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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Mar 11. 2024

작고도 어린, 곤졸

(4)

냇물을 들여다보는 유나의 표정이 어제보다 훨씬 비장해졌다. 오늘은 그럴싸한 무기도 갖췄으니 한번 해볼 만한 싸움 같았다. 유나는 얼음 땡 자세를 취하고 물속을 주시했다. 이 작고 빠른 것들은 어찌나 귀가 밝은지 유나가 슥- 조금만 발을 움직여도 파다닥 흩어져 사라지곤 했다. 아무도 없다고 믿게 해야 이 작은 것들이 바위틈에서 나와 물가를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다. 어제 온종일 대치하고 허탕 쳐가며 터득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어디 숨었지.. 얼른 나타나라..!’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유나는 물속에 손을 넣어 제가 움직일 만한 크기의 돌을 들어 올렸다. 숨어있던 송사리들이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 엉키기 시작했다. 유나는 얼른 할머니가 만들어 준 그물을 휘둘렀다. 워낙 작고 빠른 놈들이라 한 놈을 쫓는 건 무리였다. 많이 있어 보이는 곳을 공략해 그물을 휙 떠올렸다.


“잡았다!”


주르륵 물이 빠진 그물 안을 유나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작은 자갈 몇 개뿐 움직이는 송사리는 들어있지 않았다. 유나는 입을 삐쭉거리고는 다시 한번 물속으로 손을 넣어 더 큰 바위를 움직였다. 이번에도 송사리들의 대혼란이 시작됐고, 유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물을 휘둘렀다. 셀 수도 없는 그 무리가 다시 다 몸을 숨기고 사라질 때까지 유나는 열심히 물속에서 그물을 움직였다.


“야! 가만있어! 야!!”


“갸들이 바본 줄 알어- 누구 좋으라고 가만 있겄냐-”


처음 듣는 목소리에 유나는 고개를 들고 소리 나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산으로 이어지는 냇가 위쪽에서 지게를 진 아저씨가 재밌다는 듯 유나를 보고 있었다.


“그르케는 고기 못 잡는디”


“근데 아저씨는 누구예요?”


“니가 을영이 형 막내지?” 


“............”


유나는 처음 보는 아저씨가 아빠 이름을 들먹이자 순간 당황스러웠다.


“저기 당숙네, 그니께 니 집안 내 아저씨여. 근디 아저씨가 더 위여”


“아저씨는 몇 살인데요?”


“나이는 니 아빠가 많은디, 내가 니 아빠 삼촌뻘이여. 그니께...”


아빠를 알고 있다는 그 남자는 설명을 하려다 말고 개울 옆길을 따라 유나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말해준다고 니가 알겄냐. 암튼 아재가 더 위여”


가까이 보니 진짜 아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아저씨였다. 큰 오빠라고나 해야 할까? 근데 아빠보다 위라니.. 유나는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아재가 모예요?”


“아저씨를 아재라고 하는 겨. 기냥 그르케 불러”


“우리 아빠는 사십 살도 넘었는데”


“아재는 아적 사십 살도 안 됐으 미안혀, 건 그렇고, 뭐 잡혔나 함 뵈줘봐”


유나는 그제야 열심히 휘둘렀던 그물을 들여다보았다. 움직이는 게 있었다. 송사리 한 마리.


“어! 잡았다!!”


“지랄 맞게 휘둘러대더니 머리 나쁜 놈 하나 걸렸구먼” 


아재는 신나 하는 유나를 보며 웃었다.


“바가지 안 가져온 겨? 언능 가져와”


유나는 아빠보다 위라는 처음 보는 이 아저씨의 말을 들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오늘 송사리 묵고 배 터지게 해준다니께. 뻥인지 니가 보믄 되잖여”


유나는 이 아재라는 사람을 믿어보기로 했다. 개울 옆에 벗어둔 신발을 신고 폴짝거리며 집으로 뛰어갔다. 남자는 유나가 잡은 그물 속 작은 송사리를 보며 귀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잠시 후, 유나는 보고도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아재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그물을 휘두르기만 하면 우르르 송사리를 쏟아냈다. 바가지는 이미 송사리로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배 터지게 해주겠다는 말은 뻥이 아니었다. 분명히 비슷하게 움직이는 거 같은데 아재가 그물을 물속에 넣으면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송사리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유나는 바가지를 가득 채운 송사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숨을 바위를 찾지 못해 서로 엉켜 바가지 안에서 갈팡질팡하는 송사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잡아놓고 가만히 뜯어보니 다 똑같은 줄 알았던 송사리들도 큰 놈이 있고 작은놈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건 유나 손톱보다 더, 더 작았다. 새끼인 것 같았다.


“옜다 또 있다”


아재가 또 그물 안 송사리들을 바가지에 쏟아 놓으려 할 때, 유나는 바가지 한쪽을 툭 건드려 그대로 개울에 부어버렸다. 


“워매 조심혀야지이-”


아재는 개울에 엎어진 바가지를 허둥지둥 집어 들었다.


“으이그 도루묵 됐네” 


아재는 아까워 어쩔 줄 몰랐지만, 유나의 표정은 담담했다.


“괜찮여. 아재가 금방 다시 또 채울 수 있으. 걱정 말어”


아재는 다시 개울에 그물을 집어넣었다.


“그냥 엄마 아빠랑 살게 둘래요”


유나는 이유 없이 토라진 모습이었다.


“뭐? 뭐라는 겨..?”


불과 몇 분 전과 사뭇 달라진 모습에 아재는 눈이 둥그레졌다.


“그리구 이건 먹지도 못한댔어요”


“아니여- 송사리 매운탕이 을마나 맛나는디”


신이 나던 꼬맹이가 갑자기 무슨 연유로 돌변한 건지 아재는 알 수가 없었다.


“못 먹는대요. 할머니가”


“할미가? 왜?”


“.... 비려서”


“뭐어....??”


아재가 황당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유나는 발딱 일어나 개울 밖으로 올라갔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애가 싫다 하니 아재도 주섬주섬 바가지와 그물을 챙겨 들고 물에서 나왔다. 왜 저러는 겨..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재는 개울가에 세워두었던 지게를 들쳐메고 또랑또랑한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는 유나에게 소리쳤다.


“야, 같이 가야지이- 니 의리 없이 혼자 가는 겨-”


발 빠른 꼬맹이 아가씨는 먼저 휙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재도 허둥지둥 유나를 쫓아 할머니네 대문으로 들어섰다. 유나는 알지 못했다. 방금 만난 사람 좋아 보이는 그 아재가 앞으로의 시골 생활을 함께할 든든하고 친절한 친구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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