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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May 06. 2020

슬럼프 탈출하기

나도 너처럼 근성 있으면 좋겠다


매일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데도 신기하게 매번 슬럼프가 온다? 미리 예약을 해놓은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찾아오는 슬럼프가 신기할 뿐이다. 계절이 변할 무렵, 아니면 일이 적어서 한가할 때, 아무튼 여유를 누리고 싶은데 찾아오는 녀석이 짜증 난다. 숨 좀 돌리고 싶은데도 이 녀석 덕분에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아, 그만 와!라고 매정하게 거절하는데도 매번 싱글거리며 찾아오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슬럼프라는 녀석은  근성 있는 놈이다.






슬럼프가 찾아오면 아무것도 되질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만 성에 차질 않는다. 아마도 이 정도라면 평소에는 그대로 진행할 만 정도의 그림인데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한숨을 푹 쉬게 된다. 매몰차게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 그린다. 그리고 지우고. 또 지우고 그리고를 반복하느라 손은 아프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차오른다. 하얗게 불태웠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그린 건 하나도 없다. 그러면 뭐 한 거야? 싶은데 이 모든 일이 슬럼프라는 놈의 심술이라서 어쩔 수 없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글을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다. 글에 열중하고 있을 때 슬럼프라는 놈이 슬그머니 들어오면, 순간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조금 전까지도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글의 주제가 돌고 돈다. 똑같은 글을 조금씩 바꿔 써놓기만 해서 길이만 길뿐, 내용물은 텅 비어 있다. 쉽게 쓸 수 있는 글을 지푸라기 엮듯 배배 꼬아놓은 것을 보면 기가 찰뿐이다. 그런데 또, 글을 쓴 순간이 기억이 나질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니, 이전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는 도대체 누구였나요?? 어이가 가출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뭘 한 건가, 싶어서 억울하기까지 하다.





⁣슬럼프가 이렇게 능글맞게 작업을 방해하면, 나도 무턱대고 당하진 않는다. 잠시 하던 것들을 놓아두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재택근무의 장점이랄까? 집 안 어디에나 내가 할 일들이 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바닥이나 마침 세탁해야 하는 빨랫감들, 귀찮아서 쌓아놓기만 한 재활용 쓰레기가 나를 기다린다. 이런 일들도 없으면, 워킹 패드 위를 걸으며 슬럼프에 지쳐버린 마음을 다독인다. 또는 TV를 켜고 여봐란듯이 한껏 신나게 깔깔 웃는다. 근성이 있는 놈만큼이나 나도 산전수전 겪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차피 진전이 없는 것들, 구구절절 붙잡고 있어 봤자 뾰족한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근성 있는 슬럼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도 자주 찾아오길래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이놈은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던 내가, 부족한 내 실력에 실망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은 넘쳐난다. 그래서 자주 실망하게 되고,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이다. 자신감이 이렇게 똑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작업을 해봤자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냥 이 감정은 흘려보내고,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슬럼프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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