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열다섯 번째 이야기
아이들 교육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다른 부모님들 생각이 궁금할 때가 많다.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 나처럼 소신 교육을 결심했다가도 언제 흔들릴까 등등. 그런데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보았던 글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키웠는데 초등 교사의 충고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아 후회한다'는 한 학부모의 글이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했던 말을 카페에 그대로 썼는데 다음과 같았다.
"간혹 어떤 부모님은 우리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크면 되고 공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공부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하는 엄마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하루에 많은 시간을 '40분 공부, 10분 휴식'이라는 싸이클로 살아가죠. 그렇게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아이, 안 하는 아이는 쉬는 시간 10분만 밝고 즐거운 거예요. 나머지 40분은 몰라서 힘들고 주눅 들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는 정말 밝고 즐겁게 자라날 수 있을까요?
이 교사의 이야기가 맞다면,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10분만 즐겁고 40분 수업 시간은 밝음을 잃은 채 주눅 들어 보낸다는 말이 된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선행 학습을 했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수업 시간 내내 밝고 즐거운 자세로 수업에 임한다는 말일까. 수업이 즐거울 만큼 공부를 잘하고 학습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기준은 어느 정도인지 또 의문이 생긴다.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성적이 좋던 아니던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드는 것이 공교육이 할 일이 아닌가. 현직 교사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이었다. 공부로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들의 바람에 대한 교사의 '따끔한' 충고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어느 정도 학교 공부를 따라가도록 보호자가 지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는 가정도 있다. 아이 스스로 진도를 따라가는 게 힘겨울 수도 있다. 공부를 못해도, 교육을 잘 따라가지 못해도 밝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 아닌지 이 초등교사의 유튜브를 찾아가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글에 달린 댓글에는 선생님의 태도나 언행에 대한 제기는 전혀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 공부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거나 그동안 아이 공부도 안 시키고 방임한 것 같아 후회한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영유아 시기에도 밝게 지낼 수 있게, 실컷 놀게 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불안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지역 카페라 회원 가입을 할 수 없어 어떤 댓글도 달 수 없었지만, 그동안 엄마로서의 역할에 후회하는 작성자에게 괜찮다고,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이의 학습을 챙기지 않는 것은 방임이라고 여기는 게 현실이고, 그런 시선이 일반적이라는 게 씁쓸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가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다가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은 뒤 그동안 아이들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를 봤다. "부모가 아이 교육을 방임하는 것"이라는 질책을 받고 나면 정신이 번쩍 뜨여 공부 습관을 잡아주든지 학원을 보내든지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공부를 '제대로' 시켜야만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일까. 남들 하는 만큼 시키지 않으면 아이의 자존감은 보장되지 않고 학교에서 쉬는 시간 10분 외에 40분은 늘 주눅 든 채 지내는 것일까. 우리의 교육 현실이, 부모가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실패한 인생을 살 것이라는 불안감이 성적에 따라 자존감이 결정되도록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또 '공부로 평가하는 잣대'가 아이를 주눅 들게 만드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아이들을 키우며 진짜 '방임'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본다. 사전상으로 방임은 '아동의 기본적인 필요를 불이행하는 아동학대의 유형'이라고 되어 있다. 아이들이 지금 누려야 할 권리, 충분히 놀고, 충분히 휴식하고, 충분히 쉴 수 있는 권리를 나중으로 미루는 것도 어찌 보면 방임이다. 아이들의 교육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 대해 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정신이 자유롭게 균형 있게 성장하고 있는지 말이다. 글을 쓰면서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찾아보다가 '어린이 행복 선언'을 읽게 되었다. 2012년 전국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로부터 의견을 모아 만든 행복 선언을 읽으며 '방임'의 의미를 한 번 더 새겨 본다.
마음껏 신나게 놀고 나면 행복해요. 놀 곳과 놀 시간을 주세요.
포근하게 안아주면 행복해요. 많이 많이 안아주세요.
하늘을 보고 꽃을 보면 행복해요. 자연과 더불어 살게 해 주세요.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해요. 좋은 먹을거리를 주세요.
책을 읽을 때 행복해요. 책을 읽어주세요.
어른들이 기다려줄 때 행복해요. 잘 못하고 느려도 기다려주세요.
제 말을 귀담아줄 때 행복해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제 힘으로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해요. 저 혼자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해요. 모두 함께 행복하게 해 주세요.
다른 아이들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해요. 모든 아이들이 저처럼 행복하게 해 주세요.
-어린이 행복 선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