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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Dec 22. 2018

1장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미스터리

상투형Stereotype에대한 이해

                                                                               

<알타미라 동굴벽화, 약 18000년 전, 스페인>

구석기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위 벽화는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로 알려져 있는 '알타미라 동굴벽화'이다. 스페인의 어느 동굴에서 발견된 이  동굴 벽화는 연대측정 결과 대략 18000년 전, 그러니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구석기시대 정도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것이 조작된 가짜 벽화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털북숭이 원시인'들이 그렸다고 하기에는 이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예술적 완성도가 너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의 생김새나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 등을 보면 현대의 예술가들이 그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1879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사투올라 Marcelino Sanz de Sautuola(1831-1888)가 이 동굴 벽화를 최초로 발견하였을 때, 당시의 주류 고고학자들은 사투올라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의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몰래 현대 예술가들을 고용해서 그럴듯하게 그려놓고서는 사기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고고학계에서는 이런 명성을 노린 사기행각이 종종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사투올라는 정말 명성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친 것이었을까.



<빗살무늬 토기, 약 6000년 전, 신석기, 대한민국>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당시 주류 고고학자들의 의심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위는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빗살무늬토기'이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유물로, 추정 연대는 대략 6000년 전 정도이다. 사투올라가 발견한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추정 연대가 구석기 18000년 전 정도니까 둘 사이에는 1만 2000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다. 그런데 빗살무늬 토기는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비교해 보면 대충 봐도 너무 단순해 보인다. 그저 빗살무늬를 단순하게 연속적으로 새겨서 구워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대 학자들이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의심을 품은 이유였다. 신석기에 나타난 미술도 기껏해야 빗살무늬 토기와 같은 단순한 토기에 불과한데, 그보다 1만 년 전인 구석기에 그려진 벽화가 저렇게 높은 수준의 예술성이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단순한 미술에서 복잡한 미술로 발전하는 것이 순서상 맞아 보인다. 실제로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하고 사실적인 미술로 발달하는 것은 보통 미술학원에서 어린아이에게 그림 교육을 시키는 순서와도 일치한다. 



<왼쪽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그림이고 오른쪽은 고학년의 그림이다. 오른쪽의 사실적인 그림이 더 그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린이 그림 교육의 순서

단순한 도형적인 그림 -> 풍경이나 정물 같은 사실적 묘사 

초등학생들은 미술학원에 가면 보통 위와 같은 순서로 미술을 배운다. 왼쪽 그림처럼 저학년 때는 도형이나 곤충 같은 단순한 형태를 그리다가 실력이 쌓이면 점점 사실적인 풍경이나 정물화 등으로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오른쪽 그림처럼 그리는 단계를 가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법은 배우는데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재능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어린이 그림들과 선사시대의 유물들을 비교해 보면 저학년이 그린 단순한 그림이 빗살무늬 토기와 유사하고, 고학년이 그린 사실적인 풍경화가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유사하다. 그러니까 두 선사시대의 미술은 발전 순서가 완전히 역전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당대의 학자들이 의심을 품은 것은 너무도 상식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투올라는 정말 사기를 친 것일까?

당시 사투올라를 의심했던 고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자동차를 타던 사람들이 1만 년쯤 지나니까 말을 타고 다니더라'처럼 앞뒤가 전혀 안 맞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동굴벽화의 최초 발견자였던 사투올라는 늦은 나이에 벽화 발견이 사기행각이라는 고소를 당하고 거짓말쟁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채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정말 사투올라는 사기꾼이었을까? 

동굴벽화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사투올라가 죽은 얼마 뒤 다른 여러 고고학자들이 비슷한 종류의 구석기 동굴 벽화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수준의 여러 동굴벽화들이 발견되면서 사투올라가 발견한 알타미라 동굴벽화 역시 선사시대에 그려진 다른 여러 동굴벽화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사투올라를 의심한 학자들의 생각은 분명 합리적이었지만 그들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슷한 수준의 동굴 벽화들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면 거기에는 분명 어떤 공통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사투올라를 우리가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를 발견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는 것으로 위로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투올라는 거짓말을 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당대 주류 학자들의 의심이 틀린 것이었다.

구석기의 원시인들이 현대인들에 버금가는 수준의 미술을 만들어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구석기보다 더 발달된 문명이었던 신석기시대에는 왜 빗살무늬토기처럼 오히려 더 퇴보되어 보이는 미술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어느 어린이가 그린 가족의 그림, 왼쪽에 노란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우리는 이 전혀 사실성이 없는 그림을 보고 ‘고양이’로 인식할 수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열쇠 - 상투형 Stereotype

위의 그림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우리는 누구나 고양이라고 인식한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이렇게 단순한 그림을 보고 고양이를 떠올릴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저 고양이 그림을 개에게 보여준다면 어떨까. 개는 아마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는 왜 저 그림을 고양이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일까.

위의 그림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보통 어린이들에게 고양이를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은 이런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이들은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아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어린이도 자신이 아는 대로 고양이의 특징을 강조해서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어린이가 고양이의 수염이나, 뾰족한 귀 모양, 꼬리 등 고양이만의 전형적인 특징을 강조해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강조하여 그린 고양이의 어떤 특징들을 고양이의 '상투형 stereotype’이라고 한다. 상투형은 쉽게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대상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우리가 고양이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상투형 정보를 '해석'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와 같은 동물들은 이 그림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인간의 추상능력

인간은 왜 동물과 다르게 이렇게 명확한 상투형을 가지고 있을까? 인간이 어떤 대상의 상투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발달된 추상 능력 덕분이다. 우리가 고양이의 특징으로 수염이라던가 날카로운 눈매라던가 하는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고양이의 특징들을 추상화시켜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필요할 때 이를 꺼내서 사용한다. 세상에는 수천만 마리의 고양이 개체가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모두 고양이라는 한 종으로 묶어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고양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된 특징, 즉 상투형을 추상능력을 통해 추출해 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상능력을 사용하여 상투형을 인식하는 것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예컨대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같은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식별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에게 고양이라는 동물을 인식시키려면 보통 수만 장에서 수십만 장의 예시 사진이 필요한데, 컴퓨터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의 데이터가 축적된 다음에야 '고양이'라는 대상에 대한 상투형을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데이터가 쌓여도 인공지능은 일정 정도의 오류를 발생시키는데 반해, 사람의 경우는 고양이라는 동물을 생전 처음 본다고 해도 보통 한 두 번만 보고 나면 다음에도 거의 오류 없이 고양이를 인식해 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인간의 추상 능력은 이렇게 효율성이 뛰어나다. 


추상화된 개념들 - 계절

인간의 추상능력은 단순히 동물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동물들에게 계절의 개념이 있을까?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를 마치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날씨의 춥고 더움에 대한 본능적 반응만 있을 뿐 4계절을 구분하지는 못한다. 동물들은 왜 계절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답은 간단하다. 계절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절의 개념은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 놓은 추상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봄의 경우 인간이 따듯한 날씨가 지속되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봄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지 원래 자연계에 봄이라는 정확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겨울과 봄의 정확한 경계가 정확히 '몇 월, 며칠, 몇 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추상화 능력은 모호한 것들을 비교적 명확하게 만들어 준다. 계절이 우리에게 쓸모 있는 이유는 1년 365일이라는 긴 시간을 4계절로 단순화시켜서 거기에 맞춰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추상화 능력은 쉽게 말하면 단순화하는 능력이다. 1년이라는 긴 시간을 4개의 계절로 구분한다거나, 수많은 고양이의 외형을 몇 개의 압축된 특징으로 단순화시킨다거나 하는 것처럼 복잡한 자연에서 단순한 원칙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삼각형>

삼각형의 탄생 - 고도의 추상능력

인간의 추상능력은 단순히 고양이나 계절을 구분하는 것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추상도 가능하게 해 준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기하학, 즉 '도형'을 사용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자연계에는 완벽한 모양의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당연히 삼각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삼각형은 전적으로 사람이 추상화의 과정을 통해 유추해 낸 것이다.          

고작 삼각형 따위를 생각해 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지구 상의 어떤 똑똑한 동물들도 삼각형을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삼각형을 이해하려면 삼각형을 구성하는 특징, 그러니까 직선이나 각도, 혹은 숫자3과 같은 삼각형의 특징을 개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동물들은 가장 기본인 직선 개념 조차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간단한 삼각형도 사실은 인간 지성의 발현인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이해하는 열쇠

여기에 바로 동굴벽화의 오해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다. 신석기의 빗살무늬 토기는 매우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신석기인들이 삼각형, 사각형, 원, 직선 같은 기하학적 개념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선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있는 토기라면 '직선'의 개념을, 삼각형이 연속으로 배치되어 있는 토기라면 '삼각형'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하학적 무늬들은 형태적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자체로 인간의 복잡한 추상화 능력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알타미라 동굴벽화 같은 사실적인 그림들을 그린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 구석기의 원시인들은 밖에서 사냥을 하면서 본 동물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저녁에 동굴로 돌아와서는 기억한 그대로 그렸을 것이다. 말하자면 '기억력'만 있으면 충분히 그릴 수 있는 것이고 어떤 복잡한 추상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전한 인간의 지능

구석기의 유물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기하학 문양이 신석기시대에 대부분의 유물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기하학적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 현상을 인류 지성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구석기 사람들에 비해,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뇌는 기하학을 추상할 수 있을 만큼 더 진화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능의 발달'의 관점에서 보면 구석기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신석기의 빗살무늬 토기로의 진행은 정확히 순서가 맞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동굴벽화에서 → 빗살무늬토기로 이어지는 원시시대의 미술은 퇴보가 아니라 발전으로 봐야 한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더 단순해졌지만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지능을 사용하여 그린 것이다.    


농사와 미술 추상능력

신석기시대에 사람들의 추상능력이 발달했다는 것은 미술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에서도 나타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가장 큰 차이는 농경의 시작 여부이다. 인류는 구석기의 수렵, 채집 사회에서 신석기에 농경사회로 진입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이것을 인류의 '제1 혁명'이라고 했다. 농사라는 간단한 행위를 가지고 혁명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동물 수준의 인간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간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농경의 시작은 본격적인 문명의 시작을 알린다. 

그런데 농사와 미술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추상능력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구석기인들에게 자연은 마치 신비한 괴물과 같았을 것이다. 매번 겨울이 올 때마다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현실적으로 죽음을 걱정했을 것이고, 매일 동굴밖에 내리는 눈과 찬바람을 바라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추위를 지켜보는 것은 아마도 매우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계절'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없으면 겨울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끝나는 것인지 도저히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의 고대 풍습에는 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제사들이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는데, 이는 자연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대인들의 불안감을 암시한다.

이 미몽에서 깨어난 신석기의 인류는 처음으로 계절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봄, 식물이 생장하는 여름, 그리고 열매를 맺는 가을이 온다는 사실, 그리고 어쩐지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자연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으면서 봄에 씨앗을 심으면 가을쯤에는 추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신석기의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추상능력의 발달 덕분이었다. 계절과 같은 추상적 개념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농경도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신석기 미술에서 처음으로 도형을 새긴 토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석기시대에 농경사회로 진입한 것도 추상능력의 덕분이었고, 미술에서 기하학적 문양이 등장하는 것도 역시 추상능력의 덕분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부분>


어느 그림이 더 높은 수준의 그림인가?

다시 동굴벽화로 돌아와 보자. 앞서 살펴본 어린아이의 그림들과 위 알타미라 동굴 벽화 둘 중 어느 것이 시각적으로 더 아름다운 그림이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동굴벽화가 더 아름답다고 평할 것이다. 예술가의 눈으로 봐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그려진 물소의 표현력은 뛰어나며 아름답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어느 그림이 더 똑똑한 그림인가?”

라고 질문할 경우라면 대답은 달라진다. 비록 어린이의 단순한 그림일지라도 추상능력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은 인간의 지성을 반영한다. 추상화된 그림은 지구 상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코드화 code 시켜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이 코드를 해석할만한 지능이 없는 동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이다?

이렇게 구석기 미술과 신석기 미술의 차이는 인류의 지능 발전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차이는 미술 형식의 관점에서보면 '사실성'과 '상징성'의 차이다. 구석기 미술은 '사실성'이 강조된 미술이었고 신석기 미술로 이동하면서 점점 '상징성'이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런 사실성 → 상징성으로 변화하는 추세는 이상하게도 서양 미술사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아주 간단하게 도표로 정리하면 위와 같다. 이렇게 반복되는 시대 흐름이 생기는 것은 미술사의 작은 수수께끼다. 미술발전의 흐름이 이렇게 상징성과 사실성이 반복되는 패턴을 가지는 것에는 어떤 명확한 이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각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저 시대의 요구에 맞춰서 열심히 미술을 창조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반복되는 패턴이 생기는 것이 재미있다. 앞으로 살펴볼 미술에서 계속 그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지성의 산물미술

신석기의 미술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미술은 '지성'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미술은 사실적인 미술이 아니었다. 때문에 단순히 자연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복제 했느냐로 미술을 판단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흐리게 만든다. 이는 사투올라를 의심했던 고고학자들의 편견에서도 나타난다. 자연을 복제한 미술들은 아름답기 때문에 미술이 지향해야할 이상향 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류가 지금껏 만들어온 미술들을 살펴보면 인류의 미술은 '자연을 복제한 결과물'이 아닌 '지적인 창작물'인 경우가 더 많았다. 

자연은 완벽하도록 아름답기 때문에 그를 모방한 미술들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너머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인류는 계속 그런 미술들을 만들어 왔다. 앞으로 살펴볼 미술들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계속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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