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비, 오랜 고민과 신중한 선택

소소교육 여섯 번째 이야기

by 소소 반디

오랜만에 친구와 오랜 시간 통화를 하고 난 남편이

"OO이네는 한 달 교육비가 꽤 많이 들어간다고 하네"라는 말을 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니 아무래도 사교육비 지출이 만만치 않겠지.

"나중에 그 정도 시키려면 지금 월급으로는 힘들 텐데, 다른데라도 알아봐야 하나" 이직을 걱정하는 남편에게 "아니, 우리 형편으로 잘 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라고 했다.


첫째는 지금 방과 후 수업을 2개 하고 있는데 3달에 30만 원 정도이고, 둘째 어린이집 특별활동비는 7만 원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지만 매달 17만 원의 교육비가 지출되는 셈이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아이의 공부와 성적에 신경 써야 한다는 충고도 많이 받지만 사교육과 사교육비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신중하게 선택하자는 마음은 여전하다.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서 나의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상황도 결코 외면할 수가 없다. 당장 학원 하나를 보내는 금액만 생각한다면 그리 고민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아이 교육은 일, 이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게 된다. 남편 월급은 한정되어 있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계 경제가 더 빠듯해질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정말 원할 때, 필요할 때 사교육비를 쓰고 싶어서 학원에 보내는 시기를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아빠가 열심히 모은 돈에서 네가 좋아하고 꼭 필요한 것을 배우는 데 쓸 수 있는 금액은 정해져 있어'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이유도 있다.


사교육비에 대한 통계 자료를 찾다가 지난해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월평균 사교육비가 32.1만 원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타이틀만 봤을 때는 30만 원 정도? 생각보다 적네... 주변에는 이것저것 세, 네 개만 해도 40만 원 훌쩍 넘어간다고 들은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기사를 읽다 보니 소득구간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최소 소득과 최대 소득 구간 사이에 5배 정도 차이가 나서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진 것이었다. 말 그대로 교육의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이다. 기사 댓글 중에 "월 32만이면 소원이 없겠다" "사교육이 무슨 범죄냐, 현실이 어떤데"...라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과중한 사교육비, 그리고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을 꼬집은 댓글을 보며 같은 부모로서 안타까웠다.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지 않고서 부모의 교육열만 탓할 수 있을까. 교육 및 학군과 떼놓을 수 없는 부동산 문제와 노동자의 권리 및 근무 환경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교육 문제, 교육의 양극화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그리고 이제 이런 기사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읽을 때마다 답답하고, 평정심이 무너질 때가 많다. 도대체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며, 교육 정책의 개혁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과 흙수저를 들고 태어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간극이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했다. 소수에게 한정돼 있던 교육의 기회가 공교육의 확충으로 보편화되고, 교육이 양질의 일자리와 연결되면 교육은 가난한 집 아이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학교에 가려면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세계일보, <연중기획 / 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중에서)




여기에다 수행평가, 다양한 스펙 등이 수시전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상위층과 하위층의 차이는 더 커진다는 게 학부모들의 목소리이다. 우리의 현재 교육은 성적과 입시에 맞춰져 있다. 아무리 교육 정책이 조금씩 변한다고 해도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현실은 이렇다.

그럼에도 우리 가정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만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시켜줄 만큼의 경제 형편이 되지 않는다. 무리해서 시키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이만큼 투자했으니 빨리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어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 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 더욱 냉정하게, 비판적인 의식을 가져야 했다. 무엇보다 무엇이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더 잘 살게 하는 방법일까 고민해야 했다. 성적과 입시가 아닌 교육의 목표와 가치를 찾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가 준비되어 있을 때, 스스로 원할 때, 그리고 꼭 필요한 상황일 때 사교육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아이가 심심해하더라도 학원을 보내거나 학습적인 부분으로 채워주는 대신, 밖에 나가서 뛰어놀거나, 집에서 같이 놀거나(엄마랑, 아빠랑 같이 놀자고 할 때는 놀다 놀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크면서 같이 놀자고 하는 시간도 아주아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아이가 조금 크면 한 시간은 엄마랑 놀고 또 잠깐은 혼자 노는 거야 타협도 가능해진다), 때로는 심심한 시간을 그냥 심심하게 보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미치도록 지루해하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 시간을 자기가 알아서 보내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도록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학습이 아니라도 다른 것으로 채워가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아주 천천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통과하는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가끔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아이는 지금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조금씩 하루를 채우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만약 나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정말 배우고 싶다면,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할 때 그때 사교육비는 아이를 위해 쓰일 것이다. 다만 걱정인 건,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다니고 놀이터에는 놀 친구가 없어서 "엄마, 나도 친구들처럼 학원 다니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음..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할까?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우리 집 사교육비가 OO원이라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선택'일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지 모르고, 누군가는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불안한 길을 간다거나 미안해할 일은 결코 아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



keyword
이전 05화진심이 담긴 꽃다발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