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신영 Dec 22. 2018

최소한의 미술사 서문

교양으로써의 미술

이 책은 미술을 교양으로 이해하기 위한 사람들 위한 책이다.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말에는 '먹어 본다', '들어 본다'와 같이 어미에 '-본다'가 붙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듣다'와 '본다'는 완전히 다른 감각 동사인데 이를 같이 사용하니까 아마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일 것이다. '먹어 본다'를 영어로 표현하면 eat-see 정도가 될까. 어쨌든 이 한국 동사의 특징은 시각 정보의 중요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70% 이상의 정보를 시각정보를 통해 얻는다고 한다. 사는 동안 우리는 눈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한다. 젊은 남녀가 처음 서로에게 설레는 것도 시각정보 때문이고, 어느 맑은 날 저녁의 하늘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도 시각 정보 때문이다. 

실용적인 입장에서 보면 별로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미술이 지금까지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렇게 인간이 시각정보에 의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서 수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음악이 아닌 미술을 선택해온 것은 이러한 시각 의존성에 관한 통찰 때문이 아닐까. 시각 정보가 인간에게 이렇게 특별하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시각 정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발전 과정에서 탄생한 수많은 예술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문화 분야가 이렇게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그 과정을 만들어온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경이로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미술의 발전사를 대부분 접해보지도 못한다는 것 자체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은 우리가 평소에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것처럼 우리의 짧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현대의 미술은 즐기기보다는 어쩐지 '이해' 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일종의 지적인 사기이다. 왜냐하면 미술은 근본적으로 설명을 동반한 논리 구술로 이해하는 것이라기 보단 그냥 '보는 것'이고 또 어떠한 측면에는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미술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취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글이 사회의 그 어떤 계층의 사람에게든 상관없이 소탈하게 시각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편집에 관하여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은 연대기 순으로 서양 미술사를 다룬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사람들이 미술을 감상하기 위한 최소한의 미술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사 전체를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근대와 현대의 미술이 가장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만약 연대기 순으로 기술할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분량이 기형적으로 비대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평범한 방식은 아니지만 근현대의 미술들을 포함하여 몇가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을 앞쪽에서 미리 해석해 두고 뒤에서 미술사의 순서대로 다시 정리하는 방식을 택하였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한편 역순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오히려 과거의 미술들을 이해하기 훨씬 쉽게 만들어 준다는 이점도 있다. 미술에 대한 미학적 정리는 근대에 와서야 자세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현대의 미술을 먼저 이해하고 과거의 미술을 보는 것은 정리된 관점으로 과거의 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