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그곳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지는 싱가포르였다. 우리가 결혼할 때 신행지의 트렌드는 몰디브, 하와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갑자기 싱가포르라는 곳에 매료되고 말았다. 신혼여행 전에 내가 싱가포르에 한 번 간 것이 전부였고, 남편은 싱가포르라는 나라를 신혼여행지로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도 뭐에 홀린 것처럼 우리는 싱가포르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싱가포르의 매력에 빠질 것이라는 운명.
마치 요정이 건 주문에 빠지듯, 신혼여행 때의 경험은 우리 부부를 자꾸 싱가포르로 이끌었다. 어떨 땐 칠리 크랩이 너무 먹고 싶어서, 또 어떨 땐 싱가포르의 초록빛이 그리워서. 자꾸 싱가포르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절절해졌고 그럴 때마다 만사 제쳐두고 (이렇게 말하지만 정말 백번 생각나는 걸 겨우 겨우 참아 한 번씩 간 것이다! 우린 정말 많이 참았더랬다.) 싱가포르로 달려갔다.
첫 싱가포르는 낯설기만 한 도시였다. 비행기로 6시간이나 걸리는 데다가, 티켓값도 그리 싸지 않다. 물가는 지금에서야 좀 비슷해졌지만, 처음엔 왜 이렇게 비싸! 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음식물 섭취하거나 길거리에서 침을 뱉는 등의 행동을 하면 벌금이 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아직까지도 태형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여행하기 전 우리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몇 번 다니고 나니 벌금을 물 정도의 행동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아서 마음이 편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여행자에게 그렇게 좋은 조건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싱가포르에 빠져들었다.
덥고 습한 날씨의 매력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어릴 땐 그것이 장점이라 배웠지만, 커서 어른이 되니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계절, 아니 여름과 겨울이라는 두 계절이 너무 뚜렷해서 미칠 지경이다. 극단적으로 너무 덥고, 너무 춥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일 년 내내 여름이다. 덥긴 하지만, 덕분에 매일매일 초록빛이 가득한 나라다. 조경도 잘해놓아 다닐 때마다 눈이 즐거웠다. 식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대로 싱가포르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싱가포르의 초록빛이 정점을 이루는 곳은 바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Gardens by the Bay)'와 '주얼 창이 공항 (Jewel Changi Airport)'이다. 둘 다 인공적인 식물원들이지만, 초록빛이 그득 담긴 공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에 유명 건축가가 참여해서 우주선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축 디자인도 좋고. 그냥 마냥 좋기만 했다. 일 년 내내 더운 나라의 장점을 싱가포르에서 배운 것 같다.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싱가포르
싱가포르처럼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곳은 거리의 풍경이 묘하다. 크고 번쩍이는 건물 사이로 절이 보이기도 하고, 모스크가 있기도 하다. 심지어 힌두교 사원도 볼 수 있다. 온 세상 민족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나라의 분위기 덕분에 작은 도시 국가이지만 작지 않게 느껴진다. 이국적인 풍경이 넘실거려서 정신없을 것 같지만, 그 가운데 영국 식민지 시절 지어졌던 옛 건축물이 중심을 잡는다.
미래적이면서도 예스럽고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자유분방한 나라라고 해야 하나? 뉴욕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소문이 났지만 글쎄, 싱가포르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너무나 다양해 오히려 신경 쓰지 않는다. 표지판에 네 가지 언어가 쓰여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다양하기에 차별이 없는 나라
그래서 이곳에는 인종차별을 느낄 수 없다. 미국에 가면 백인과 흑인의 등쌀에 밀려 괜히 주눅이 드는 것 같았고 유럽에 가면 유럽인 특유의 차별을 느껴서 무섭게만 느껴졌다. 미국인들은 그냥 무서우니까 먼저 피하는 편이라 괜찮은데, 유럽인들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웃으면서 욕할 때도 있고 물어보는데도 아예 무시했다. 이런 차별을 받을 때마다 여행을 하는 것에 회의가 온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고, 나라의 법이 엄한 편이라 서로 조심하니까 싸울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 분위기가 무척이나 배려있게 느껴졌다. 한 번 이렇게 느끼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부담 없이 떠나고픈 여행지가 되었다. 적어도 싱가포르에서는 아시안식 눈 찢기를 보지 않았고 칭챙총이라는 단어도 듣지 않았다. 다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돌아와서도 저절로 싱가포르를 추억하며 그림을 그리고, 자연스럽게 패턴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 싱가포르를 떠올렸을 때에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꽃을 추억했고, 그다음에는 열대의 싱그러움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나에게 싱가포르는 늘 따뜻하고 안정적인 곳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자주 그림으로 남기게 되는 것 같다. 팔레트에서 초록색을 선택하면 늘 떠오르는 나라는 싱가포르다.
초록색에서도 여러 가지 색이 있듯이, 싱가포르를 표현할 때에는 늘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싶어 진다. 그리면서 자꾸 가고 싶어 지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오늘도 작업을 한다는 핑계로 여행했던 사진들을 보면서 싱가포르를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