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열두 번째 이야기
예전에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며 둘째의 친구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위치한 피아노 학원에 아파트 아이들이 많이 다니더라는 이야기가 멀리서 들려 주제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으로 흘러갔다.
"저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꼬박 피아노를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좀 아까운 것 같아요"
피아노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던 나는 좀 부러웠다.
"그래도 가끔 피아노 치고 싶을 때나 어디에 피아노가 있으면 연주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던데요"
"친정에 피아노가 있어도 가끔 놀러 가면 아이나 피아노 치면서 놀지 저는 거의 안치게 되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악보를 보고 연주하기까지 엄청 힘들었던 기억도 나고 그때는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 하는 건 줄 알고 다니긴 했는데.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걸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예전에 친구 중 한 명이 자기는 악기 하나를 배워놓길 참 잘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돼서 배웠으면 더 속도도 더디었을 것 같다고. 또 한동안 안치다가 어른이 된 뒤 다시 조금만 배워도 감이 오니까 괜찮은 취미를 갖게 되어 참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똑같이 배우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이렇게 다르게 해석되고 기억된다.
학창 시절 때 제일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지, 혹은 지금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부모님, 선생님 말씀 안 듣고 공부를 안 했던 게 많이 후회된다. 학생들아 공부 열심히 그리고 잘해라. 그래야 나중에 선택지가 훨씬 많아질 거야". 아마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부 말고 다른 걸 많이 해보고 경험해 볼 걸 후회가 된다. 학생들아,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절대로 아니야. 공부보다 중요한 게 많다는 걸 기억해."
이런 상반된 반응은 아이를 좀 더 키운 부모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아이를 마음껏 놀도록 한 것이 후회된다. 다른 사람들 충고를 듣고 일찍부터 학원도 보내고, 공부 습관을 잡아줄 걸 그랬다. 둘째라도 타이트하게 시키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이런 글을 볼 때면 나의 미래 모습일까 하며 남 일 같지 않고, 걱정도 되고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교육을 많이 시킨다는 유치원에 일부러 보냈는데 아이가 영어에 거부감이 심해졌다. 공부하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해서 후회된다. 남들처럼 시키려고 했던 게 욕심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무엇이든 선택은 언제나 어렵고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후회와 아쉬움은 남는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어도 얻는 게 있음을 우리도 살면서 자주 느낀다. 나 역시 아이가 공부 때문에 어려워하는 상황이 온다면, 미술 학원 다녀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 성적이 좋아 부모와 아이가 동시에 칭찬받는 상황을 보면 부러움과 후회가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해질지 모른다. 누구 말대로 아이가 여전히 '잘 놀기만 하는' 걱정스러운 상황에 부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내 선택을 믿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장점을 바라보는 일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얼마 전 첫째 어린이집에서 인연이 된 오랜 친구 엄마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니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어쩜 그렇게 잘 놀아요?"
"놀이터에서 매일 몇 시간씩 놀면 일단 아는 친구들이 많아져. 아무도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혼자 노는 것에도 요령이 생겨" 웃으며 이야기했다.
"언니, 언니 혼을 갈아 넣은 결과다"라는 말에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동생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공부가 아닌 아이들이 노는 것에 혼을 쏟은 '극성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이라면, 이것저것 챙겨 떠나고 보는 엄마. 모래 놀이하는 동안 몇 시간을 앉아있는 데는 이골이 난 그런 엄마. 나의 선택이 좋은 점도 가져오겠지만 아쉬움도 분명 있을 것이다. 거리낌 없이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아이를 볼 때면 다행스럽다가도, 1학년들 사이에선 제일 쉬운 수학 학습지라며 권해준 교재를 첫째가 풀며 어렵다고 할 땐 이런게 격차구나 실감한다.
아이들 학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최선을 다하는 부모들 역시 고민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안도와 불안 사이를 몇 번이고 오고 간다.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 들어간 뒤에도 육아는 자꾸만 스트레스 유발자가 되어간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하는 선택이 아이에게 어떤 장점을 가져다 줄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좀 더 스트레스에서 비껴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나중에 아이에게 공부를 안 시켜서 혹은 아이에게 공부를 너무 시켜서 후회하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즐겁게 누리지 못해서' 가장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