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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Mar 01. 2024

작고 어린, 곤졸

제5회 적도문학상 수상 (1)

새소리가 시끄러웠다. 

  짹짹 짹 짹짹짹 짹- 유일하게 소리만 들어도 알만한 놈들이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새끼손톱만 한 부리를 가진 갈색의 새. 밤새 목을 아낀 탓인지 아침의 참새 소리는 더 높고 짱짱했다. 유나는 잠에서 깨며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고막이 그 작은 부리에 쪼아지는 듯했다. 


  “아 시끄러…….” 


  꿈속 너머 아련했던 새소리가 실제 볼륨으로 현실화하니 따갑고 아팠다. 손으로 귀를 감싸며 일어나 앉은 유나는 눈꺼풀이 반 정도 내려앉은 얼굴로 방을 둘러보았다. 유나가 자고 있던 아랫목을 제외하고 다른 이부자리들은 다 개어져 널따란 문갑 위에 올려져 있고 방엔 덩그러니 혼자였다. 할머니네 안방은 원래 네모난 모양이었지만 옆에 붙어있던 건넌방과 벽을 트면서 ㄱ자 모양으로 넓어졌다. 마루에서 보면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정면에,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왼쪽 옆에 있는데, 이제 안방 안에서도 곧바로 건넌방으로 갈 수 있게 된 거다. 안방이 넓어졌고 건넌방도 똑같이 넓어진 셈이었다. 물론 부엌과 구들장으로 붙어있는 안방이 훨씬 따뜻하지만, 벽을 헐어 방 공기가 하나로 통하게 되면서 건넌방도 전보다 더 따뜻해졌다. 이제 안방은 건넌방이고 건넌방은 곧 안방이었지만 식구들은 아직도 버릇처럼 안방과 건넌방을 구분해 말하고 있었다.


  방을 둘러보는 사이 따가움에 적응한 유나는 귀를 덮고 있던 손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유나가 차지했던 자리는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누룽지 색을 한 아랫목이었다. 아직 불을 많이 때지 않을 때이지만 누렇게 변한 색 때문에 아랫목은 항상 따뜻해 보이는 곳이었다. 눈 뜬 지 몇 분이 지난 그제야 유나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방문 맞은편 뒷마당을 볼 수 있는 작은 창호지 창문을 열었다. 문에는 유나의 작은 손으로 잡기 적당한 동그란 쇠고리가 달려있었고 마주한 걸개에 얹혀있던 고리를 내려 문을 열자 말린 싸리나무 가지들을 듬성듬성 묶어 빼곡히 줄지어 놓은 담벼락이 보였다. 

  푸드덕- 갑자기 열린 문에 놀란 참새 몇 마리가 꺅- 하고 날아올랐다가 좀 떨어진 싸리나무 가지 위에 다시 내려앉았다. 이놈들은 아침이면 항상 이곳에 집합했다. 누가 불러 모은 것도 아니고 지들을 반기는 근사한 먹이를 차려 두지도 않았건만, 참새들은 마치 의식처럼 하루의 시작을 이곳 싸리나무 가지와 담벼락에서의 수다로 시작했다. 너른 앞마당과는 달리 창호지 창문과 뒤 담벼락 사이는 어른 폭으로 두어 걸음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의 소리는 무척 가깝고도 시끄러웠고 덕분에 할머니네 안방은 도저히 늦잠을 잘 수 없는 공간이었다. 


  “우리 집엔 세 마리밖에 없는데…….” 


   마당의 제일 큰 목련 나뭇가지에 가끔 들르는 참새를 떠올리며 유나는 시골이라 새가 참 많나 보다 생각했다. 막상 눈으로 빽빽하게 모여 앉은 모습을 확인하니 시끄러웠던 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유나는 작은 쇠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닫고 일어나 맞은편에 있는 어른 키 정도의 기다란 창호지 문고리를 잡았다. 창문에 달린 것에 비해 방문에 달린 쇠고리는 작은 주먹이 쑥 들어갈 정도로 훨씬 크고 두꺼웠다. 유나는 고사리 같은 작고 뽀얀 두 손으로 투박하게 걸려있던 고리를 잡아 힘껏 방문을 열었다. 


  유나가 마루에 나왔을 때 너른 마당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선선한 아침 공기는 반만 올려져 있던 눈꺼풀을 마저 힘껏 올려주어 말똥한 유나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유나는 마루 끝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마당을 둘러보았다. 마루에서 어른 종아리 정도 되는 아래로 신발을 벗어두는 길고 편편한 돌이 누워있었고, 거기서 또 돌계단으로 두 칸 정도 내려가야 마당의 흙을 밟을 수 있었다. 도시에 있는 유나의 집처럼 현관은 따로 없었지만, 할머니 집 마당은 유나 집 마당보다 훨씬 넓었다. 마루에서 내다보았을 때 마당 왼쪽 끝 쪽에 소 우리가 있었다. 진한 시골의 향기는 그곳에서부터 폴폴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유나가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제집과는 다른 시골의 아침을 마주하는 사이, 마루 옆 부엌에서 허연 김이 올라오는 빠깨쓰를 집어 든 할머니가 휘어진 문지방을 성큼 넘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일난겨?” 


  할머니는 마루 끝에 두 발을 대롱거리고 있는 유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빠깨쓰를 옆으로 비켜 오른쪽 옆구리에 얹듯 잡아들고 한발 한발 돌계단을 딛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허연 머리에 쪽진 할머니가 어쩜 자신보다 힘일 셀지도 모르겠다고 유나는 순간 생각했다. 


  “아적 눈곱도 안 떨어졌네. 누렁이 밥부터 줄겨. 니보다 훨 일찍 일났은께 밥도 먼저 묵어야제!” 


  소 우리 앞으로 간 할머니는 앞에 놓인 진갈색 구유에 푹 끓인 여물을 조심조심 들이부었다. 아직 뜨거운지 피어오르는 김 속에 할머니 얼굴이 잠시 묻혔다 드러났다. 


  “엄마 아빠는요?” 

  “이? 뭐라고?” 


  소여물 주느라 바쁜 할머니는 유나의 말을 단박에 알아듣지 못했다. 아침이라 유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흠 흠. 목을 가다듬으며 유나는 늘어뜨리고 있던 다리를 들어 올려 마루 끝에 발딱 섰다. 그리고 소 우리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아빠 어디 갔어요―오?” 

  “이- 어디 가긴. 집에 갔지. 아적 뜨거 이눔아……” 


  할머니는 김이 나는 여물을 뒤척거리며 다가오는 소에게 기다리라고 한 번씩 손을 저으셨다. 누런 소는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며 다가서려다 물러서고, 또다시 다가오려고 했다. 


  “누구네 집이요?” 

  “됐다 이눔아, 이자 묵어라. 뜨건대 들어 댐비기는…….” 


  끝까지 누런 소를 타박하며 할머니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구유 옆에 세워두고 속이 빈 빠깨쓰를 가볍게 집어 들고 돌아섰다. 이제야 비로소 할머니는 유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누구네 집? 누구네는 니네 집이지.” 

  “니네, 집…….?” 


  어려운 단어도 아니었건만 유나는 할머니 말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르게 누가 늦잠 자랴. 니가 안 인나니께 엄마랑 아빠랑 기냥 올라갔잖여” 


  유나의 똘망한 두 눈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 나는요....?!” 


  할머니는 보일 듯 말 듯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부엌문 앞까지 걸어와 문지방에 오른발을 걸치고 유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니? 니는 인자 할미랑 여기서 살어야제” 


  할머니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부엌으로 쏘옥 몸을 감췄다. 약 3초가량, 유나는 정지화면처럼 서 있었다. 그리곤 점프하다시피 마당으로 뛰어내려 한걸음에 대문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아----” 


  7살 어린애 발이 어찌나 빠른지 빠깨쓰를 던져두고 허둥지둥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는 어느새 냇가 위 다리로 향하고 있는 유나를 담장 너머로 확인하고 혀를 찼다. 


  “으메, 바퀴를 달았나. 아야- 벌써 기차 타고 갔어어-” 


  할머니는 유나를 쫓아 허둥지둥 대문을 나섰다. 돌다리 위를 건너는 유나의 짧은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르게 누가 늦게 일나랴- 아침도 안 처먹은 게 뭔 기운이 뻗쳤어. 유나야- 유나야 이것아-” 


  식전부터 할머니는 기운을 다 쓰고 있었다. 나름 있는 힘을 다해 걸음을 빨리했지만, 유나는 작아서인지 빨라서인지 이미 보이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뜀박질을 했다. 그동안 두 다리는 쪼그려 앉고 걷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다리는 뜀박질이라는 행위를 아예 잊은 것처럼 살아왔다. 그럴만한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요 조막만 한 손녀딸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달리는 바람에 걷는 것만 할 줄 알았던 다리는 오랜만에 뛰었고 덕분에 심장도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유나는 흙길 저만치에 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놀란 심장은 할머니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거로 앙갚음하려는 듯했다. 가슴에 남은 여진을 부여잡으며 할머니는 유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흙바닥에 넘어졌는지 유나의 무릎엔 흙이 묻었고 그 틈으로 조금씩 피가 번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얼른 손에 침을 묻혀 핏물에 물들고 있는 흙을 털어내었다. 


  “가서 약 발르자. 언능 인나 봐-” 

  “엉.. 엉.. 엄마...” 


  할머니의 애원에도 유나는 꿈쩍하지 않고 우는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고, 할머니는 손바닥과 손등으로 손녀가 뿜어내는 진득한 액체를 슥슥 닦아냈다. 할머니는 호소하기를 단념하고 유나의 기운이 다하길 기다리기로 했다. 목청 좋은 유나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을 한동안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유나에게는 두 살, 세 살 터울의 언니 오빠가 있었다. 연년생을 국민학교에 보내며 장사를 하던 유나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막내에게 소홀했다. 다행히 눈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막내는 낯도 덜 가리고 아무하고 잘 적응하는 성격이었다. 부모는 큰애들이 겨울방학을 할 때까지 몇 달 정도만 유나를 시골 할머니 집에 떼어두기로 했다. 부모가 조금 편하자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유나가 언제 시골살이 경험을 해보겠냐며 막내를 위한 결정인양 포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제, 유나는 오랜만에 할머니네 가자는 말에 소풍 가듯 따라나섰다. 그렇게 유나네 가족은 할머니 집에 도착했고, 진짜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밝디 밝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 엄마와 아빠, 오빠와 언니는 유나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유나만 두고 죄다 집으로 가버렸다. 소풍 온 줄 알았던 그곳은 아빠가 몇 십 년 전 나고 자란 곳이었다. 수도권 집에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몇 시간 걸려야 도착하는 곳. 유나네 집과 달리 주변에 건물보다는 풀과 나무,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곳. 그리고 아빠의 엄마가 아직 홀로 살고 계신 시골의 한 작은 동네. 이제 유나는 아빠의 어린 시절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할머니와의 시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마을의 이름은 곤졸이었다.     


  그날 이후 유나는 아침이면 대문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다음 날은 넘어진 곳보다 조금 더 가서 쪼그려 앉아 울었고, 다음 날엔 그보다 더 가서 주저앉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나타나 유나를 업고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마치 업고 오기 놀이라도 하듯 유나와 할머니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을 마치 할머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듯 할머니 기운을 빼고 말도 않고 심통만 부려댔다. 


  “나 혼자 잘 거야! 할머니는 건넌방 가.” 


  어차피 한 공간이었건만 유나는 할머니를 건넌방으로 쫓아냈다. 유나의 결론은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할머니 때문에 자기만 버려진 게 맞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 시골 동네에 혼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기만 놓고 갈 일은 없었을 거다. 7살 여자아이가 내린 나름 논리적인 결론이었다. 

  유나는 할머니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할머니 탓을 하면서 할머니가 가져오는 밥상에 털썩 앉으면 왠지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꼬맹이 소녀의 자존심을 그렇게 할머니의 밥상을 멀리하는 것으로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런 유나를 위해 할머니는 여름에 남긴 옥수수며 감자며 고구마를 찌고 구워 마루 한편에 놓아두고 대문을 나섰다. 

  처음엔 정말 하나도 그 수가 줄지 않아 ‘독한 년’이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 정도 지나자 덮어두고 나간 밥상의 음식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한쪽만 파먹은 옥수수를 티 나지 않게 알이 박힌 쪽이 보이게 놓아둔 걸 확인했다. 하지만 그런 밥상을 치우면서도 할머니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으이구 밥을 또 한 개도 안 묵었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으이그 유나 무셔워라.” 


  유나는 티 안 나게 먹은 걸 할머니가 알아채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왠지 할머니를 골탕 먹이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빳빳하게 곧추 세우고 있던 자존심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는 건 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유나는 더 이상 급하게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가지 않았다. 마루에 앉아 신발을 신는 것도 평소와 달리 꾸물거렸다. 할머니가 소여물을 주고 빈 빠깨쓰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폴짝 마당으로 뛰어내린 유나는 괜히 소 우리 쪽을 힐끗거렸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면 바로 대문이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고 가로로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소 우리를 마주한 뒤 누런 소를 빤히 쳐다보았다. 


  “뭘 봐! 이게 맛있냐…….?” 


  유나는 아직 온기가 남은 여물을 손으로 집어 들고 콧구멍에서 손가락을 빼 가까이 댔다가 우엑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말 못 하는 짐승에게 괜한 심통을 쏟아 부은 유나는 터덜터덜 대문으로 향했다. 

  그날 유나는 뛰지도 않고 주저앉아 울지도 않고 가장 멀리까지 갔다. 그렇게 유나가 다다른 곳은 저수지 앞이었다. 언젠가 설날, 저수지가 꽝꽝 얼어붙어 그 위를 가로질러 온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쓱쓱 발로 밀며 미끄럼을 타다 보면 어느새 맞은편 마을 입구에 도착했었다. 유나는 이 저수지 건너편에 버스든 기차든 집으로 가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이 얼어붙어 있지 않은 지금은 저수지를 빙 둘러 한참을 돌아가야 했고 그 길은 잘 몰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언니 오빠도 없는 눈앞의 저수지는 배가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넓디넓은 바다처럼 보였다. 그날을 끝으로 매일 눈물 콧물을 쏟아내던 유나의 눈물 꼭지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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