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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맛나러갑니다 May 17. 2021

쉐이크쉑, 자네 한발 늦은 것 같네.

수제버거 맛집 천국이 된 대한민국

대한민국에 역대급 폭염이 찾아왔던 2016년 여름. 쉐이크쉑 1호점이 강남역에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나섰다. 매장 앞에 도착해보니 “어머, 줄이 별로 없네?’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줄은 건물 뒤를 돌고 돌아 12시 좀 못 되어 도착한 나는 오후 4시가 거의 다 돼서 매장에 입장하게 된다.


얼굴과 손발은 다 탔고, 화장은 이미 흘러내려 없어진 지 오래, 몸에서 나는 땀냄새 어쩔. 4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린 내가 기특하면서도 참 무식한 것 같았다. 이게 뭐라고.

매장에 들어가자 주방 안에는 본사 스태프들도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분주히 햄버거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에서 이미 먹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행복감이 가득해 보였다. 내 차례가 되어 버거를 들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감동의 물결. 촉촉하고 고소한 번에 내가 좋아하는 얇은 스매시드 패티에 진한 치즈맛. 너무 맛있었다. “아, 이래서 다들 쉐이크쉑, 쉐이크쉑 하는구나” 점심 먹으러 갔다가 저녁을 먹게 되었으니 솔직히 뭘 먹어도 맛있었을 것이다.


그 후, 그 맛이 자꾸 생각났다. 그러나 이 더위에 또 줄 설 엄두는 안 났다. 인파가 줄어들고 날씨가 선선해지기를 기다렸다 몇 달 뒤 쉐이크쉑을 또 찾았을 때는 실망감이 컸다. 첫날 4시간을 기다려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패티에서는 소 냄새 (나는 음매~ 냄새라고 부른다)가 났고 그 날 번에서 느낀 촉촉함은 없었다. “이게 뭐지? 마법이 풀렸나?”

4시간 기다려 먹은 버거는 정말 꿀맛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인데 우리나라 요식업은 물올랐다. 종류가 정말 다양해졌고, 모든 종류의 음식이 상향 평준화됐다. 우리는 지난 25년간 해외를 많이 다녔고, 많은 음식을 접해 우리의 입맛은 고급이 되었다. 대충 어설프게 흉내 낸 음식은 단박에 알아차렸고 외면하기 시작했다. 요식업자들도 마찬가지로 그 입맛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고 요즘은 모든 맛집은 대한민국, 특히 서울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미국에 가는 모두가 반드시 방문한다는 동부의 ‘쉐이크쉑’, ‘파이브 가이즈’, 서부의 ‘인앤아웃’은 많은 이들이 한국에 진출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파이브 가이즈만 먹어봤는데 나 역시도 미국은 자주 못 가니 이 맛있는 버거를 한국에 제발 진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은 것 같다. 우리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슬슬 수제버거를 접하기 시작했고 수제버거는 20년 동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최근 절정에 달했다. 2021년 대한민국은 수제버거 맛집 천국이다.




내 기준으로 수제버거는 4단계에 거쳐 지금까지 온 것 같다.


1세대 - “2000년 초반 전국을 주름잡던 ‘크라제 버거’”

2001년쯤이었나. 맥도날드, 버거킹, 하디스(지금은 없어졌는데 내가 살던 동네에 있었다. 한국에 너무 빨리 진출한 불운의 브랜드...) 등의 패스트푸드 햄버거만 먹어오다 이대 앞에서 처음 접한 ‘크라제 버거’는 가격과 맛 모두 놀랠 노자였다. 수제버거니 패스트푸드 집에서 파는 버거에 비하면 맛있는 건 당연했고, 20년 전인데 햄버거가 거의 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만원이면 하루 3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주는 먹지 못하고 크게 한턱 쏴야 할 때나 나 자신에게 비싼 한 끼를 선물하고 싶을 때만 가끔 찾던 곳이 수제버거 집이었다. 그리고 이 집의 칠리치즈 프라이와 핫도그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사방에 지점을 내면서 2000년대 중반 정말 잘 나갔던 크라제버거는 어느새 다 사라졌다.


2세대 - “아 이게 진짜 미국식 버거 인감? ‘스모키 살룬’”

친구가 이태원에 엄청난 수제버거 맛집이 있다고 했다. 해밀턴 호텔 근처에 있는 ‘스모키 살룬’. 가게는 공기에 흩어진 기름 때문에 바닥과 테이블이 미끌미끌했고, 비옷을 입고 가야 하나 고민될 정도로 환기가 안 되는 집이었다. 계란 프라이와 정말 맛있는 베이컨에 육즙 가득한 패티가 들어간 버거와 두툼한 웻지 감자튀김을 먹는 순간, 크라제 버거는 바로 잊었다. 크라제가 뭔가요?

몇 년 뒤, 스모키살룬도 네트워크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나의 동선 (특히 근무지!!)에까지 진출해서 쾌적한 환경(환기 잘되고 넓고, 웨이팅 없고)에서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근데 왜 때문인지 어느 순간 그 많던 지점들이 문을 다 닫았고 지금은 이태원 1호점 하나 남아 있는 것 같다. 아... 나도 안 간 지 몇 년 된 거 보니 다른 선택지가 많아서 경쟁에서 밀렸나 보다...


3세대 - “3세대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롱런하고 있는 ‘다운타우너’”

쉐이크쉑이 한국에 진출한 같은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태원 주택가에 위치한 다운타우너 1호점은 아보카도가 들어간 비주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오픈한 지 얼마 안돼 갔을 때도 이미 많이 알려져 줄을 40분 넘게 (그것도 겨울에) 섰지만 맛 본 후에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보카도 버거는 아보카도가 패티와 소스의 짠맛을 잡아줘 좀 더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치즈버거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베이컨 치즈버거를 가장 좋아한다. 이태원 말고도 여러 곳에 생겨 아직도 맛있는 수제버거 먹고 싶은데 잘 모르겠음 무조건 다운타우너를 주문한다. 비슷한 시기에 생긴 브루클린 버거 조인트도 맛있지만 난 여기가 더 좋다.

요 근래 들어서는 베이컨 치즈 버거만 먹고 있다.

4세대 - “찐 미국 맛이다, 미국 맛이야. 스매쉬드 패티를 쓰는 치즈버거집들”

어느 날 해방촌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치즈버거집이 있다. 위치도 참 애매한데 있는데 줄 선다고 했다. 그때 나름 다이어트한답시고 밀가루 자제하던 때였는데 버거 하나 다 먹고 다이어트는 다 잊고 그냥 아쉬웠더랬다. ‘노 스트레스 버거’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 쌓이는 날 먹으면 체증이 싹 내려갈 것 같은 맛이었다. 번은 육즙을 빨아들여 매우 촉촉했고 약간의 양파와 머스터드 그리고 케첩 끝. 심플하면서도 알찬 맛이다. 근데 위치가 애매해서 자주 못 갔다. 근데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무에서 유는 창조 못해도 누가 만들어놓은 거 기가 막히게 비슷하게 그것도 빠르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지 않은가. 비슷한 종류의 버거를 파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압구정 ‘선데이 버거 클럽’ 강추하고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홍대에 ‘스매시드 보이’라는 곳도 치즈버거가 맛있는 것 같다. 치즈버거 사랑하는 나는 행복하다.

해방촌에 위치한 노스트레스 버거. 인근에 있으면 배달도 된다.
최근에 가장 맛있게 먹은 수제버거 - 압구정 선데이버거클럽


 외에도 맛있는 수제버거집이 정말 많아  글에  쓰기 어렵다. 스매쉬드 패티 말고 두툼하고 육즙 가득한 버거는 다음에 한번  소개해볼까 한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수제버거 천국 한국 사랑한다잉~ 쉐이크쉑, 자네는 한발 늦은 것 같네. 좀 더 일찍 오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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