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만 사랑하지 마세요
하와이 섬 중에서 호놀룰루를 제일 많이 갔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부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섬은 마우이다. 화려한 호놀룰루보다 조금은 심심하고 그렇다고 빅 아일랜드보다는 자연환경이 뛰어나지도 않은데, 이렇게 어중간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를 모르겠다. 싱가포르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 여행을 떠나봐야 알 것 같은데. 세상일이 다 그렇듯, 내 마음대로 되면 이렇게 오랫동안 추억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마우이는 직항이 없다. 마우이를 가려면 먼저 호놀룰루를 들러야 한다. 그리고 주내선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호놀룰루를 제외하면 모든 섬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니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일단 마우이에 도착하면 호놀룰루보다 수수한 공항 풍경에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호텔 시설이 낡은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하지만 빅 아일랜드가 더 후졌다. 마우이는 그나마 참을만하다.) 하지만 자연환경은 호놀룰루보다 좋다. 자연을 다듬은 흔적이 적으니 훨씬 푸르르다. 해변도 날 것 그대로다. 사람이 바글거리지도 않는다. 현지인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것만 같은 자연의 이 푸근함에 감동받는다.
태양의 감동은 할레이칼라에서
보통 마우이를 간다고 하면 할레이칼라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간다. 하와이 말로 '태양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 휴화산에서 일출을 보려면 새벽 3시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일출 시간이 6~7시 사이인데 호텔에서 산까지 가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 전날 밤에 일찍 잠들어야 하고 잠이 덜 깬 상태로 부지런히 산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정상으로 가는 산 길이 얼마나 구불거리던지, 비위가 약한 나는 올라가는 내내 멀미가 났다. 어지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산 위는 한겨울 뺨치게 춥다는 것이다! 하와이인데 왜 할레이칼라는 추운 거죠? 투덜거릴 수밖에 없지만, 일출을 보는 순간 모든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다.
산 아래로 구름이 가득한데, 그 사이로 해가 올라온다. 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무언가가 가슴을 타고 흐른다. 이러려고 힘들게 여기에 왔구나. 그런데 잘 왔다.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태양에 눈이 멀 것만 같은데도 눈을 떼기가 힘들다. 왜 고대인들이 태양을 신처럼 떠받들었는지 이해가 된다.
할레이칼라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이후에 마우이의 자연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리조트의 석양도 아름답고, 이아오 밸리의 산세도 어쩜 저리 멋스러운지. 해변에는 자애로운 파도가 넘실거린다.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몰로키니 섬에서 스노클링까지 즐겼으면 더욱 마우이의 매력에 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와이를 처음 간 거라 뭐가 매력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스노클링 장비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물이 아직 무서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쉬움이 남아서 몰로키니 스노클링을 검색했는데... 와, 아름답다. 섬의 모습도 특이한데 그곳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의 모습도 다양하다. 마우이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스노클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점이다. 다시 간다면 매일 몰로키니 섬만 갈 것 같다. 호놀룰루에서 하나우마 베이를 즐겼던 것처럼. 하와이 여행을 다니면서 점점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전생에 물고기가 된 듯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하와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쇼핑의 즐거움을 압도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을 즐기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도시의 즐거움을 포기 못한 우리는 라하이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우이에서 쇼핑을 즐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놀룰루에서는 트롤리를 타거나 와이키키 해변만 걸어도 쇼핑할 수 있는 곳이 널려있는데... 마우이는 쇼핑할 수 있는 곳이 얼마 없다. 그랜드 와일레아 리조트 내에 있는 쇼핑몰을 가거나 라하이나까지 가야 한다. 그 밖에도 여러 쇼핑몰이 있었던 것 같은데, 뚜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걸 보면 그다지 멋진 곳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래서인지, 마우이에서는 쇼핑보다는 자연의 모습만 떠오른다. 레스토랑과 쇼핑센터가 몰려있는 리하이나에서 신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바다만 기억하고 있다. 여유로운 분위기와 어쩐지 마음을 울리는 파도의 모습에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우이는 그렇게 나에게 자연의 여운을 진하게 남겼다.
호놀룰루에서 파인애플에 영감을 받은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마우이에서는 몬스테라에 영감을 받았다. 하와이에 오기 전까지 주변에서 보기 어려웠던 열대의 식물,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식물이 마우이에서는 곳곳에 너무나 많이 있었다. 신기한 모습에 눈길을 빼앗긴다. 모양이 특이해 따라 그리기만 해도 감각적이다.
몬스테라뿐만 아니라 독특한 잎사귀가 자꾸 작업을 부추긴다. 아마 마우이에 더 오래 있었더라면 잎사귀를 주제로 여러 작업을 진행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채로운 식물들이 많아서, 자연의 분위기가 푸근해서, 그저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했던 마우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