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양연화 Feb 28. 2024

입은 웃고 눈은 우는 남자의 자화상

창밖은 가을, 장편소설

현은 춘하 시를 대표하는 명문 춘하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성격도 좋고 친구 관계도 원만해서 반에서 반장을 해왔고,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현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집에서도 부모님 걱정 안 시키는 모범적인 아이. 그런 현이 고2 올라가면서 여친이 생겼다. 바로 옆 반, 희수. 희수는 현이와 전교 1, 2등을 겨루는 옆 반 반장이다. 처음 현이 희수랑 사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의아했다. 왜 하필 이기적인 희수랑? 분명 희수가 현이 공부를 방해해 자기가 1등 하려는 전략이라는 말까지 떠돌았다. 현은 개의치 않았다. 다들 희수를 몰라서 하는 소리, 현이 눈에 희수는 똑 부러지고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게다가 이뻤다. 희수는 현에게 처음 생긴 여친이고 첫사랑이다.     


한 달도 못 갈 거란 예상을 깨고 현과 희수는 5개월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독서실 데이트가 90 프로를 차지하지만, 그것도 현은 좋았다. 짬짬이 컵라면도 먹고 대학은 어디로 갈지, 전공은 뭐로 할지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희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현은 특별히 되고 싶은 건 없었다. 다만 의대를 가야 한다는 부모님 성화에 이과에 왔고, 성적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의대에 가리라 생각했다.      


현의 아버지 도식은 정형외과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도식은 자기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원장에게 늘 허릴 숙여야 하니 속이 속이 아닐 때가 많았다. 그러니 도식으로써는 현이 꼭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절대 허리 굽힐 일 없는 갑으로 사는 것, 그것이 도식의 꿈이다.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는 게 현의 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 현은 따로 꿈을 생각지 않았다. 현이 생각하는 한 가지는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를 고생에서 해방해주고 싶다는 생각뿐.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현은 모처럼 희수와 도서관 외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했고,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바래다주는 길, 희수는 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현은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님 걱정이 됐지만, 희수가 집에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보낼 수도 없는 일, 희수와 중앙동 시내를 돌다가 인생 네 컷을 찍기 위해 포토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찍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갑자기 희수가 양손으로 현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술을 덮쳤다. 방금 먹은 딸기 아이스크림이 입가에 남아있어 희수의 입술에서 딸기 향이 났다. 어찌나 달콤하던지 현은 정신이 몽롱했다. 그사이 네 컷 사진이 나왔는데 죄다 희수 뒤통수가 가득했고 희수의 손에 가려진 현이 얼굴이 반만 삐쭉 나왔다. 희수가 사진을 보며 키득거리는데, 이번엔 현이 희수의 입술을 훔쳤다. 뒤에서 기다리던 커플이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면 둘의 입술은 소멸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포토박스에서 나온 둘은 팔짱을 끼고 액세서리, 옷가게 등을 구경했다. 그러다 으슥한 골목만 보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른 들어가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온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았고, 행복했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곧 버스도 끊길 시간, 현은 여전히 집에 가기 싫다는 희수를 겨우 달래 집에 바래다주었다. 간신히 막차에 오른 현은 버스 자리에 앉자마자 주머니에 담아둔 인생 네 컷 사진을 꺼내 봤다.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났다. 둥실 떠 있는 마음으로 희수에게 톡을 보냈다.      

‘사랑해’     

 

써놓고 보니 사랑이란 말이 부족하다. 곱하기 백만을 추가하고 답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다. 너무 늦어 부모님께 많이 혼나는 건 아닌지 걱정됐지만, 그런 걱정조차 행복했다. 둘만의 은밀한 비밀이 생겼으니까. 현이 집에 도착해 살금살금 들어서는데 부모님이 거실에서 딱 기다리고 계셨다. 왜 이렇게 늦었냐며 언짢은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 시험 잘 봤다는 현의 방어에 두 분 목소리 톤이 급격히 부드럽게 바뀌었다. 시트콤 같았다. 현이 욕실에서 씻고 나오는데 안방에서 부모님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현이 누굴 닮아 저렇게 잘났냐며 서로 자길 닮았다고 우기고 있었다. 현이 나오는 소리를 들은 엄마 지수가 물었다. 

“배 안 고파? 치킨 먹을래?” 

“아뇨, 주무세요!” 

현은 방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누웠다. 희수 입술 느낌이 사라질까 봐 양치는 하지 않았다. 희수에게 보낸 톡을 확인하니 아직 읽지 않은 1이 남아있다. 아마 피곤해 그대로 기절한 모양이라고 현은 생각했다. 달콤한 희수를 느끼며 현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희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종례 시간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 말씀하셨다. 희수가 죽었다고.


                    *     

희수의 장례식이 끝나고 담임은 현을 불렀다. 희수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현이라며 담임은 물었다. 희수가 왜 죽었냐고. 

그건 현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희수가 왜 죽었냐고!!!      

그러니까 그날은 죽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희수는 우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행복한 날이었다고. 현은 오랜 시간 그날 일분일초를 복기하면서 깨달았다. 그날 희수는 뭔가 달랐음을. 지나치게 밝았고, 지나치게 많이 웃었고, 지나치게 활달했다. 그러니까 행복했던 게 아니라 행복하고 싶었던 거다.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은 어떻게든 현이 붙잡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알기까지 6년이 걸렸다.     


왜 몰랐을까. 현은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아무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너라면 알았을 거 아니야! 네가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모두 현을 몰아세웠다. 현이 희수를 강제 추행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떠돌았다. 눈덩이처럼 커진 왜곡의 언어들은 현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네 컷 사진으로 잠잠해졌다. 강제 추행해서 희수가 죽었다니, 현의 슬픔은 많은 이들의 오해로 오염되고 말았다. 오염된 슬픔은 독이 되어 현의 가슴에 그대로 쌓여갔다. 진짜 친한 친구들에게 위로받긴 했지만,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의미 없는 말들은 의미 없는 채 허공을 떠돌았다.     


희수 엄마가 학교로 현을 찾아왔다. 희수가 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거란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다. 다 너 때문이라고, 다 너 때문이라고 했다. 현은 희수가 왜 죽음을 택했는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다 너 때문이란 말에 또 무너졌다. 학교에선 희수의 죽음을 빨리 지우려 했다. 다른 아이들까지 여파가 미치면 안 되는 일이니까. 곧 고3이 되니까.   

   

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든 게 꿈인 것 같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몽롱한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고 3이 되고 성적은 최상에서 상으로, 중에서 바닥으로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이젠 그만 정신 차리고 네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래지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 희수도 원치 않을 거야 싶어 힘을 내보기도 하지만, 그 힘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날은 희수를 잊고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 또 어떤 날은 희수가 죽었는데, 아무 일 없듯이 살려는 자기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과 계속 가라앉는 두 마음이 작은 가슴 안에서 큰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신기하리만치 눈물은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건 내가 죽어야 끝나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현을 지배했다. 희수가 죽고 일 년 만에 현이 손목을 그었다.     

 

첫 번째 정신과 보호 병동에 입원했을 때 담당 선생님이 처음으로 말해줬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희수의 죽음에 현이 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희수는 우울증 때문에 죽은 거라고.

그날 현은 참았던 폭포 같은 울음을 쏟았다. 희수의 죽음을 애도조차 할 수 없게 옭아맸던 잔인한 사람들로부터 격리되니 비로소 희수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수 있었다. 울다가 탈진이 될 때까지 울었고, 탈진된 현의 팔엔 두 개의 링거가 동시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번의 통곡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보호 병동에서 생활은 현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다.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니, 내가 진짜 미친 건가?” 싶은 혼란과 

“과연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가뜩이나 상처로 약해진 마음에 날카로운 생채기를 냈다. 면회 온 지수는 현을 보고 울기만 했다. 엄마의 눈물은 현에게 깊은 죄책감까지 심어줬다. 보호 병동에 몸이 갇히고, 복합적인 감정의 폭설에 마음이 갇혔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현이 입원한 병실은 4인실로 커튼이 없어 모든 행동이 노출되었다. 행여 위험한 행동을 하면 금방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에 가림막이 없는 건데, 자기만의 공간이 없이 생활하는 건 왠지 벌거벗고 생활하는 것 같다. 병원 생활은 단조로웠다. 밥 먹고, 약 먹고, 상담하고 대체로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시간이 가장 긴데, 겉에서 보기엔 지루해 보이기까지 한 시간 속에서도 마음은 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래서 숨이 막히고, 지치고, 소진되고, 진이 빠졌다.    

  

입원하고 일주일 되었을 때 미술 치료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여섯 명의 환자들이 모여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각자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현이 그 첫 번째였다. 현은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울 장애 의심으로 입원한 열아홉 살 김현입니다”라고 간신히 입을 뗐다. 누군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현은 희수가 죽었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어둠에 잠겨 버린 현은 주변 사람들이 무슨 얘길 하는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소개 시간은 끝이 났고, 미술 치료사는 여러 장의 그림을 책상에 펼치며 현재 자기 모습과 가장 비슷한 그림을 고르라고 했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자신감 넘치는 얀 반에이크의 자화상, 불안한 뭉크의 절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렘브란트 말년의 자화상, 오른 손목이 잘린 키르히너의 자화상. 어딘가 뒤틀린 에곤 실레 자화상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자화상들이 줄을 맞춰 누워있었다.  

    

현이 고른 자화상은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그린 자화상이었다. 어떤 점이 닮았는지 치료사가 물었고, 현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이 우는 남자 모습에서 자신을 봤다고 했다. 순간 치료사의 얼굴에 어둠이 스쳤다. 게르스틀은 실연의 상처로 인해 25살 나이에 자살한 천재 화가였고, 그 그림은 그가 끔찍한 방식으로 죽던 해에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은 그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치료사는 불안정한 징후로 생각했다. 현은 집중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어 화장실을 갈 때도 보호사가 붙었다.     


얼마 후 수간호사는 현에게 감정 노트를 주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분이나 감정을 적어보라고 했다. 슬픔, 우울, 그리움, 좌절, 외로움, 분노, 불안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아무리 써도 다시 또 차오르는 감정을 계속 적다 보니 언제부턴가 숨이 쉬어졌다. 빽빽했던 감정들 사이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틈이 넓어지면서 현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호흡이 길어지고, 불면의 시간은 짧아졌다. 마침내 붙여진 현의 진단명은 양극성 전동장애조울증으로도 불리는 기분 장애의 일종이다. 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울증이라면 몰라도, 조울증이라니, 조증 상태라 할만한 기분을 느껴본 적 없었는데.     

 

주치의는 양극성 정동 장애는 1형과 2형으로 나뉘는데, 1형은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혹은 동시에 나타나고, 2형의 경우 경조증과 우울증이 1형과 같은 패턴으로 나타나는데, 경조증은 말 그대로 조증이 경한 증상이라 본인 자신도 모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이 아니기 때문에 항우울제로 치료되지 않고, 기분 조절제를 써야 한다고. 얼핏 들으면 1형이 2형 보다 더 중증이고 심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2형이 더 위험한 경우가 많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니까 현은 정확히 양극성 정동장애 2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위로의 말인지, 사실인지 몰라도 치료만 잘하면 일상생활은 물론 완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몇 주가 흘렀고 퇴원이 결정되었다. 도식과 지수는 작은 퇴원 파티를 열었다. 현의 빠른 일상 회복을 도우려는 마음에서였다. 진심으로 현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고 장난치고 웃다 보니 모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사이 현의 친구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대부분 서울에 거처를 마련했다. 현은 출석 일수 부족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기에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파티가 끝나고 도식은 빨리 학원에 등록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다. 원래 똑똑하고 머리 좋은 현이기에 정신만 차리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건 일도 아니라고 현을 격려했다. 현도 그럴 생각이었다. 이제 불행은 끝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 일 없이 살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한번 깨진 마음은 미풍에도 금이 갔다. 이후 6년 동안 다섯 번의 입·퇴원이 반복됐다. 마지막 퇴원했을 때, 현은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고, 그때 만난 곳이 소풍이었다.

이전 15화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