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야- 유나야아--”
할머니는 오랜만에 뜀박질을 했다. 그동안 두 다리는 쪼그려 앉고 걷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다리는 뜀박질이라는 행위를 아예 잊은 것처럼 살아왔다. 그럴만한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요 조막만 한 손녀딸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달리는 바람에 걷는 것만 할 줄 알았던 다리는 오랜만에 뛰었고 덕분에 심장도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유나는 흙길 저만치에 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그 작은 모습이 확인되자 할머니의 터질 것 같던 심장박동도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걷는 속도를 늦추며, 하지만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할머니는 드디어 유나 앞에 도착했다.
“헉.. 헉... 아야...”
“엉... 엉... 엄마...”
“헉.. 헉.. 유나야..”
오랜만에 놀란 심장은 할머니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거로 앙갚음하려는 듯했다.
“엉.. 엉.. 아빠...”
가슴에 남은 여진을 부여잡으며 할머니는 유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흙바닥에 넘어졌는지 유나의 무릎엔 흙이 묻었고 그 틈으로 조금씩 피가 번지고 있었다.
“으메 피나네-”
할머니는 얼른 손에 침을 묻혀 핏물에 물들고 있는 흙을 털어내었다.
“어여 가서 약 발르자. 언능 인나 봐-”
“엉.. 엉.. 엄마...”
할머니의 애원에도 유나는 꿈쩍하지 않고 우는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고, 할머니는 손바닥과 손등으로 손녀가 뿜어내는 진득한 액체를 슥슥 닦아냈다.
“어여 가자, 가서 밥 묵어야제”
“싫어— 엉.. 엄마....”
할머니의 말투는 애걸 조로 바뀌었지만, 유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어댔고 통곡 소리는 더더욱 커질 뿐이었다.
“집에 맛있는 밥 해놨어. 누렁이가 다 먹는다 언능 안 가믄”
할머니는 슬쩍 협박성의 말도 뱉어 보았다.
“싫어- 우리 지입- 우리 집 갈래— 엉---”
하지만 할머니의 애원도 애걸도 협박도, 고집불통 손녀딸의 통곡엔 무용지물이었다.
“..... 에이그, 고 가스나 참..”
할머니는 호소하기를 단념하고 유나의 기운이 다하길 기다리기로 했다. 목청 좋은 유나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을 한동안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유나에게는 두 살, 세 살 터울의 언니 오빠가 있었다. 연년생을 국민학교에 보내며 장사를 하던 유나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막내에게 소홀했다. 다행히 눈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막내는 낯도 덜 가리고 아무하고 잘 적응하는 성격이었다. 부모는 큰애들이 겨울방학을 할 때까지 몇 달 정도만 유나를 시골 할머니 집에 떼어두기로 했다. 부모가 조금 편하자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유나가 언제 시골살이 경험을 해보겠냐며 막내를 위한 결정인양 포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제, 유나는 오랜만에 할머니네 가자는 말에 소풍 가듯 따라나섰다. 그렇게 유나네 가족은 할머니 집에 도착했고, 진짜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밝디밝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 엄마와 아빠, 오빠와 언니는 유나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유나만 두고 죄다 집으로 가버렸다.
할머니는 유나를 둘러업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식전부터 뛰느라 기운이 빠진 유나는 바람 빠진 튜브처럼 쭈그러져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나만 버리고.. 엄마 나빠.. 엉.. 엉..”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유나는 엄마를 향한 원망의 말을 이어갔다.
“베리긴 누가 누굴 베려. 우리 유나가 어떤 애긴디 베려. 올겨, 몇 달 있다 언니 오빠 겨울 방학하믄 온디야. 이자 그만 뚝 햐”
“시러.. 겨울방학 시러.. 엉엉... 나도 지금 갈래.....”
“언능 가서 밥 묵자. 씨래기 삶아 논 것처럼 축 쳐졌네 기냥..”
“엉... 엉... 엉......”
소풍 온 줄 알았던 그곳은 아빠가 몇십 년 전 나고 자란 곳이었다. 수도권 집에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몇 시간 걸려야 도착하는 곳. 유나네 집과 달리 주변에 건물보다는 풀과 나무,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곳. 그리고 아빠의 엄마가 아직 홀로 살고 계신 시골의 한 작은 동네. 이제 유나는 아빠의 어린 시절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할머니와의 시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마을의 이름은 곤졸이었다.
그날 이후 유나는 아침이면 대문 밖으로 쪼르르 달려나갔다. 다음 날은 넘어진 곳보다 조금 더 가서 쪼그려 앉아 울었고, 다음 날엔 그보다 더 가서 주저앉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나타나 유나를 업고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마치 업고 오기 놀이라도 하듯 유나와 할머니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을 마치 할머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듯 할머니 기운을 빼고 말도 않고 심통만 부려댔다.
“나 혼자 잘 거야! 할머니는 건넌방 가”
어차피 한 공간이었건만 유나는 할머니를 건넌방으로 쫓아냈다.
“가스나, 아랫목 뜨신 건 알아가지구..”
이불과 베개를 짊어지고 윗목으로 옮겨가며 할머니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배배 꼬인 유나의 심통을 풀어주려는 할머니의 구애는 계속됐다.
“할미랑 저 큰길 가게 가서 과자 사올려?”
“당숙 할먼네 텔레비전 있는디 가서 볼텨?”
“요 앞 냇가에 물고기 있는디 몰랐제? 한번 잡아 볼텨?”
할머니는 수시로 이런저런 제안을 했지만, 그때마다 유나는 도도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유나의 결론은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할머니 때문에 자기만 버려진 게 맞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 시골 동네에 혼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기만 놓고 갈 일은 없었을 거다. 7살 여자아이가 내린 나름 논리적인 결론이었다.
유나는 할머니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할머니 탓을 하면서 할머니가 가져오는 밥상에 털썩 앉으면 왠지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꼬맹이 소녀의 자존심은 그렇게 할머니의 밥상을 멀리하는 것으로 더욱 꼿꼿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런 유나를 위해 할머니는 여름에 남긴 옥수수며 감자며 고구마를 찌고 구워 꼭 마루 한편에 놓아두고 대문을 나섰다. 처음엔 정말 하나도 그 수가 줄지 않아 ‘독한 년’이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 정도 지나자 덮어두고 나간 밥상의 음식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한쪽만 파먹은 옥수수를 티 나지 않게 알이 박힌 쪽이 보이게 놓아둔 걸 확인했다. 할머니는 그제야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그런 밥상을 치우면서도 할머니는 일부러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
“으이구 밥을 또 한 개도 안 묵었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으이그 유나 무셔워라..”
유나는 티 안 나게 먹은 걸 할머니가 알아채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왠지 할머니를 골탕 먹이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빳빳하게 고추 세우고 있던 자존심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는 건 저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유나는 더 이상 급하게 대문 밖으로 달려나가지 않았다. 마루에 앉아 신발을 신는 것도 평소와 달리 꾸물거렸다. 할머니가 소여물을 주고 빈 빠깨쓰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폴짝 마당으로 뛰어내린 유나는 괜히 소 우리 쪽을 힐끗거렸다.
“할미 오늘은 당숙네 갈겨. 니 안 델러 가니께 그런 중 알어”
부엌 안에서 슬쩍 유나를 돌아보며 할머니가 말했지만, 유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끌 듯이 발을 한발 한발 움직였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면 바로 대문이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고 가로로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소 우리를 마주한 뒤 누런 소를 빤히 쳐다보았다.
“뭘 봐”
괜한 시비조에 누렁이도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앞에 선 조막만 한 유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야말로 뭐냐고 맞서는 듯했다.
“이게 맛있냐...?”
유나는 아직 온기가 남은 여물을 손으로 집어 들고 콧구멍에서 손가락을 빼고 가까이 댔다가 우엑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이 돼지. 맛도 없으면서!”
말 못 하는 짐승에게 괜한 심통을 쏟아 부은 유나는 터덜터덜 대문으로 향했다. 누렁이는 코를 킁- 하고는 계속 맛나게 식사를 했다. 니가 이 맛을 아느냐는 듯이.
“풀 많은 데로는 가지 말어- 뱜 있어 뱌암-”
할머니는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유나의 뒤꽁무니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소리라곤 누렁이의 투레질뿐이었다.
그날 유나는 뛰지도 않고 주저앉아 울지도 않고 가장 멀리까지 갔다. 그렇게 유나가 다다른 곳은 저수지 앞이었다. 언젠가 설날, 날이 추워 저수지가 꽝꽝 얼어붙어 그 위를 가로질러 온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쓱쓱 발로 밀며 미끄럼을 타다 보면 어느새 맞은편 마을 입구에 도착했었다. 유나는 이 저수지 건너편에 버스든 기차든 집으로 가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이 얼어붙어 있지 않은 지금은 저수지를 빙 둘러 한참을 돌아가야 했고 그 길은 잘 몰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언니 오빠도 없는 눈앞의 저수지는 배가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넓디넓은 바다처럼 보였다.
할머니에게 대꾸하지 않던 동안에도 귀는 열려 있었기에 유나는 할머니가 한 말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큰길 가게까지 가볼까 했지만, 시골 가게래 봤자 별것 없다는 걸 엄마와 가본 적이 있어 이미 알고 있었다. 저수지가 가로막고 있는 그곳이 유나에게는 막다른 골목 같았다. 물은 눈에 보인다고 해서 건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물가라 풀도 많았다.
“... 뱌암이 모야.. 맨날 이상한 말만 해. 뱌암 뱌암 뱌암..”
집을 나서는 순간 들렸던 할머니의 말을 꼭 그랬다. 뱌암이라고. 유나는 리듬을 타듯 뱌암을 중얼거리며 물가에 무성한 풀 쪽으로 들어섰다.
“뱌암- 뱌암- 뱌암- 뱜- 뱜..?”
말이 빨라지니 새로운 말이 됐다. 순간 풀 많은 데로 가지 말라던 앞 음절도 떠올랐다.
“풀에 있는 뱜이 모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좋은 건 아닌 거 같다고 유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도대체 뱜이 모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나는 슬그머니 풀숲에서 뒷걸음질 쳐 흙길로 나왔다. 이제 걸어갈 수 있는 방향은 한곳 뿐이었다. 마을로 향하는 길. 유나는 마당에서처럼 발을 질질 끌 듯 걸으며 할머니 집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인제 물고기나 잡아야겠다..”
매일같이 눈물 콧물을 쏟아내던 유나의 눈물 꼭지는 그날을 끝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