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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Jun 01. 2020

거절의 미학

아름답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프리랜서라면 꼭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다. 아니다, 일 앞에서는 누구나 공정하기에, 프리랜서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꼭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 바로 '거절하는 데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 것.' 그리고 그 마음가짐과 함께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거절하기'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모든 일이 즐겁고 재미있을 수 없기에, 거절의 미학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들게 해야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고 여겼다. 골든 리트리버가 언제나 웃는 표정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짜증 내는 법이 없듯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거절은 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었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늘 '예스맨'으로 살았다.
예스만 외치면 만사 오케이인 줄 알았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누가 나에게 주는 일을 함부로 거절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을 던져주면, 그것이 기회다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멍청하게도... 그때는 일만 잘 해내면 누구나 나를 예뻐할 줄 알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이용당한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나 알았으니, 이렇게 둔한 인간이 없다. 진짜 곰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일은 일대로 하는데, 왜 인정은 다른 사람이 받는 거지? 란 생각이 들었다. 야근이며 휴일 근무며 나를 갈아 넣어서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한 디자인을, 내가 낸 아이디어를 누군가가 윗선에 보고하면서 본인의 것인 양 포장하는 것을 보며 화를 삭여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 반복되다 지쳐서 하소연이라 할라치면, "왜? 네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야?"라던가, "그러니까 자신을 어필해야지." 또는 "바보처럼 왜 일만 해? 그냥 일을 하지 마"란 소리만 들었다. 원래도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더더욱 말수가 줄어들었다.



재주 부리는 곰이 되기 싫어서 회사를 퇴사했건만, 프리랜서가 되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꽤 애를 먹었다. 회사에서는 직급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보호를 받는 면도 있다. 직급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인정을 받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하기에, 어느 정도는 예의를 차린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그런 보호 장비가 없다. 클라이언트가 까면 까이는 거다. 일을 했는데 보수를 제대로 못 받을 때, 진즉에 거절했어야 하는데 더 일하면 나은 대우를 받을까 싶어서 질질 끌려가며 일을 해야 했을 때, 비참했다.



싫은 일은 싫다고 말해도 된다.
거절은 나쁜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왜 아직도 그 구질구질한 '착한 아이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이 하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회사를 나왔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착한 척을 하고 있다. 나란 인간은 그리 착하지 않다.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을 놓기로 결심했다. 거절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그 일을 할 것이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진 않는다. 누군가에게 나는, 입에도 담지 못할 욕을 던지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일을 억지로 질질 끄는 것보다, 애초에 깔끔하게 거절하는 편이 나나 상대방에게나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이제 겨우 깨달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만 하기로 결심했다. 즐겁게 일해야 결과물도 좋다. 만약 하기 싫은 일을 부탁받았을 때에는 진심을 담아 정중하게 거절하면 된다. 최대한 성심성의껏 진심을 담아 거절하면, 상대방도 그 진심을 느낀다. 거절을 해서 오히려 좋은 사이가 유지된다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멋진 거절이 단박에 나올 수 없다면, 계속 연습하면 된다. 거절은 나쁜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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