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여덟 번째 이야기
초등학교 1학년 첫째의 방과 후는 (엄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순하다. 현재 2개의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 3일은 점심을 먹고 바로 집으로 온다. 물론 집으로 곧장 오는 일은 드물다.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야 하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보통은 꼭 들러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놀고 난 뒤 비로소 집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이가 입학하고 방과 후 수업도 없던 몇 주일은 일찍 마친다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보다 왜 이렇게 집에 일찍 오는지. 둘째를 등원시키고 다시 집으로 걸어와서 2시간 남짓 주어지는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차츰 그 패턴에 익숙해지고, 그나마 방과 후 수업 몇 개를 하면서 무언가를 할 시간이 좀 생겼다.
"오늘도 수고했어~~ 재미있었어?"
하교하면서 아이에게 자동으로 묻게 되는 말. 그리고 몇 시간 책상에 앉아있느라 힘들었을 아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학기 초반에는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게 답답하고 힘들었는지 "엄마 오늘도 학교 가요? 싫은데... 친구들하고 놀고 싶은데" 하고 뽀로퉁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쉬는 시간도 딱 한 번 그것도 5분. 친구들과 제대로 이야기할 수도 없고, 투명 가림막이 설치된 채 하나씩 하나씩 배치된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오죽 답답할까 어쩌면 당연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우르르 나가서 뛰어놀다가 종 치면 교실로 우르르~ 들어가는 그 재미가 얼마나 컸던가 나의 초등 시절이 떠올랐다.
"계속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니까 힘들지? 친구들이랑 제대로 뛰어놀지도 못하고..."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안타까워했고 "그래도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신나는 걸 배울까?" 아이를 북돋아주었다.
일곱 살에서 여덟 살이 된다고 해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레, 금방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이들의 놀고 싶은 마음은 계속되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만큼 학교에서 그것을 풀 수 있는 시간은 무척 적다. 주로 책상에 앉아 수업을 하는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더욱. 입학 후 점차 친구들이랑도 친해지고 학교 수업 시간에 국악, 클레이, 쿠키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하고,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요즘은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학기 초반 "엄마 수학 시간이 좀 어려워요"라고 이야기한 뒤 매일 꾸준히 하고 있는 건 수학 교과서 복습 또는 수학 교재 4페이지 풀기다. 그리그 그 외 시간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는 중이다. 아이는 거실 매트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뒹굴뒹굴하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국악 시간을 좋아하더니, "엄마 장구가 배우고 싶어요"라고 해서 사준 장구를 요즘은 때때로 두드리며 학교에서 배운 민요를 부르기도 하고. 물론 매일 2,3시간은 놀이터에서 보낼 때가 많다. 낮에는 아이들이 귀할 때도 많은데 한 명이라도 아는 친구가 있으면 내가 더 반가웠고, 친구들이 없어도 혼자 색종이도 태우고, 줄넘기도 하고 놀이를 찾아서 했다. 그렇게 아이는 매일 신나게 몸을 움직였다.
저녁이 되면 "엄마 벌써 정리할 시간이에요? 하루가 너무 빨리 가요"라는 말을 한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학교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오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서 방과 후 수업은 2개에서 3개 정도가 자기에게 적당한 것 같다는 말도 한다. 조금씩 글쓰기나 영어라도 시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게, 원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도록 해 주자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가보려고 노력 중이다.
학습적인 부분에서 하나씩 하나씩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도록 이끌어주자고 마음먹지만 그것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지금은 실컷 놀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제 조금씩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힘들어도 자기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뿌듯함을 배우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다만 그게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자신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도록 이끌어 주는 게 나의 역할 같다. 그리고 아이가 진정한 자기의 모습이 무엇인지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고 싶은데, 무얼 할 수 있을까.
일상이 고되고 일과가 고통스러울수록 '나만을 위한 시간'에 대한 충동은 더 커진다.
일과에서 겪는 고통이 심화될수록 인간은 기계적인 자아를 발명하여 공적 영역의 일상을 살게 두고
'진정한 나'를 내밀한 사적 영역에 남겨둠으로써 삶을 이어나간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분리는 '팍팍한' 이 사회를 견뎌내며 살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인 방법인 것이다.
시간 아까운 학교생활과 지루한 학원, 과외를 묵묵히 감내하고 집에 와서
유튜브로 심신을 달래는 학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야근을 끝내고 한숨을 쉬며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는
직장인의 초상을 발견한다.
이러한 분리는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다는 분리된 두 자아 간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민들레 Vol. 118 우리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 김제훈>
아이들 일상이 너무 고되거나 고통스럽지 않은지 세심한 시선을 놓지 않아야겠다. 아이들이 바라는 방과 후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도. 팍팍한 학교 생활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은 구석도 많은 학교 생활을 나름의 방법으로 누릴 수 있게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직장인들에게 '워라밸'이 중요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스라밸-공부와 삶의 균형'은 필요한 것이니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