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열 번째 이야기
요 며칠 요란하게 소나기가 퍼부었다. 며칠 전에도 오후 늦게 천둥번개가 치더니 비가 한 시간 내내 쏟아져서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베란다 창문 틈으로 밖을 보니 날이 갤 것 같아 서둘러 저녁을 준비했다. 놀이터에 같이 나가 지켜보는 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또 아이들의 놀이터 시간은 꼭 챙겨주고 싶은 이 양가감정이란.
저녁을 먹고 대충 치우고 나니 6시. 아이들은 줄넘기와 농구공을 챙겨 밖으로 나갔고, 나는 물병과 핸드폰을 넣은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쫓아갔다. 놀이터 고정 멤버들에 합류해 줄넘기를 하고, 농구공을 갖고 놀고 다른 친구가 가지고 나온 배드민턴도 쳤다가. 날씨도 시원하니 딱 좋은데, 비가 많이 오고 난 직후라 놀이터 주변 나무 의자가 모두 젖어있었다. 서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둘째랑 공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이 심하게 놀아 다칠 것 같으면 주의를 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갑자기 떼를 지어 나무 밑으로 가서 공을 힘껏 던졌다. 나뭇가지에 가득한 빗방울들이 떨어지는 걸 맞는 게 좋은지 깔깔깔.
"우리 저기서 샤워하자~~" 그렇게 또 다른 나무 밑으로 우르르 뛰어가 공을 던지고 빗물을 맞으며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번에는 또 워터슬라이드 놀이. 빗물이 있는 미끄럼틀은 평소보다 더 미끄럽고 아이들은 엉덩이가 젖는대도 재미있다고 무한반복. "참 재미있게도 논다~" 싶으면서도 혹시나 아이들이 미끄러져 다칠까 눈을 뗄 수는 없고, 가끔 아이의 무례한 행동에 '집에 가서 얘기 좀 해야겠다'며 마음 먹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나오긴 했지만 7시 반이 되어도 신나게 노는 아이들에게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라고 말할 타이밍을 잡는 것도 고역이다. "10분 있다가 가는 거야~" "5분 남았어~" 미리 이렇게 예고를 해도 막상 들어갈 시간이 되면 입이 삐쭉 나오기도 여러 번. 결국 한 마디 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으면서 가야 할 시간인데 투덜대거나 짜증내면 엄마 마음도 좋지 않다고.
'놀이터 보초 서기'라 불리는 이 시간은 이래 저래 참 피곤하다. 아이들이 어릴 땐 놀이터에서 쫓아다니고 같이 놀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여덟 살, 여섯 살이 되고 나니 동네 친구, 언니, 형들과 어울려 노느라 멀찌감치 앉아있을 때도 많다. 자연히 놀이터에서 나의 역할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이자 어쩌면 가장 비생산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사실 꾸준히 애쓰지만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 육아를 효용성의 관점에서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놀이터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
초등 저학년 부모들이 놀이터 보초 서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어보면, 둘째가 어리면 쫓아다니느라 또 보챌 때 여러모로 고충이 많고 동생이 없는 경우에도 아이들을 계속 지켜보는 게 어려운 건 마찬가지란다. 아이를 학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지켜보고 서 있는 게 더 힘들어서 비 오는 날이 너무 반갑다거나, 학원을 더 늘려야 하나(놀이터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고민이라는 얘기에도 공감이 간다. 아이가 어릴 때나 커서도 엄마에게는 '놀이터 학원'이 가장 힘들다는 말을 새삼 느낀다. 초등학교 1학년은 하교 시간도 빨라서 어린이집을 다닐 때보다 놀이터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학원을 많이 다니다 보니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줄어든 경우에도 "아이는 짧은 시간 최대한 집중해서 친구들과 놀아야 하고, 학교 엄마들과 친분을 쌓는 과정이라 공을 들이고 신경도 쓰게 된다"는 친구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이터 학원'은 어느 경우에도 쉽지 않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호기심에 땅을 파서 애벌레를 찾거나 곤충을 잡으러 다닐 땐 아이들의 호기심 그리고 생명 존중이라는 도덕적 가치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고민도 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 보면 어디까지 부모가 개입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좋을까 혼란스러울 때도 많다. 남자아이 서너 명이 옷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는데 이게 얼핏 보면 다투거나 한 친구를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한데 또 왠지 당하는 듯한 아이가 키득키득 웃는 걸 보면 말려야 하나 그냥 둬야 하나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가끔은 "너희 싸우는 거 아니지? 저기 저 친구가 좀 힘들지 않을까?" 말을 던져보기도 하는데 "우리 놀고 있는 건데요"하는 대답이 돌아올 땐 좀 무안해지기도 하고.
내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함부로 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을 땐 가르쳐줘야 하고, 매번 지적했던 것들을 또 지키지 않을 땐 속에서 열불이 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1, 2학년만 되더라도 아이들만 나와서 노는 경우도 많은데 아무리 내가 어른이라도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어떤 부분을 지적하는 데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말을 하려다가 꾹 삼키는 것도 여러 번이다. 그렇게 우리 아이로부터, 또 다른 아이로부터 쌓인 화를 잔뜩 마음에 담고 집에 돌아올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저녁을 하면서도 속으로 화가 부글부글, 혼자서 씩씩거린다. 아이들 웃음이 가득한 놀이터가 전쟁터도 아닐 텐데, 나는 다친 군인이 된 듯 가끔은 상처 받았다가 스스로 다독였다가, 아이에게, 남편에게 속상함을 털어놓기도 한다.
언젠가 아이들 하교 시간이 같아서 다른 동네 친구가 아파트 단지에서 같이 놀았는데 한참 같이 앉아서 지켜보던 동생이
"언니는 놀이터에 자주 나와 있잖아요. 주로 뭐 하고 있어요?" 하고 물었다.
"음... 책 읽을 때도 있고 핸드폰으로 장보기도 하고.. 아이들 노는 거 멍하니 볼 때도 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있고 아이들이랑 같이 놀 때도 있고.."
요즘은 힘들어서 놀이터에 오래 못 나와 있겠더라고 말하길래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래.. 근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거 보는 시간도 앞으로 몇 년 안될 텐데 싶어서.."
어쩌면 놀이터는 참말로 고되지만 나중에는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는 곳이다.(아, 나중에 손주들 생기면 다닐 수도 있겠지만 그땐 또 지금과 느낌이 다르겠지..) 아이들이 웃고 울고 삶의 동력을 얻으며 때론 상처 받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놀이터에서 어른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아이들의 세계를 배우기도 하고, 아이의 행동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매일 마주한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조금씩 성장하듯, 나도 그렇게 놀이터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 또 종일 아이들과 보내다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또 어떤 날은 아이들처럼 즐겁고 충만한 숨을 내쉬며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을 테니까.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도 부족함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책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의 문장을 떠올려본다. 오로지 어떻게 재미있게 놀까 고민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너그럽게 헤아려주자고 마음 먹으며.
'놀이밥'을 먹도록 도와주는 일이 부모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이다. 그래서 행복이 뭔지 놀면서 아이들 스스로 몸에 담을 수 있게 해 주시라. 그래야 뒷날 어려운 시기와 맞닥뜨렸을 때, 그나마 놀면서 만났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꺼내며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p13)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다.. 오로지 놀 생각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든 놀고 있다. 한결같이 놀 궁리만 하는 아이가 아직 가까이 있거들랑 그 아이를 꼭 품어주자. "너 아직 살아 있었구나!" 이렇게 감격하며 말이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p24)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