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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May 07. 2020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미쳐버릴 것처럼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 집에만 있으면서 사람들과 교류가 적은 사람에게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행동보다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가기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암담하고 실패한 듯한 패배감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는데, 생각이 많아지면 나도 모르게 남의 염탐에 들어간다.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보며 그들의 일상을 살핀다. 아, 어리석다.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에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다른 사람들은 되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뭐하나 싶어서 속상한 기분이 든다.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부산하게 움직여 보지만 일의 진도는 한참 멀다. 기분도 엉망, 일도 엉망. 이렇게 하루를 망쳤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지내면 일하는 것이 수월하다. 미리 세워두었던 계획에 맞춰서 착착 몸만 놀리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잡생각이 많은 건지 정말 모르겠다. 스스로도 바보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는 내가 슬그머니 미워진다. 머릿속의 잡생각을 먼저 떨이개로 탈탈 털어내고 싶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집 청소를 하듯, 정신을 청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부터 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들이 다른 애들보다 느린 편이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늘 전전긍긍하는 아이였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안 때는 바야흐로 유치원 때부터였다. 내가 다닌 유치원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는 아이로 유명했다. 어느 날은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또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내준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뭘 그려야 할지 몰라서 생각만 잔뜩 하다가 시간만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시간 내에 스케치만 겨우 하고 색칠할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많았던 아이는 커서도 생각만 하느라 늘 뒤처졌다. 입시 미술을 배울 때에도 시간을 지켜 완성하는 일이 제일 곤혹스러웠다. 유치원에서는 완성을 못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대학 입시에서는 완성을 하지 못하면 시험에서 떨어진다. 대학 시험에서 불합격할 수 있다는 압박이 오는데도 흰 도화지를 앞에 두고 뭘 그리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나중엔 그냥 외워서 그릴 수 있는 부분을 배워서 그리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생각이 많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 미래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라는 걸. 내 능력은 아직 부족한데 눈은 너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 게 문제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진다.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다. 이룰 수 없는 건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선택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다. 언제쯤 욕심을 버리고 담백하게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까? 생각을 조금만 덜 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직은 쉽게 포기가 안된다.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것만큼 욕심 없는 사람, 생각을 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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