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을 위한 구성 II' 1929>

계속 발전하는 추상화

하지만 칸딘스키 이후 추상화는 조금 더 복잡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추상화가 점점 아예 무엇을 그린 것인지 규정할 수 없는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음악'이라는 대상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설명할 잭슨 폴록이나 드 쿠닝 같은 후대의 추상 화가들은 아예 그리는 대상도 없고 상징도 없는 '중립적이고 순수한' 추상 이미지들을 만들게 된다. 


7. 1차 세계대전(1914–1918)과 2차 세계대전(19391945), 유럽 미술의 종언

최초의 추상회화가 탄생하고 얼마 뒤 유럽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미술은 완전히 몰락한다. 유럽의 미술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1,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파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유럽의 대도시들이 황폐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으로 인해 수백 년을 이어온 유럽 중심의 미술 세계는 종언을 고하게 된다. 

이후 미술 세계의 중심은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동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세계 1, 2차 대전에서 세계 패권국가의 지위를 처음으로 획득하였다. 미국은 1, 2차 대전에서 무기판매를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고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게 된다. 이 시기에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계도 이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져 뉴욕은 여전히 세계 미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1909-1994>


8. 그린버그의 출현(1909~1994, 주 활동 시기 1940~)

근현대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서 비평가가 예술가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단 한 번 뿐일 텐데 그 비평가는 바로 미국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이다. 이 젊은 비평가는 그의 이론만으로 미술세계가 유럽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이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확실한 패권을 쥐기 위해서는 문화적으로도 유럽을 앞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조직을 통해 미술을 포함한 여러 문화 분야를 지원했다. 지금 유명한 수많은 미국의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은 그 시류를 타고 성장한 것이다. 그중 그린버그는 군계일학이라고 해야 할 만큼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을 갖춘 인물이었는데, 그가 정립한 근대미술의 이론은 1,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뉴욕 중심의 미술 체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린버그의 이론을 모르면 미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술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잠시 그린버그의 이론을 살펴보도록 할 텐데, 그린버그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영Illusion과 평면성의 원리Flatness 라는 두 가지 개념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미술전공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므로 잘 살펴주길 바란다. 


환영 Illusion

미국 중심의 근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첫 번째 개념은 환영Illusion이다. 환영하면 뭔가 귀신같은 것을 뜻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술사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미술에서의 환영은 가장 쉽게 말하면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이를 진짜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화가가 '나폴레옹' 인물화를 그리면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고 '나폴레옹'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매우 당연한 말처럼 보이는데 왜 환영이라는 이름까지 붙이는 것일까. 

관점을 다르게 해서 생각해 보면,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허구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정확한 묘사와 원근법, 명암법 같은 화가의 기교를 통해 평면을 입체처럼 보이도록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2D 평면'이지만 예술가의 기교를 통해 '3D 입체'처럼 보이도록 속인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 화가의 기교를 통해 관객들이 그림에서 3차원을 인식하는 것을 '환영을 인식한다'라고 표현한다. 가짜 입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화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능력으로 여겨졌던 원근법, 명암법, 묘사 기법 같은 환영을 구축하는 화가의 능력을, 고전회화에서는 긍정적 의미의 '예술가의 테크닉'으로 보았다면, 그린버그는 일종의 '속임수' 같은 부정적 의미로 보게 된다. 회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평면인데 왜 거기다가 환영을 구축해서 관객을 속여야 하냐는 것이다.


<잭슨 폴록의 'No.30 autumn-rhythm' 1950>

평면성의 원리 Flatness

이 환영Illusion에서 파생한 개념이 '평면성Flatness의 원리'이다. 뭔가 어려운 말 같지만, 간단히 말해 

'회화의 속성은 평면이니까, 자신의 본질인 평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것이다. 비평가 그린버그는 근대회화는 자신의 본질인 '평면'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전회화는 계속 2D인 평면에 3D을 구축, 그러니까 평면에 환영을 구축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근대 회화는 쓸모없는 속임수 따위는 제거해 버리고 평면을 완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평면성Flatness의 원리라고 한다. 그린버그는 이 평면성의 원리를 철저하게 따르는 것이 근대회화Modernism painting의 완성이며 진정한 예술적 깊이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잭슨 위의 폴록의 회화에는 어떤 입체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특정 사물이나 인물을 연상시키는 형태나 색, 원근법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이런 그림은 어떠한 눈속임도 존재하지 않고 회화의 본질인 평면 그 자체로 돌아가려고 노력한 그림이다. 그저 색과 물감이 요동치는 '혼란스러운 평면' 일 뿐인 것이다. 그린버그 식으로 표현하면 환영Illusion이 존재하지 않는 평면Flatness적인 그림, 그러니까 '가장 회화다운 회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린버그는 이 잭슨 폴록의 '혼란스러운 평면'을 근대 회화의 완성에 가장 근접했다고 보게 된다. 

미국 미술은 이렇게 그린버그의 이론적 영향력 아래서 유럽 미술과는 뭔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환영과 평면성의 원리라는 두 가지 개념 아래 지금까지의 예술과는 다른 종류의 예술들이 탄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잭슨 폴록의 ‘No.1’ 1949>

9. 추상 표현주의 1946~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그린버그의 이론과 함께 뉴욕 중심의 미국미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우선 잭슨 폴록의 회화는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그린버그의 이론인 '평면성의 원리'에 가장 잘 부합하는 회화이다. 폴록의 회화에는 어떤 환영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연상시키는 형태나 색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고 깊이감도 존재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평면'만 존재한다. 사조로는 추상표현주의라고 이야기하는데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상Abstract, 뭔가 표현적이므로 표현주의Expressionism, 합쳐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로 불리게 된다.


회화의 정답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

이 장의 초입부에 모더니즘 페인팅, 즉 근대회화의 발전사는 기본적으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라고 하였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미술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인상주의부터 이어져온 이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란 무엇인가? 회화는 본질적으로 평면예술이다.'

만약 회화의 본질이 '평면예술'이 맞다면 그 본질인 평면에 가장 근접한 회화가 최고의 회화라는 논리도 성립한다. 잭슨 폴록의 회화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이것이다. 근대 회화의 강령인 '평면성의 원리'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의 그림에 대한 이 해석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갈릴 수 있다. 잭슨 폴록의 회화가 근대 회화의 완성에 가장 근접했다는 그린버그의 평가에 동의할 수도 있고, 여전히 그의 그림은 그저 물감을 흩뿌린 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잭슨 폴록의 회화는 이 가치를 인정받아 이후 미국 중심의 미술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윌렘 드 쿠닝의 ‘Woman V’ 1950, 드 쿠닝은 잭슨 폴록과 같은 추상표현주의로 분류한다. 미술 전공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화가다>

잭슨 폴록의 회화는 그린버그의 미술 비평과 결합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미술세계를 이끌게 된다. 그만큼 추상표현주의는 미국 미술에서 상징성이 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헷갈리면 안 되는 것은 잭슨 폴록이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를 듣고 그 원칙을 따라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잭슨 폴록은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인디언들의 주술적 미술에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 그림에 대한 해석으로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가 도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이것이 잭슨 폴록과 그린버그 두 사람의 대단한 점이다. 잭슨 폴록은 이론적 배경 없이 직관으로 근대적 회화를 만들어 낸 것이고 그린버그는 여기서 이론적으로 어떤 근대 현상을 발견해 낸 것이다.


근대 현상 

그렇다면 그린버그는 왜 이런 해석을 하게 된 것일까. 그린버그는 혁명 이후 근대 문화 전반에 나타난 어떤 공통된 현상을 추출해 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 현상을 '자각Self-consciousness'의 현상으로 파악했다. 회화에서는 회화의 본질인 평면성을 자각하는 것이 모더니즘의 현상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잭슨 폴록의 회화에서 그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린버그가 이렇게 모더니즘 현상을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근대 문화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여러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회화 이외에도 조각이나 건축, 음악 같은 다른 문화 분야에서도 '자각'이라는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음악의 경우 전통적인 유럽식 화성학을 버리고 '소리 그 자체'를 자각하려는 현상, 조각에서는 사실적인 인체 묘사를 버리고 조각의 본질인 '굴곡이 있는 덩어리'를 자각하는 현상 등이다. 이 근대에 나타나는 '자각'의 현상은 모더니즘 현상의 핵심이고 다소 어렵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자세히 기술하도록 하겠다.


추상표현주의의 감상

추상표현주의가 평면성의 완성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별개로, 이런 회화에서 어떤 '미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는 '이론적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저 물감을 흩뿌려 놓은 그림에서 무슨 감상할 만한 것이 있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 추상화의 감상이 고전회화의 감상과 같기는 어렵다. 고전회화는 자연을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했는가가 중요한 감상 지점이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잭슨 폴록의 회화 앞에 선다면 자연의 모사가 아닌 '순수 이미지'자체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밤하늘의 별들이나 성운과 같은 거대 천체들의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볼 때 논리적 사고 없이 이미지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추상표현주의의 회화들이 우주의 아름다움보다 뛰어나지는 않겠지만 신이 아닌 인간이 창조해낸 이미지라는 것을 감안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비록 자연이 가지고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에 필적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의 모방'이 아닌 인간 스스로 창조해낸 '순수 이미지'라는 점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넷 뉴먼의 ‘Vir Heroicus Sublimis’ 1950, 마크 로스코의 'no.13' 1958>

10. 색면추상Color-field Painting 1940년대~1950년대

색면추상Color-field Painting은 추상표현주의와 함께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회화 중 하나이다. 잭슨 폴록은 적어도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리기는 했는데 색면추상 화가들은 진짜 화면을 같은 색 물감으로 칠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쯤 되면 아마 '이건 진짜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색면추상은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에 부합하는 두 번째 흐름이다. 설에 의하면 1950년 즈음에 잭슨 폴록이 갑자기 추상표현주의를 포기하고 사람 얼굴을 그리는 구상Figurative 회화로 돌아가려고 하자 그린버그는 잭슨 폴록에 실망했다고 한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즘 페인팅의 완성을 2차원 평면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규정했는데 잭슨 폴록이 다시 3차원 환영이 나타나는 과거의 회화로 돌아가니까 실망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린버그는 자신의 이론과 잘 맞으면서도 미국 모더니즘을 대표할 수 있는 화가로 바넷 뉴먼Barnett Newman과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밀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위의 로스코의 그림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색으로 칠한 것이 전부인 색면추상은 아무런 환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에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해도 그냥 한색만 발라 놓은 회화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사람들이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선 우선 '숭고Sublime'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숭고 Sublime

'숭고하다'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보통 '숭고한 사랑'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뭔가 고차원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던가,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뭔가 높은 차원의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숭고는 이렇게 우리의 욕망이나 물질세계를 뛰어넘은 어떤 고차원적 세계를 의미한다. '숭고한 사랑'이 그런 고차원적 사랑이라면 '숭고한 아름다움'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숭고한 아름다움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가장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거대한 자연을 바라볼 때 느끼는 신비로운 느낌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을 보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면, 그 경외감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일종의 숭고의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색면추상 화가들은 이런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폭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단색만을 칠해 놓았다. 색면추상화가들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일까?

                       

<붉은 방, 우리가 아무것도 없고 사방이 막힌 붉은 공간으로 들어가서 몇 시간 동안 갇혀 있는 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이 감정의 정체를 언어로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숭고의 체험

이렇게 예를 들어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완전하게 붉게 칠해진 방에 반나절 동안 갇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느껴지는 감정은 어떤 종류의 감정일까? 이 '붉은 방에서의 체험'은 우리에게 일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만약 그 붉은 방에서 공포를 느낀다면 그 공포는 맹수가 우리를 공격할 때에 느끼는 공포와 같은 공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설명하긴 어렵지만 분명 질적으로 다른 공포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방에서 어떤 환희 같은 것을 느낀다면 이것은 우리가 달콤한 케이크를 먹었을 때의 환희와 같은 환희라고 할 수 있을까? 

색체에서 느끼는 감정은 '현실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초월적인 경험, 그러니까 '숭고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색면추상 화가들이 의도한 것은 관객들이 그의 그림 앞에서 그런 초월적인 경험, 즉 '숭고'의 기분을 느끼길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색면추상 화가들은 보통 그림을 사람의 크기보다 크게, 평균 2m 이상이 되도록 거대하게 그렸고 전시 도우미들을 통해 관객들이 그림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보도록 유도했는데 이것은 회화를 멀리서 그냥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앞에서 거대한 색을 직접 '체험'하고 거기서 숭고의 느낌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색면추상 화가의 대표화가인 바넷 뉴먼을 평가할 때 뉴먼이 유대인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바넷 뉴먼의 작품 제목을 보면 우리엘(유대교의 천사 이름)이나 아브라함(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처럼 유대교의 성경과 관련된 종교적 내용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신의 '형상'을 절대로 만들지 않는 종교로 유명하다. 그것은 필멸자인 인간이 감히 절대자인 신의 형상을 만들 수는 없다는 이유인데, 신의 형상이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인간의 지성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고, 감히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의 형상을 절대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신의 절대성을 더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무런 형상을 그리지 않고 오로지 색만 존재하는 그림은 어떻게 보면 '숭고함' 혹은 '초월성'을 표현하기 더 적절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약간 장황하게 설명이 됐지만 색면추상Color-field Painting은 이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색면추상 화가들의 아이디어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숭고' 혹은 어떤 '종교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써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솔 르윗 'Wall floor piece#1' 1976>

11. 미니멀리즘 1960년대~1970년대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그린버그의 평면성flatness의 원리에서 파생된 사조이다. 미니멀리즘은 현대에 디자인이나 패션 등 산업 쪽에서 자주 빌려 쓰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뭔가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술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디자인이나 패션 쪽에서 오로지 단순함만을 가져와서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사실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미니멀리즘의 본래 의미와는 다르다. '단순함'은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미니멀리스트들의 생각을 한번 따라가 보자. 평론가 그린버그는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근대회화의 완성'에 가장 근접하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일부 예술가들은 잭슨 폴록의 그림은 완벽한 평면이 아니며 여전히 환영이 남아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잭슨 폴록이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물감들이 겹쳐지는 과정에서 먼저 뿌린 물감과 나중에 뿌린 물감 사이에는 '높낮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정말 '완전한 평면'이라고 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잭슨 폴록의 회화에서도 어느 정도의 입체감, 즉 환영은 남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가 환영을 제거시키고 근대회화를 완성시켰다는 그린버그의 말을 믿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완벽하게 제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묘한 찝찝함이 미니멀리즘을 탄생시킨다. 미니멀리즘은 이 사소한 환영까지 완전히 제거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초기의 미니멀리즘에서는 아예 화면을 단색으로 칠하는 등 '최대한 단순한 미술'을 지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이 환영과 평면성의 문제를 좀 더 논리적으로 꼼꼼히 따지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아무리 단색으로 칠하는 극한의 단순함을 추구해도 결국 환영을 완전히 제거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우선 미니멀리즘의 주장에 따르면 환영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보는 대상'을 '다른 어떤 것'으로 지각할 때 발생한다. 이 말을 좀 더 살펴보자.


    

<미니멀리스트들의 해석: 환영은 예를 들어 위의 녹색 물감을 보고 ‘나뭇잎’을 상상해 버릴 때 발생하는데 이는 '녹색 물감'을 '나뭇잎'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환영Illusion에 관한 논리적 고찰

예를 들어 위의 녹색 물감이 퍼진 모양을 보다가 어떤 나뭇잎 모양이 어렴풋이 떠오른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일단은 물감이 퍼져나가는 모양에서 나뭇잎 모양을 떠올린 것이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것은 우리가 '녹색 물감'이라는 물질을 '나뭇잎'이라는 다른 물질로 인지한 것이 된다. 사실 그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풍경화든 인물화든 '물감'을 화면에 잘 펴 발라서 '어떤 다른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고전회화에서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경우 '물감'이라는 물질을 '리사'라는 여인으로 인지시키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이 논리에 따르면 환영이라는 것은 '물감이라는 물질'을 '그리는 대상이라는 다른 물질'로 인지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고전의 모든 미술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조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의 조각만 봐도 우리가 '하얀 대리석'을 '사람'으로 인지하는 것이니까.

이 미니멀리즘의 논리를 쫓아 가면 아예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하얀 바탕색만 칠한 극단적으로 단순한 회화에서도 그 지긋지긋한 환영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화면을 보다가 갑자기 '눈이 덮인 땅'을 상상해 버리면 그건 '하얀 물감'을 '눈밭'으로 인지했다는 것이 된다. 또는 아예 검게 화면을 칠해 놓아도 누군가 이를 보고 밤하늘을 떠올린다면 이는 '검은 물감'을 '밤하늘'로 인지 하는 것이 된다. 즉 아무리 단색으로 칠한 극단적으로 단순한 회화에서도 환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회화와 조각 내에서는 어떻게 해도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잡을 수 없는 꿈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만들고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환영의 구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 안드레 '평형 VIII' 1966>

미니멀리즘에서 나타난 벽돌 전시

그렇다면 환영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영은 '원래 물질'을 '다른 물질'로 인지하면서 발생하므로, '원래의 물질'을 '원래의 물질 그대로' 인지할 수 있다면 환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처음에 도입한 방법 중 하나는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벽돌'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왜 벽돌이었을까. 벽돌들이 쌓여있는 것은 풍경이나 인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쌓여있는 벽돌들'그 자체일 뿐이다. 고전 회화가 '물감'을 '사람이나 풍경'으로 인식하는 과정이었다면 벽돌 전시는 '벽돌'을 '벽돌'로 인지하는 과정이므로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댄 플레빈Dan Flavin같은 예술가는 전시장에 형광등만 덩그러니 달아 놓기도 했다. 이는 형광등같은 단순한 공산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이를 보면서 다른 어떤 형상을 떠올리지 않고 그냥 '형광등이 있다'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은 정육면체 같은 도형을 연속적으로 쌓아 놓기도 했는데 이도 마찬가지다. 도형의 경우 형태가 극단적으로 단순하므로 사람들은 이를 볼 때 도형 자체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정리해보면, 미니멀리즘에서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래 물질'을 '본래 물질 그대로'로 인식키는 예술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미니멀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특별한 사물Specific Object'이라고 불렀다. 회화나 조각이라는 장르 자체가 환영에 기반한 미술이므로 회화나 조각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고 그냥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다만 예술에서 사용하니까 특별하므로 특별한Specific 사물Object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사물'을 어떻게 전시해야 할까. 미니멀리즘에서는 벽돌이든 형광등이든 최대한 단순하게 배치시켰다. 관객들은 복잡한 형태의 무언가를 보면 자꾸 다른 형상을 상상하게 되고 그러면 그 꼴 보기 싫은 환영이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벽돌이라도 산처럼 쌓아놓으면 관객들은 '벽돌로 산을 형상화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는 환영이 개입할 여지를 주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니멀리즘은 이 환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 것이지 그냥 단순하다고 해서 다 '미니멀리즘 미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중매체에서는 보통 그냥 단순하면 다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일종의 오해라고 봐야 한다.     

 


    

<요셉 코수스의 ‘하나와 세 개의 의자’ 1965, 의자 실물과 의자 사진,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설명을 같이 전시하였다>

12. 미니멀리즘의 자식, 개념미술 -1960년대 이후

그린버그의 평면성의 원리에서 출발한 미니멀리즘이라는 독특한 미술사조는 이후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그리고 개념미술에서 모더니즘 페인팅, 즉 한 세기 동안 이어진 근대회화의 발전사가 끝나게 된다. 

개념미술은 간단히 말하면 미니멀리즘이 환영을 피하기 위해 '사물'로 단순화하다가 아예 물질조차 없는 '언어 개념'까지 단순화해버리는 것이다. 말이 어렵긴 하지만 예를 들어 미니멀리스트들이 벽돌이나 형광등 같은 공산품을 전시했다면, 개념미술가들은 이 마저도 없애버리고 그냥 개념, 그러니까 '벽돌' 혹은 '형광등' 같은 단어들만 전시장에 붙여놓는 식이다. 벽돌을 전시할 바에야 차라리 벽돌이라는 '언어'를 벽에 붙여 놓은들 무엇이 크게 다르냐는 것이다. 실제로 개념미술가들은 실제 작품이 아닌 '언어'만 전시해 놓았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미술전시를 보러 갔는데 벽에 글자들만 적혀있었으므로 황당했을 것이다. 



미술관에 작품을 보러 갔는데 아무것도 없고 그저 언어만 덩그러니 있는 것은, 미술이 개념, 즉 아이디어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미술이 가장 근원인 아이디어로 돌아간 것, 즉 '환원'한 것인데, 이는 모더니즘 페인팅 자체가 평면이라는 본질로 '환원'하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진행이다. 그런데 미술을 이렇게 아이디어까지 환원시키고 나면,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 아이디어가 가장 본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술관에 있는 회화나 조각처럼 눈에 보이는 작품을 예술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결국 예술의 가장 깊은 본질은 물질이 아닌 머릿속의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예술의 본질이라면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회화와 조각은 무엇일까. 회화와 조각은 결국 예술의 본질인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평면을 선택하면 '회화', 입체로 표현하면 '조각'이 될 뿐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죽음'이라는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다>

회화의 정체성이 사라진다

결국 개념미술에서부터 회화나 조각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껍데기에는 정체성이 필요 없다. 과거에는 화가나 조각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의 모네Monet는 누가 봐도 확실히 화가였다. 화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생 그림만을 그렸고 회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네 이후의 수많은 화가들도 그 정체성 때문에 '회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을 이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개념미술 이후의 현대 예술가들은 화가나 조각가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현대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화가라고 부를 수도 없고 조각가라고 부를 수도 없다. 자신의 아이디어인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조각이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위처럼 설치미술을 하기도 하고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아이디어가 본질이므로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예술가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조각가나 화가라고 부르기도, 그렇다고 영상 제작자나 글 쓰는 작가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해진다. 그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이것저것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에는 조각가, 화가라는 표현 대신 예술가Artist나 작가(만드는 사람)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해탈

개념미술을 '모더니즘 페인팅의 마지막'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렇게 개념미술에서 회화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페인팅, 즉 근대회화는 이장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상주의 이후 '회화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쫓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추상표현주의를 통해 '회화는 본질적으로 평면예술이다'라는 모더니즘의 강령을 찾게 되었고 이를 계속 완성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모더니즘의 강령을 논리적으로 완성시키려다가 결국은 내부의 모순을 발견하였으며 이는 미니멀리즘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미니멀리즘은 개념미술로 환원한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의 끝인 개념미술에서, 결국 예술의 본질은 아이디어이며, 회화는 이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표현방식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회화에 대한 고민은 완전히 사라진다. 회화는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껍데기'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껍데기에 대한 정체성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다가 스스로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것이니까 마치 불교의 해탈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지만 실제로 회화는 이런 발전 과정을 거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세기 동안 이어진 모더니즘 페인팅, 즉 회화에 대한 고민은 끝이 나게 된다.     


게임의 규칙근대회화Modernism Painting의 발전사

여기까지가 게임의 규칙, 근대회화Modernism Painting 발전사의 대략적인 흐름이다. 이 흐름은 근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들에 진행되어 왔고, 그런 만큼 근대 미술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줄기이다. 

모더니즘 페인팅은 예술을 위한 예술, 즉 Art for art's sake의 결과물이었다. 근대회화가 어려워진 이유는 가장 궁극적인 순수성을 지향하다 보니 예술이 자꾸 철학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이는 감상자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난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니멀리즘 이후부터는 미술 전공자들 조차 머리가 지끈거리는 내용들로 넘쳐나니까 미술을 교양으로써 이해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대중의 외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나름대로의 고민을 통해 근대의 새로운 미술들을 창조해 왔다는 것은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 장을 통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근대의 회화들이 결코 사기나 치기 어린 장난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설명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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