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사
‘수제맥주’라는 네 글자가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낯선 단어일 것이다. 그러나 주류저널 독자라면 당연히 수제맥주 양조장이 궁금할 터. 국내 수제맥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울산 트레비어 양조장에 다녀왔다.
울산 트레비어 양조장 방문 직전,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 ‘반구대’를 보고 나오는 길, 대로변에 붉은 건물이 눈에 띈다. 저층의 벽돌집은 마치 미국에나 있을 법한 비주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트레비어 양조장이다. 주변을 압도하는 붉은 벽돌집 덕에 헤매지 않고 바로 도착했다. 트레비어에 들어서자 콤콤한 향이 대번에 코를 자극한다. 이것이 무슨 냄새냐고 묻자 “맥즙이 익어가는 냄새”라는 답이 돌아왔다.
독일 양조장처럼 오래도록
트레비어의 역사는 2003년 울산 시내에 오픈한 독일식 맥주 전문점 ‘트레비브루이하우스’에서 시작한다. 남색 청셔츠를 입은 정재환 대표는 독일에서 ‘비어가르텐’(야외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을 방문한 후, 노지에서 즐기는 맥주 한 잔의 문화를 한국에 가져오고 싶어 트레비브루이하우스를 설립했다. 2002년 소규모 맥주면허가 처음 시행될 당시, 시장에는 100여 개의 업체가 생겨났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수가 40개 정도로 현저히 주는 등 침체기를 겪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2014년 주세법 시행령이 일부 개정되면서 다시 80여 개의 업체로 늘었다. 트레비브루이하우스는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또한 작년에는 트레비어 양조장을 시작하며, 수제맥주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소규모 맥주의 외부 유통이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트레비브루이하우스를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덕분에 트레비어는 올해 첫 여름을 맞았다. 울산 양조장을 방문한 언론 취재는 주류저널이 처음이다.
주류저널이 방문한 지난 6월 기준으로 트레비어의 출고량은 2014년 대비 300퍼센트 가까이 성장했다. 트레비어의 생산가능량은 31만2000~3500만 리터인데 임직원은 단 7명. 그중 몇 명은 부자(父子)이기도 하고, 이모, 이모부와 조카 사이기도 하다. 인건비를 줄여야 살 길이 생긴단다. 트레비어는 울산이라는 지리적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주 1~2회 서울을 방문해 맥주를 유통하고 있고, 부산, 대구 등지에도 판매하고 있다.
수제맥주 선도주자
이모, 이모부,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있는 트레비어의 황찬우 대리는 언론홍보, 판매, 배달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며, 학과 모임으로 맥주양조학회에서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황 대리가 맥주를 만들게 된 것은 맥주를 만들어보라며 발효실습실을 기꺼이 개방해준 교수님 덕분이다. 황 대리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황 대리를 따라 트레비어 양조장 투어에 나섰다. 숙성조와 발효조 탱크를 지나 홉, 몰트 냉장시설 그리고 두 종류의 케그 등 작지 않은 규모로 알차게 운영되고 있었다. 맥주를 만드는 데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세 달도 걸린다. 2003년 트레비브루이하우스 시작부터 지금껏 트레비어의 맥주를 담당하고 있다는 브루마스터 오세영 이사는 “술도 음식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맥주를 만들고 있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부흥과 더불어 트레비어도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고, 나아가 수제맥주 시장을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또한 오 이사는 “최근 오크숙성 맥주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트레비어에는 미국 버번위스키에 사용된 통 여러 개를 볼 수 있었다. 오크통 안에는 스타우트, 포터 등 여러 스타일의 맥주가 숙성 중이
었는데, 숙성 기간이 남아 맛볼 수 없었다. 숙성 후 다시 울산에 방문해서라도 맛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지난 6월 말, 경기도 성남시의 주류도매사가 밀집한 지역을 지나다가 우연히 도매사에 납품중인 트레비어 식구들을 만났다. 주류저널이 울산 트레비어에 방문한 것이 6월 초순이므로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것이다. “우리는 원래 만날 인연”이라며 반갑게 인사하고, 취재 당시 오크통에숙성 중이던 맥주의 안부를 물었다. 트레비어의 답변은 “한 잔씩 아껴가며 팔았는데도 인기가 많아서 그만...” 아쉽게도 트레비어 한정판 오크통 맥주는 이미 완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트레비어 속 작은 펍
독일 속담에 ‘맥주는 양조장 굴뚝 그림자 안에서 마셔야 제 맛’이란 말이 있다. 트레비어 양조장에도 자그마한 펍이 운영되고 있다. 가격도 착하다. 350밀리리터 한 잔에 3000원, 6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샘플러는 만 원이다. 판매수익보다는 홍보 차원의 공간이다. 평일에는 퇴근길에 들르는 직장인들이 주이용객이며, 주말에는 경주나 부산 등 근처 나들이객들이 맥주를 테이크아웃해간다. 1리터짜리 페트병 한 병에 7000원이다. 트레비어는 필스너, 바이젠, 둔켈과 같은 독일식 맥주 스타일과 호피라거, IPA, 페일에일과 같은 미국식 맥주 스타일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 계절 시즌제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할 예정이며, 트레비어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도 연구하고 있다.
울산에서 전국 방방곡곡 맥주를 지고, 이르고, 나르는 트레비어 식구들의 땀방울이 모여 맥주가 된다. 노동의 땀방울은 아름답다. 오늘 저녁, 퇴근 후 고단함을 달래줄 트레비어 맥주 한 잔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