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리면 어떨까.
의도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충동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마음의 경고 신호였다.
그때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늘 웃으며 일하고 아이를 챙기고, 집안일을 해내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런데 웃고 있는 얼굴 뒤에서는 조용히 금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풀배터리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가 알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유연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검사는 내면의 진실을 보여주었다.
나는 완벽을 쫓는 사람이었고, 그 완벽함이 나를 천천히 잠식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마주한 여러 사람들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클수록 삶이 고달파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고달픔의 주인공이 나일 줄은 몰랐다.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엄마로서 100점, 딸로서 100점, 아내로서 100점, 직장인으로서 100점.
그 점수들을 다 채워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합계가 아니라 총량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100이 전부인데, 그걸 네 방향으로 나누려니 내 마음의 배터리는 늘 방전 상태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했다.
몰랐던 나를 마주한 순간, 나의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새벽에 깨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나를 위한 조용한 선물이었다.
누군가는 드라마를 보고,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회복하겠지만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택했다.
어릴 적 작가를 꿈꿨던 기억과 책을 읽으며 마음이 정돈되던 그 시간들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고, 다시 나답게 만들어주었다.
책 속에서 나는 다른 이들의 고통과 회복을 읽었고, 그 속에서 내 마음의 언어를 찾았다.
글쓰기는 그 언어를 꺼내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엔 일기처럼 시작했지만, 조금씩 내 마음의 방향이 보였다.
나는 무너진 나를 고치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던 삶에서 ‘나의 감정’을 중심으로 삶을 다시 세워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힐링이 아니라 ‘다시 나를 믿게 되는 일’이었다.
이제는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은 쉬어간다는 걸.
나는 여전히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돌보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내 안의 불안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위에 조용히 글을 쌓아간다.
몰랐던 나를 마주한 건 두려웠지만,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온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묻는다.
“오늘의 나는 괜찮았나요?”
그 물음이 내 마음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어 다시, 나로 돌아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