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열한 번째 이야기
아이가 입학하기 전에 자기주도 학습에 대한 이런저런 강의를 듣다가 '공부 정서'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말 그대로 공부에 대한 아이의 감정, 즉 공부에 대한 정서적 경험의 반복으로 인해 쌓인 공부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평균적인 감정 상태를 말한다. 아이가 '배움은 즐거운 것'이라는 마음을 품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첫째는 학교 입학 전까지 학습지를 하지 않았고, 한글은 책을 좋아하면서 7살 초반에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학습'이나 '공부'라고 할 만한 것들은 하지 않은 채 학교에 들어갔고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나 거부감의 경험이 없으니 매일 조금씩 과제를 해도 싫어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꿈꿔온 '환상'인지도 모르고 극히 드문 일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동기부여나 목표의식을 갖는 게 아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첫째는 학교 들어가고 얼마 뒤에 수학 시간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고(거꾸로 쓰는 숫자도 몇 개 있을 정도였으니) 아이의 말에 수학 교과서를 사서 배운 걸 복습하고, 교과서 배운 걸 다 한 날은 다른 수학 문제집 한 권을 학교 진도에 맞게 2장씩 하도록 했다. 보통 교과서를 할 때는 배운 걸 한 번 더 하다 보니 2,30분 정도면 하는데 다른 수학 문제집을 할 때는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다. 이전까지는 하교하고 놀다가 집에 와서 간식 먹고 잠깐 하곤 했었는데 낮에 더 놀고 싶을 때는 "엄마, 저녁에 공부할게요"해서 "그래"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낮에 실컷 놀고 저녁 먹고 나서 책상에 앉아 자기가 할 일에 집중하는 아이를 보며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점점 하기 싫은 마음을 표현하며 한숨을 내쉬는 날이 늘어갔다.
아이가 스스로 정한 걸 잘하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하기 싫어할 때면 공부 정서를 나쁘게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되었다. 마음껏 뛰어놀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시간을 아이가 갖도록 애썼건만 결국 벌써 공부는 싫다인가 싶어서 허탈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들이 모두 처음이라 그런지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하는 편이라고 하셨다. 매일 과제를 하는 건 싫어할 때도 있지만 학교에서 만든 어몽어스 노트에 수학이라고 적고 문제를 써서 풀기도 한다. 공부가 재미있기도, 싫기도 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저녁에 아이가 너무 과제를 하기 싫어하고 몸을 베베 꼬면서 억지로 하는 듯해서 화가 나 말했다.
"이거는 엄마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매일 한다고 해서 하고 있는 거야. 저녁에 한다고 낮에 실컷 놀았으면서. 그냥 하지 마."
아이는 울먹울먹 하며 꾸역꾸역 끝까지 했고 아빠와 놀면서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그런데 그날,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 아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해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라고 말하며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그게 그렇게 속상했을 일인가 싶었지만 우는 아이를 우선은 토닥토닥. "그 말이 속상했구나.. 울고 싶은 만큼 울어.." 기다려 주다가, "그럼 그럴 때 엄마가 어떻게 말해주면 좋겠어?" 물었다. 아이는 계속 우느라 답을 하지 못했다. 울음이 좀 잦아졌을 때, 다시 물어봤다.
"그러게 하기 싫은 마음일 때도 있겠다.. 그래도 힘내서 해볼래? 이렇게 말해줄까?"
했더니 아이가 "네..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어요" 눈물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전, 캠핑 가기 전날에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수학 안 하면 안 돼요?"하고 아이가 물어봤다. 하루 학교도 빠지고 놀러 가는 건데. 학원도 안다녀, 학습지도 안 해, 따로 공부하는 것도 없어, 매일 딱 수학 2장 하는 것도 그렇게 싫으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으며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 엄마도 매일 하는 게 있다?"
"진짜요? 뭔데요?"
"운동하는 거랑 글 쓰는 거"
"나는 운동하는 거 좋은데... 공부하는 것보다"
"엄마가 하는 운동은 건강해지려고 하는 거라서 좀 힘들어. 그래서 하기 싫을 때도 있어~
글 쓰는 것도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엄마도 너랑 똑같아"
"진짜요? 그럼 진짜 하기 싫어서 안 한적도 있어요?"
"음.. 정말 정말 하기 싫으면 안 할 때도 있지. 그런데 진짜 하기 싫어도 하고 나면 또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꾸준히 하는 게 엄마한테 도움이 되는 걸 아니까"
"와, 나도 그런데! 집에 와서 숙제하고 나면 막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에요~ 마음도 막 가벼워져요~"
그렇게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이는 학교 갔다 와서 남편이 짐을 싣는 사이 수학 문제지를 꺼내 2장을 스스로 하고 캠핑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말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즐거울 때도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재미있게 보람되게 했던 기억들이 안 좋은 기억을 상쇄시켜주기도 한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 성취감이 자신감이 되고, 다른 일을 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가 정말 하기 싫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할 거면 그냥 하지 마"라고 한다면 많이 속상할 것 같다. 아이가 말한 것처럼 "그러게 쓰기 싫을 때도 있지? 그래도 천천히 조금씩 해볼래?" 격려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너무 힘들면 오늘은 쉬고 힘내서 다시 해볼까?" "엄마도 너처럼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도 있어"하는 말들도 힘이 되겠지.
공부가 늘 재미있을까, 사는 게 늘 재미있을 수 없듯이. 더군다나 지금은 마냥 놀고만 싶은 아이들에게 꾸준히 학습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의 공부 정서가 좋아질까, 나빠질까 하는 고민이나 걱정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경청'하는 것, 때로는 엄마의 이야기도 풀어놓으며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더 괜찮은 방법이 뭘까 의견을 나누는 것일 테니까. 아직 성취감이나 끈기 같은 걸 장착하기에는 어리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났을 때의 뿌듯함을 조금씩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더 격려하고 '나'의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어야겠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