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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Mar 06. 2024

인연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캐럴에 섞여 흩어졌다.

창밖은 가을, 장편소설


어두운 방 안, 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꺼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더니 전원이 꺼져버렸다. 발신자는 소풍 매니저. 지금은 뚝딱뚝딱 콘서트가 열릴 시간이고, 원래대로라면 현은 그곳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요한 적막 속에서 당장 자신을 해해야만 사라질 절박한 감정에 휩싸인 현은 커터칼을 들고 떨고 있다. 식은땀이 흐른다. 마음속 어디선가 이대로 무너지지 말라는 작은 외침도 올라왔지만, 이내 음 소거되었다. 금방이라도 동맥에 실선을 그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현은 목적 달성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부모님, 제하, 친구들, 지금까지 자기를 지지해 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느라 목과 얼굴에 경련이 일면서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죽고자 하는 열망이 팽팽하게 대립하여 몸이 굳어가던 그때, 오피스텔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면서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왔다. 누군가 집 안에 불을 켜면서 자동차 상향등을 눈에 직통으로 맞은 듯한 현은 눈앞이 하얘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현의 집에 들어선 사람은 119 구조대와 제하였다. 전화를 받지 않은 현이 걱정된 제하가 구조대를 불렀던 거다.     


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 응급실이었다. 지수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훑고 있었고, 도식은 현이의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두 손으로 머릴 싸매고 있었다. 희수란 애를 만나 내 아들 인생까지 끝나는구나 싶으니 도식은 죽은 희수가 미웠다. 결국 다시 정신과 보호 병동 입원 조치가 이뤄졌다. 보호 병동은 반입이 금지되는 물건이 대부분이다. 자해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만한 요소가 있는 건 모두 금지, 핸드폰도, 면회도 금지다.     


보호 병동은 그대로였다. 의사도 간호사도,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는 장기 입원 환자들까지도, 그러기에 반은 아는 얼굴이다. 이 익숙함도 혐오스러워 첫 일주일은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한 주를 보냈다. 꾸역꾸역 약을 털어 넣었기에 일주일에 지나자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씩 올라왔다. 자해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대신 도식의 싸늘한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버린 지수의 표정이 현의 마음을 짓눌렀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니 풀리기는 할지 모든 게 불투명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되리라는 예감, 그 불길한 불안감이 현이를 더 무기력하게 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현에게 미술 치료도 감정 노트도 권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주기적인 상담이 잡혀있긴 했지만, 이미 많이 반복했던 터라 더 한다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은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단지 희수 엄마를 만난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약을 먹지 않아서였을까? 돌이켜보니 많은 문제가 보였다. 욕심이 앞서 너무 많은 일을 기획하고 처리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인 생활은 조증 에피소드에 해당한다는 걸 알았지만 무시하고 지나쳤던 것, 어느 순간 찾아온 우울감을 억지로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애초에 현이 작정하고 약을 안 먹은 건 아니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약 먹는 걸 깜빡하고 넘어갔는데,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주치의는 아무리 오래 약을 먹어도 뇌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약만 잘 먹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문제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현은 단약=치료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약봉지를 뜯을 때마다 스스로 정상이 아닌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억울했다. 다들 이런 병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 않는가? 감기는 약을 먹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되는 병이고, 자기 병도 그런 거라면 저절로 나아야지! 억울해하는 현에게 주치의는 어떤 사람은 감기로 죽기도 한다며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이 억울해하는 것처럼 자칫 병을 가벼이 여기게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인정하며 현이 앓고 있는 양극성 정동장애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평생 조절하며 사는 병이니, 병에 대한 인식만 제대로 한다면 쓸데없는 시도(단약과 같은)로 시간을,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번엔 더 깊이 현에게 다가왔고 다행히 빨리 안정을 찾았다. 면회가 허락되고 현이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은 제하다. 현과 마주 앉은 제하가 말 문을 열었다.     


“괜찮아?”

“... 죄송해요”

“... 고마워”

“???”

“내가 갈 때까지 참고 기다렸잖아. 그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 근데, 제가 그럴 걸 어떻게 아셨어요?”

“... 희수 엄마가 전화하셨어. 널 봤다고 하시더라”

“... 저 원망하시죠?”

“아무 말씀 안 하셨어.”

“절 원망 가득한 눈으로 보셨어요”

제하는 말을 멈추고 고통스러워하는 현의 손을 잡았다.

“네가 걱정돼서 나한테 전화하신 거 같아” 

“... 저를 걱정하신다고요?”

“아니면 왜 굳이 내게 전화해서 널 봤단 얘길 하셨겠어. 다른 말 없이 그 말만 하고 끊으셨어”

“그럼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셨을까요?”

“네가 그렇게 본 건 아니고?” 

“...”     


현과 제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을 깬 건 현이다.

“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제하는 대답 대신 잡은 손을 더 꼭 힘주어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를 마친 제하는 병원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끝나지 않은 고통은 제하도 마찬가지였다. 제하는 그때 교사 임용고시를 막 통과해 춘하 고등학교에 첫 부임 했고, 처음 맡은 반이 희수가 있던 반이었다. 희수가 그렇게 되고 희수를 지키지 못한 자책과 무능감에 교사라는 직업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반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 간신히 2학기를 버텼고, 학기가 끝나자마자 결국 사직서를 냈다. 어렵게 임용고시를 통과했지만, 교사 생활은 1년으로 끝난 셈이다. 반장이었던 희수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희수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니, 그런 우둔한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차마 설 수 없었다.   

   

이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피폐해진 마음을 명상과 수련으로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들려온 소식, 현이 자살을 시도했단다. 아차 싶었다. 현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하도 그 사건에서 벗어나고자 인도까지 도망쳤는데, 고작 19살 현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일 년이라는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다니. 그때 현을 불러 '진짜 아무 일 없었냐'라고 다그친 기억이 떠오르자 제하는 자기가 현까지 죽음으로 몰아세운 것 같다.  

   

당장 짐을 싸서 한국에 돌아와 보호병동에 갇힌 현을 만났다. 반짝반짝 빛나던 현의 눈동자에 빛은 사라지고 표정 없는 그는 완전히 텅 빈 것 같았다. 제하의 사과에도, 눈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 현을 두고 나오는데, 철컹하고 철문이 닫힌다. 그 서늘한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굳게 닫힌 철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아 손이 벌벌 떨렸다. 떨리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저 아이까지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끝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을 거라고. 


주치의는 옆에 지지해 주는 사람으로 남아있기만 해도 그를 돕는 거라고 했지만, 반복되는 상황에 계속 이렇게만 있어도 될지 제하는 혼란스럽다. 일이 년이면 좋아지겠지 했는데, 벌써 6년이 흘렀고 시간은 흘러도 고통은 더 깊숙이 고여만 갔다. 제하의 부모님도, 친구들도 입을 모아 말한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네가 현이 부모도 아니고 걔 담임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상처받은 인간의 눈동자를 한 번이라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이만하면 됐다는 말은 자기 편리에 맞춰진 회피라는 것을. 

    

퇴원한 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소풍이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무단으로 결근했는데, 그런 현을 다시 받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죄송하다는 인사는 하고 싶었다. 호수에 도착하니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현은 호수에 내리는 눈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형체가 있는 눈 알갱이가 수없이 호수에 낙하하면서 물이 되어 사라진다. 구름에서 눈으로, 눈에서 호수로, 다시 구름으로. 억겁의 윤회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구름, 눈, 호수….’ 현이 눈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길고양이가 다가왔다. 

녀석도 현처럼 추위와 허기에 떨고 있었다. 그때 연재가 고양이 사료 봉지를 들고 나왔다. 현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사료 그릇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연재에게 인사하면서 현은 봤다. 연재의 얼굴이 울고 난 사람의 그것이란 걸. 내 인생만 측은 한 줄 알았는데, 연재도 그렇구나 싶으니 동지애 같은 것이 일어 하마터면 병원에 입원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뻔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굳이. 그동안 감사했고, 무책임하게 행동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려는데, 연재가 들어오라고 한다.    

  

연재는 레몬 생강차를 타 줬다. 따뜻하고 새콤달콤한 차를 마시니 얼었던 몸이 풀렸고, 연재의 따뜻한 눈빛에 굳었던 마음이 풀렸다. 어쩌면 다시 계속 일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마저 든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주말 장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슴이 뛰었다. 아이디어들이 마구 샘솟았다. 하지만 이 또한 조증 증상일 수 있기에 연재와 헤어지고 당장 주치의를 찾아갔다.  

    

현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열정이고 어느 지점을 넘으면 병적인 건지 말이다. 주치의는 열정 없이 해낼 수 있는 건 없다며 현을 격려했다. 다만 체크리스트를 만들 것을 권했다. 하루 루틴을 만들어 하루하루 제대로 지켰는지 점검하라는 거다. 규칙적인 식사, 운동, 투약, 수면까지.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현의 정신 건강까지 지켜줄 수 있다며 현을 응원했다. 현은 주치의가 시키는 대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잘 보이는 거실 벽에 붙였다. 그리고 마트에 들러 김밥 재료를 사서 손질을 시작했다.  

    

소풍에서 판매 가능한 브런치용 김밥을 만들어 볼 예정인데, 일단 현이 먹어본 중 가장 맛있다고 느꼈던 비빔밥 김밥을 만들었다. 현의 요청에 달려온 제하가 시식을 맡았다. 제하는 맛은 좋은데, 비주얼이 문제가 있다고 했다. 돈 받고 팔만한 비주얼이 아니라는 거다. 아쉽지만 패스. 베이컨 말이 김밥은 맛도 비주얼도 합격이나, 이걸 팔아 수익을 내려면 한 줄에 이만 원은 받아야 한다. 저렴한 베이컨은 잡내가 있어 고급 훈제 베이컨을 사용했는데, 호텔도 아니고 김밥 한 줄에 이만 원은 춘하 시 정서가 아니다. 몇 번의 과정을 되풀이한 결과 몇 가지 종류의 근사한 김밥이 탄생했다. 그렇게 시작한 주말 장사, 손님이 꽤 있었고 반응도 좋았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니 행복했다.     


가끔 카페에 무례한 손님이 있었지만, 슬기로운 연재가 커버해 주니 문제 되지 않았고 퀼트 팀들도 수찬 씨도 모두 다정했다. 오직 하나 마음에 꺼려지는 게 있다면, 연재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지 속이는 건 아닌데, 어떤 사실은 숨기는 것만으로도 속이는 게 될 수 있다. 연재가 현을 대체 가능한 알바가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할 때마다 현의 마음은 더 무거워져 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야심 차게 준비한 플리마켓까지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현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거나 대학 마지막 학년을 남겨 둔 상태다. 모두 고등학교 친구라 그 시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다들 현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하다 만다. 현은 그냥 편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대화는 뚝뚝 끊어지고, 친구들의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현을 소외시켰다. 같이 있어도 더는 접점이 없는 상태, 일상도 나누지 않고, 추억조차 공유할 수 없으니 친구가 친구가 아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울려 밥 먹고 게임도 하고 시내를 왔다 갔다 했지만, 마음이 허했다. 


인연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고요한 밤, 거룩한 캐럴에 섞여 저 멀리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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