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골집 대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었다. 유나가 사는 도시의 집도 낮에 대문을 잠가두지는 않지만 이렇게 아무나 들락거릴 정도로 활짝 열어두지는 않는다. 저수지에서 길이 막혀 돌아온 유나가 냇가로 가려면 할머니 집을 지나가야 하는데 대문이 어서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려 있었다. 유나는 열린 대문으로 조용히 들어와 집안을 둘러보았다. 어디 간다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배를 두둑이 채운 누렁이만 껌뻑껌뻑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마루에는 밥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마실 다녀오듯 했으니 당연히 배가 출출했다. 희한하게도 유나가 하루하루 덜 달려나갈수록 허기는 더해지고 있었다.
유나는 마루로 올라앉아 덮개를 젖혔다. 언제나처럼 밥상은 단출했다. 구별하기 힘들 만큼 잡곡이 잔뜩 섞인 밥에 김치와 나물이 다였다. 이곳의 나물들은 유나가 유일하게 구별할 수 있는 시금치나물이나 콩나물도 아니었다. 유나는 이름도 모르는 시커먼 나물을 하나 집어 소여물 냄새를 맡던 것처럼 코에 가져갔다. 생각 외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훅 들어와 허기를 돋구었다. 유나는 늘어진 나물 끄트머리를 아주 조금 베어 물었다. 만일을 대비해 힘을 주고 있던 미간은 저도 모르게 스르르 주름을 폈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유나는 들고 있던 나물을 쏘옥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뚫어져라 저를 보고 있던 누렁이의 큰 눈망울과 딱 마주쳤다.
“뭘 보냐! 내 께 훨씬 맛있지롱- 메롱-”
유나는 손으로 밥을 집어 먹었다. 숟가락을 쓰면 단박에 티가 나니 도구는 쓰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티 안 나게 요리조리 손가락으로 집어 먹은 후 완전범죄를 처리하듯 밥을 잘 섞어 뒀다. 며칠째 이런 방식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에 덕지덕지 남은 증거까지 다 핥아먹은 후 유나는 자신의 치밀함에 내심 만족하며 다시 덮개를 덮었다. 대략 배가 채워지자 행동은 아까보다 빠릿해졌다. 유나는 가벼워진 몸짓으로 신을 신고 누렁이 앞으로 괜히 크게 발을 구르며 걷다가 휙 방향을 틀어 대문 밖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이유 없는 질타와 핀잔을 날린 꼬맹이를 누렁이는 신기하다는 듯 껌벅거리며 쳐다보았다.
냇가는 대문 앞에서 고작 십 미터도 안 되는 곳에 흐르고 있었다. 문 앞길에서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보면 냇가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었고, 계단 몇 개를 밟고 내려가면 어른 종아리 정도 올라오는 높이에 어른 보폭 두 걸음 너비의 내가 흐르고 있었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 위쪽부터 내려오는 물은 맑디맑았다. 유나는 걸터앉을 수 있는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냇물 안이 훤히 다 보였다. 바닥에 깔린 아주 작은 돌멩이도, 그것들의 무늬도 무척 선명했다.
“피... 거짓말 쳤네..”
하지만 할머니가 말한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물고기가 어딨어. 피.. 어...?!”
순간 유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뭔가를 감지했다.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오빠가 펼쳐 든 매직아이 책을 들여다보듯 눈도 깜빡하지 않고 물속에 눈동자를 집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것 같던 그 속에서 움직이는 작고 가느다란 것들이 진짜 보이기 시작했다.
“어 물고기다! 물고기!!”
“여 집어 눠”
풀썩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돌아보니 언제 온 건지 할머니가 작은 바가지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할머니 여기 물고기!”
물고기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신이 난 유나는 방언 터지듯 저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있다 했자녀. 근디 니 물고기는 잡어 봤어?”
“안 잡았지만 잡을 수 있어요!”
카랑카랑한 말투엔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져 할머니는 웃음이 났다.
“쬐깐한 게 니처럼 드럽게 빨러서 잡기 힘들건디..”
“내가 더 빨르니까! 그니까 잡을 수 있지!”
“그랴 그럼. 마이 잡어 봐. 마이 잡음 그걸로 매운탕이나 끓여 먹든지.. 큭..”
유나가 잡은 송사리로 매운탕 끓일 생각을 하니 할머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유나는 그 웃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빨리 물고기를 잡고 싶었다.
“고 바가지에다 마이 담어와-”
저 텅 빈 바가지를 물고기로 가득 채우리라는 의지를 다지며 유나는 눈에 힘을 빡 주고 냇가에 손을 집어넣어 송사리들을 쫓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수도 없이 손을 휘둘러 물을 가르고 고기를 잡아 올렸다. 분명 송사리보다 더 빨리 손을 움직였는데 이상하게도 손을 펼쳐보면 스르르 사라지는 냇물뿐이었다. 유나는 약이 올랐다. 어떤 순간엔 송사리가 손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도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손을 폈을 땐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새 마을을 밝히던 해는 제 할 일을 다 하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유나는 언제 할머니가 돌아갔는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송사리들과 대치했는지 몰랐지만, 해가 비쳐 쨍하니 보이던 물 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고 보니 어느새 해가 산자락 뒤로 넘어가 있었다. 해를 닮은 동그란 바가지는 여전히 텅 빈 상태였다. 결국, 큰소리 빵빵 쳤던 유나는 그 시각이 될 때까지 그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바가지에 담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물고기가 일루 휙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또 이렇게 했는데...”
그날 저녁 내내 유나는 자기가 왜 물고기를 못 잡았는지, 그 작은 것들이 얼마나 빠른지를 설명하느라 자신이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할머니가 떠 주는 마지막 밥숟가락을 받아먹을 즈음엔 내일은 꼭 열 마리를 잡을 거라는 비장한 다짐까지 선언했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도 유나의 머릿속은 내일 치를 송사리와의 한판 승부로 가득했다. 오늘은 자기가 봐준 거라는 둥 종알거리던 유나가 어느새 조용해지자 할머니는 다 갠 빨래를 서랍장 안에 넣고, 안방 쪽 불을 끄고 건넌방으로 건너가 앉아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반짇고리를 열었다.
다음 날 아침, 유나는 눈곱이 낀 채로 자연스럽게 밥상 앞으로 와 앉았다. 거무튀튀한 것, 허옇고 누르스름한 것들로 차려진 밥상은 여전히 무채색의 오래된 동양화 같았다. 유나는 그나마 친근한 김치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썰린 조각이 왜 그렇게 다 큰지 마땅한 조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으차-”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가 마루로 올라앉으며 밥상 중앙에 메인 요리를 내놓듯 접시를 내려놓으셨다.
“와 계란 프라이! 어 소시지다!”
“인자 먹을 게 좀 있는겨? 어여 묵어”
예쁘게 부쳐진 모양은 아니고 노른자가 터져 나와 흰자와 섞인 모양이었지만 노르스름한 계란 프라이와 동그랗고 연한 핑크색의 소시지는 무채색 같았던 밥상을 한순간에 파스텔 톤으로 만들어 버렸다.
“케찹은요?”
“뭐?”
“케 찹! 토마토케찹!”
“토.. 뭐..? 이, 도마도? 그걸 같이 먹어야 혀?”
“아니 그냥 토마토 말고..”
유나는 설명하려다 말았다. 할머니는 왠지 케찹을 모를 것 같았다. 그래도 소금을 친 프라이도 먹을 만했고 계란을 씌우지 않은 동그란 소시지도 역시 맛있었다. 전보다 확실히 맛있게 밥을 먹는 유나를 보자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그릏기 맛나?”
“네! 근데 할머니는 왜 안 먹어요?”
“니나 묵어. 할미는 비려서 못 먹겠드라”
“뭐가요?”
“계란도 비리고, 소시지도 물컹거리고..”
“계란 프라이가 왜 비려요..?”
“원체 비린내 나는 겨 계란이. 어여 니나 묵어”
유나는 할머니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나 뽀얗고 노르스름하고 예쁘게 생겼는데 비린내라니! 할머니는 정말 특이하다고 유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못 먹는다고 다 먹으라 했으니 유나는 맘 편히 남은 계란 프라이를 제 밥 위로 가져갔다. 와구와구 먹는 유나를 보며 할머니도 씨익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거 갖구 가서 잡어 봐”
열심히 밥을 먹는 유나 옆으로 할머니는 뭔가를 쓱 밀어놓았다.
“이게 모예요...?”
입에 한가득 음식을 문 채 유나는 옆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오래된 삼베 저고리 천으로 만든 손잡이가 달린 그물망. 지난밤 할머니가 아랫목에 앉아 손수 만든 거였다.
“눈에 뵈지도 않는 놈들을 은제 손으루 잡어. 그걸로 혀”
유나는 그물망을 들어 올려보았다. 잠자리채 같기도 한데 더 작고 둥근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내심 유나의 반응을 살피며 식사를 이어갔다. 무심하게 툭 던져 놓긴 했지만, 속마음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뭐 이런 조잡하고 이상하게 생긴 게 다 있냐며 집어 던질 수 있는 맹랑한 아가씨였으니까.
“오늘은 백 마리나 잡아야지! 아싸-”
유나는 마치 잠자리를 채듯 그물망을 휙휙 휘두르며 좋아했다. 음식을 우물거리고 있던 할머니는 그제야 시원하게 음식을 삼키고 씩 미소를 지었다. 밥 먹는 내내 손에서 그물망을 내려놓지 않던 유나는 이곳에 와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밥그릇을 비우고 할머니가 만들어준 무기를 추켜든 채 신나게 마루에서 뛰어내렸다.
“할미는 밭에 댕겨올겨. 다른 데 가지 말고 개울서 놀구 있어 알았제?”
어느새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유나의 꽁무니 뒤로 "네~~" 하는 대답이 보였다 사라졌다.
“으이구 가스나.. 지 애비 어릴 때마냥 잘도 뛰 뎅기네...”
할머니는 못 말리겠다는 듯 도리질하며 깨끗하게 비운 유나의 밥그릇을 뿌듯하게 쳐다보고 밥상을 들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