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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an 31. 2024

죽을 것 같은 데 죽지 않아 비명을 질렀다.

창밖은 가을, 장편소설


연수가 난소암 진단을 받던 날. 당당 의사는 연수가 아닌 동생인 연재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렸다. 연수는 그것도 모르고 검사 결과 나왔으면 빨리 집에 가자고, 이제 다 나은 것 같다며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며, 내일은 출근해야 한다고 숨도 쉬지 않고 난리다. 그런 연수에게 연재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연수는 계약직 도서관 사서로 오랫동안 일했다.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계약직은 계약직이라 일 년 만에 재계약이 안 되면 바로 실직이다. 실직은 곧 생존을 위협했기에 연수는 모든 궂은일을 자처했다. 잘리지 않기 위해, 실직하지 않기 위해 도서관에 영혼을 갈았다.      


연수에게는 계절마다,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한 아이디어가 넘쳐났고, 그 아이디어에 따라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수도 없이 많았다. 예를 들면, (대부분 도서관에서는 북 토크나 인문학 강좌만을 주로 여는데) 가을엔 ‘재즈와 함께 떠나는 가을 여행’이란 제목으로 연주자들을 섭외, 도서관 마당에서 재즈 연주와 여행을 주제로 한 강연을 만들었고, 겨울엔 ‘이불속에서 떠나는 역사 여행’이라는 주제로 집에서 이불 덮고 참여할 수 있는 화상 역사 강연을 열었다. 또 봄엔 ‘봄의 왈츠’란 주제로 봄을 주제로 한 그림을 도서관 마당에 전시했고, 화가가 직접 그림에 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여름엔 ‘썸머 페스티벌’이란 제목으로 탱고와 같은 댄서들을 초빙, 탱고의 역사에 관한 강연도 하고 춤도 보여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모두 문화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수 다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계약직인 연수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건 한 건도 없었다. 


모두 연수의 아이디어와 기획안에 따라 만들어진 프로젝트지만 정직원인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고 나갔다. 이렇게 장장 이십 년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연수는 연재에게 전화를 걸어 입버릇처럼 말했다.


“너 학원에서 잘리면 나랑 복합 문화 공간 만들자. 꼭! 거기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넌 거기서 글을 쓰고, 독서 토론을 해. 난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도 열고, 음악가들 모시고 연주회도 열고, 화가들 그림 전시도 할래. 돈은 안 되겠지만 뭐 어때.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행복하게”


그때 연재는 “어”라고 말은 했지만 연수의 말을 흘려들었다. 연수는 연재에게 늘 ‘우리’라고 했지만, 연재의 ‘우리’에 연수는 없었고, 그게 행복한 일인지 아닌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연재의 머릿속은 ‘저녁 반찬은 뭘 해야 할까. 둘째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괜찮나? 남편이 오늘 또 늦으려나’ 같은 일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수는 비혼이라 자기만 신경 쓰면 되지만 연재는 돌봐야 할 가족이 셋이 더 있었기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재는 잊고 살았다. 시간도 사람도 흘러가 버린다는 사실을.      


연수는 의사가 말한 기간, 고작 3개월도 다 채우지 못하고 급하게 가버렸다. 연수의 장례를 치를 때도 연재는 울지 않았다. 왜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고, 복합 문화 공간은 더구나 생각나지 않았다. 연수를 잃은 슬픔은 아주 서서히 집요하게 연재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연수에 대해 생각하자면, 귀찮을 때가 종종 있었다. 집안일로, 직장 일로 바빠 죽겠는데, 자기 힘든 얘기만 늘어놓기 일쑤고 더욱 참기 힘든 건 도서관 사서들의 가정사에서부터 연애사, 경조사까지 시시콜콜 다 얘기할 때다. 그럴 때마다 연재는 내가 왜 그쪽 도서관 누구누구의 사돈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는지 화가 치밀 때도 많았다. 그래도 언니니까, 오죽 말할 사람이 없으면 이럴까 싶기도 하고, 내가 아니면 누가 들어주리, 싶어 참긴 하는데 늘 연재의 임계점을 넘는 게 문제였다. 듣다 괴로운 연재가 말을 끊을라치면 토라져서.     


“나쁜 년, 넌 공감 능력이 없어! 넌 너만 행복하면 되지?” 그리곤 핸드폰을 탁 끊어버린다. 기껏 화를 풀어주려고 다시 전화하면 받지도 않고. 그러다 또 자기 필요할 때면 전화하고. 사실 연수의 말이 맞는 게 그때 연재는 워킹맘으로 살아내는데, 모든 능력을 쓰고 있어서 공감에 쓸 능력치가 남아있지 않았다.     


연수가 가고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문자가 오지도 않았는데, 진동이 느껴졌다. 

연수의 음성지원까지 덤으로 왔다. 


“저녁에 비 온대. 우산 챙겨”


애들 시험 기간이라 늦게까지 보충수업하고 기진맥진해 집에 돌아오던 날, 


“힘들지? 고생했어, 언니가 밑반찬 해서 경비실에 맡겨놨어, 맛있게 먹어”


학부모가 찾아와 자기 아이 성적 떨어졌다고 생난리를 쳤다고 하면.


“미친년, 지 머리가 나빠서 지 새끼가 그런 걸 왜 너한테. 다음에 또 와서 지랄하면 우리 집에 미친개가 있다고 해. 내 동생 건드리면 내가 콱 물어 버릴 테니까! 알았어?”     


연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연재는 그제야 무너졌다. 도서관 사서의 사돈 일도 궁금하고, 이번에 무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지, 어떤 사서가 우리 연수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었다. 연수가 그리워 미칠 지경이 되었다.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로 일곱 정거장 떨어진 연수의 집을 향해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빨간불로 바뀌는 교차로를 내달리는 바람에 급정거한 택시 기사가 쌍욕이 들어간 사나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다음 교차로에서 연재를 멈추게 한 건 배달 오토바이였다. 배달통에서 쏟아진 시뻘건 마라탕과 뚜껑이 열린 플라스틱 용기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졌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연재의 무릎에서도 피가 났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연재는 또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연수의 집.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한참 후에 경찰이 왔다. 정강이뼈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경찰차에 태워져 무릎에 흐르는 마라탕 국물 같은 피를 닦다가


연수가 그리워서. 

연수에게 미안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동생이라서 언니의 외로움을 알지 못해서. 

그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

울었다. 

.

.

.

가슴이 찢어져 죽을 것 같은 데 죽지 않는 게 미칠 것 같아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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