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당숙네 집에는 전화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흑백이었지만 작은 티브이도 있었다. 티브이는 당숙 할머니 방에 있었는데 유나가 당숙네 갈 때마다 아침이건 낮이건 밤이건 항상 티브이가 틀어져 있었다. 나이가 많은 당숙 할머니는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나 보다고 유나는 생각했다.
유나는 처음 당숙 할머니를 봤을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즈이 왔어여-” 하며 마루에 올라서고 유나도 따라 올라서자 잠시 후, 방에서 “이이..” 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당숙 할머니는 앉은 채로 엉덩이를 밀며 문지방까지 나왔고 문고리를 잡고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셨는데, 처음 그 모습을 본 유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며 할머니 다리 뒤로 숨고 말았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새하얀 머리에 얼굴엔 거뭇한 것들이 잔뜩 있었고, 허리가 ㄱ자로 꺾여 난쟁이처럼 아주 작은 당숙 할머니 모습은 어린 꼬맹이에게 무척 생경한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손으로 얼른 유나 입을 막아주었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도 아마 당숙 할머니는 유나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알아보지 못했을 거였다. 이후에도 갈 때마다 유나를 처음 보는 애인 양 한참 쳐다보시는 걸 보면 눈이 잘 안 보이시는 게 분명했다. 당숙 할머니를 만나고 난 후부터 유나는 제 할머니가 무척 젊어 보였다. 당숙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지 않고 꼿꼿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함께 당숙네 들른 그 날도 “즈이 왔어여”하는 할머니 말에 “이 이..” 하는 대답이 먼저 방에서 들렸다. 할머니를 따라 마루에 오른 유나는 쪼르르 당숙 할머니 방으로 다가가 문밖에서 까딱 인사를 하고 전화기 있는 곳으로 갔다. 할머니는 유나더러 수화기를 들게 하고 전화기 다이얼을 돌려주면서 당숙 할머니와 계속 대화를 하셨다.
“날이 제법 추워졌쥬. 두껀 이불은 끄내셨슈?”
다이얼을 다 돌린 할머니는 당숙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셨고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유나야-”
어린 막내딸의 목소리만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반가움도 높고 컸다.
“엄마 모해? 방학은?”
“아직. 이제 금방 할 거야. 우리 유나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지?”
“엉. 근데 있잖아, 엄마 여기 올 때 저수지로 건너오면 안 돼”
“저수지?”
유나의 화제는 주로 처음 해본 일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든지, 지게에 타봤다든지, 소에게 먹이를 줘봤다며 자랑했고 옆에서 그 소리를 전해 들은 언니와 오빠가 좋겠다며 부러워하면 유나는 더 신나게 뭘 하고 놀았는지를 나열했다.
“어 그래. 근데 왜 안돼?”
“엄마, 사실은 거기에..”
순간 뭔가 떠오른 유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재는 이 얘기가 곤졸 사람들만 아는 비밀 얘기라고 했다. 이렇게 엄마한테 말해줘도 되는 건지 순간 갈등했다. 괴물이 이 사실을 알고 해코지라도 하는 건 아닐까 잠시 망설이다 손으로 수화기를 감싸고 귓속말하듯 소리를 낮췄다.
“이게 비밀이라서 나중에 오면 말해줄게. 근데 절대로 저수지로 오면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어”
엄마도 유나를 따라 귓속말하듯 작게 대답했다. 대체 무슨 얘긴가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마당에 있는 아재는 겨울맞이 집안 단속을 하느라 바빴다. 소 우리에 차디찬 겨울바람이 스며들지 않게 막아주었고 마당에 있는 수도도 볏짚과 두꺼운 천으로 감싸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당숙 할머니 방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유나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할머니들을 돌아보았다. 아랫목에 나란히 누워있는 두 할머니는 주무시는 건지 얘길 나누는 건지, 조용했다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집에서 보던 만화도 안 나오고 티비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유나는 조용히 일어나 마루로 나가 슬그머니 미닫이문을 열고 마당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용이 아재를 쳐다보았다.
“니 심심허지?”
수도를 단단히 감싸놓고 정리를 하던 용이 아재가 유나는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왜 일만 해요? 언제 다해요?”
“아적 좀 남었는디. 여기 다하믄 인자 너네 집도 해야지”
“우리 돼지도 추우니까?”
유나는 겨울 채비를 마친 당숙네 외양간을 보며 할머니 집의 누렁이가 생각났다.
“니네 집에 돼지가 어딨디야?”
“누렁이가 돼지에요. 맨날맨날 먹기만 하니까”
아재는 유나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심심하믄 건넌방 가서 그림 그리고 놀어. 거기 안 쓰는 공책이랑 연필들 있을 겨. 근디 니 한글은 쓸 중 알어?”
“나 글씨 쓰는데! 언니 오빠 책으루 내가 공부했어요”
“으메 증말? 유나 똑똑허네-”
용이 아재 칭찬에 유나의 입술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진짜로 유나는 혼자 한글을 깨쳤다. 두 살 세 살 터울의 언니 오빠가 학교에 입학해 다닐 때부터 유나는 자기도 학교에 보내 달라고 엄마한테 떼를 썼다. 유나의 집은 학교와 가까워서 언니 오빠가 끝날 시간이 되면 학교 앞까지 나가 있다가,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지가 가방을 건네 들고 냅다 집으로 뛰어왔다. 언니 오빠가 집으로 오는 중간에 친구들과 문방구에서 뽑기를 하거나 떡볶이를 사 먹는 동안, 먼저 집에 도착한 유나는 마루에 앉아 책들을 죄 꺼냈다. 그리곤 제 공책과 연필을 가져와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글씨를 따라 썼다. 한글을 깨쳐야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었던 유나가 그렇게 베껴 쓴 공책만도 열 권이 넘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책에 있는 글씨를 따라 썼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유나는 1, 2학년 국어책을 거의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연년생 언니 오빠는 같이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쳤는데, 막내를 따로 공부시킬 새가 없었던 엄마 아빠는 샘 많은 막둥이가 알아서 글을 읽고 적으니 기특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기가 살아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짓이 우습고 또 대견했다.
아재가 학교 다닐 때 썼던 건넌방에는 책상도 있고 책꽂이에 책도 꽤 많았다. 유나는 책상을 살펴보다 공책보다 좀 크고 두꺼운 스프링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를 열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용이 아재가 그린 것들이었다. 유나는 “우와-”를 연발하며 한 장 한 장 노트를 넘겼다.
용이 아재는 걸어서 40분 정도 가야 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버스를 타야 하는 읍내 고등학교에 다녔다. 큰 형님 둘은 아재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큰 도시에 있는 지방 국립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셋째 누나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읍내 고등학교에도 다니지 않은 채 취직을 해서 도시로 나갔다. 누나는 막둥이 용이 아재도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유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건 사실 따로 있었다. 공부가 아니라 그림. 용이 아재는 사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형 누나들이 쓰다 남은 노트에 아무거나 그림을 따라 그렸는데 특히 누나가 아재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좋아했다. 형 누나들이 학교에 다닐 때 만들기나 그림 숙제는 거의 막내 용이 아재가 해주곤 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미술을 배워 대학을 간다거나 대학을 가기 위해 그림을 배우러 다닌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던 때였다. 아재 자신도 형들보다 공부 머리가 없는 자신은 그냥 여기 남아 어머니 모시며 지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발현되지 못한 용이 아재의 재능은 그렇게 그의 건넌방 스케치북에 조용히 보관되어 있었다.
일을 마친 용이 아재는 할머니 집으로 건너가 제집처럼 이곳저곳을 손봐 주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만지기만 하면 뭐든 고쳐지고 단정해지고 튼튼해졌다. 유나도 아재 집에서 가져온 빈 노트랑 연필을 마루에 모셔놓고 그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비닐을 잡아준다던가 못을 집어주며 나름의 도우미 노릇을 했다. 할머니는 그사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고구마랑 감자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재와 함께할 저녁상을 준비하셨다. 고구마 감자가 구수하게 익어가는 냄새와 함께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할 즈음 아재의 일도 마무리되었고, 온종일 마을을 비추던 해도 제 할 일을 마치고 산등성이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