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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Sep 29. 2020

강물의 위로

슬픔을 위로하는 슬픔

몹시 슬픈 날이 있었다.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일생일대의 비극이 일어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구겨진 몸을 펴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이런 날엔 자연스럽게 가까운 물가를 향하게 된다. 집에서 이십 분쯤 걸으면 멀리 경기도에서부터 흘러들었을 하천이 나오고 그걸 따라 사십 분쯤 더 걸으면 눈으로 가늠될 정도였던 물의 폭이 넓어져 건너편 둑이 보이지 않게 된다. 강에 다다른 것이다.


한강 둔치의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 두 사람만 앉아도 꽉 찰 것 같은 작은 벤치를 보고서야 종아리가 꽤 당긴다는 걸 알아차렸다. 앉아서 바라본 강은 고요하다. 평평하게 흐르는 물 위로 햇빛이 반사돼 반짝였다. 예쁘다고 느낀 사람이 많았는지 이 반짝임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윤슬’이라는 예쁜 이름이다. 윤슬을 오래 보고 있자니 세상의 무수한 환희와 한탄과 좌절과 기대들이 모여 그려낸 무늬처럼 보인다. 강은 그것들을 떠안고 그냥 흐를 뿐이다. 눈이 부시고 현실감각이 희미해진다. 얼마나 보았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지를 털며 벤치에서 일어날 때쯤엔 걷기 시작할 때의 근심은 더 이상 내 안에 없다.     


그날 오후 나를 낫도록 만든 건 긴 산책이었을까, 끝없이 흐르는 강물이었을까. 정신이 아득하도록 내리쬐던 정오의 햇빛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 물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강은 늘 그 자리지만 강을 채운 물은 끊임없이 흐르므로, 이 강은 같은 강일까 다른 강일까 따위에 대해.


지리 시간에 배운 내용에 따르면 내 눈 앞에 흐르는 저 물은 경기도 남쪽의 산속 샘물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안양과 광명을 지나 서울의 구로구와 양천구를 거쳐 강서구에 이르러 성산대교와 가양대교 사이에서 한강과 합쳐진다. 한강은 세계적으로도 꽤나 큰 강이다. 더 유명한 강은 파리의 센강일 테지만 규모 면에서 센강은 한강에 비하면 꼬꼬마처럼 작은 강이다. 그러나 이렇게 큰 한강도 바다는 아니므로 끝은 있다. 김포의 서쪽 끝, 거의 강화에 근접한 지점에서 북쪽의 태백에서부터 시작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들면 강은 바다를 만나 끝을 고한다.      


샘물이 바다가 되기까지 모든 걸 떠안고 같은 자리를 흐르지만 끝없이 변신하고 순환하는 물의 여정을 상상하자면 사람의 일생은 그에 비해 쉽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그 반대이려나. 물은 그저 말없이 흐르기만 하면 되는데 사는 건 뭐가 이렇게도 복잡하고 어려운지.


아무튼 물을 곁에 두고 걷는 동안 내 슬픔은 희미해진다. 치유되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슬픔에 젖어드는 것에 가깝다. 슬픔을 다독이는 건 더 큰 슬픔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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