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참 동안 적당한 나무판을 고르던 용이 아재는 하나를 선택해 지게에 올려보았다. 맞춘 것처럼은 아니었지만 대략 안성맞춤이었다. 튼튼한지 손바닥으로 몇 번 두드려보고는 옆에 서서 동그랗게 올려다보고 있던 유나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불편할 껀디.. 그래도 탈 겨?”
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 아재를 본 날, 유나는 아재가 지고 있던 지게를 생전 처음 보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 위에 올라타면 재밌을 거 같은 모양이었다. 아재는 유나를 번쩍 들어 올려 나무판 위에 앉혔다.
“어뗘? 괜찮여?”
“와 디게 높다-!”
아재는 조심스럽게 어깨에 끈을 매고 으차- 기합 소리를 내며 유나를 태운 지게를 지고 일어섰다.
“조심 혀. 앞에 잘 잡고”
“와- 재밌다재밌다-”
유나는 뿔처럼 위로 뻗은 지게 윗부분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아재가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하자 유나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말 타는 거보다 훨씬 재밌다- 아재 더 빨리요!”
“그 리어카 말? 그깟 거랑 비교가 되나. 꽉 잡어. 인자 엄청 빨리 갈겨”
유나는 조그만 손에 꽈악 힘을 주고 질주에 대비했다. 처음보다 빨라진 걸음 때문에 유나도 더 많이 흔들렸지만, 그만큼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밭에 갈 채비를 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던 할머니는 시끌시끌한 웃음소리에 당숙네 쪽을 쳐다보았다. 유나를 지게에 태운 아재가 대문 밖으로 나와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행차 나가시네. 유나야아- 꽉 잡어-”
목을 빼고 소리를 질렀지만, 신이 난 유나와 지게를 지고 있는 아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점점 멀어졌다.
“아이고 자빠지믄 큰일나는디.. 하긴 더 무건 나뭇짐도 맨날 들어다 나르니께..”
둘이 사라진 뒤에도 흙길에 떨어졌는지 유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났네 신났으...”
할머니는 피식 웃고 수건을 머리에 고인 후 목장갑과 작은 칼이 들어있는 고무 다라를 머리에 올렸다.
“신났으- 신이 났네 신이 났으-”
할머니는 노래 부르듯 같은 말을 흥얼거리며 밭으로 향했다.
아재와 유나가 도착한 곳은 저수지 앞이었다. 일전에 유나가 혼자 달려왔던 곳이기도 했다.
“아재, 여기 언제 얼어요?”
유나는 저 혼자 건너지 못한 넓디넓은 저수지를 보며 물었다.
“이거 다 얼라믄 아적 멀었제. 왜? 썰매 타고 싶어?”
“엄마랑 아빠랑 건너올래면 빨리 얼어야 하는데..”
유나에게 저수지가 얼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단절된 길이 개통된다는 의미였으니까.
“이거 얼기 전에 올 겨. 안 얼었음 기냥 저짝 길로 오믄 되지”
“우리 전에는 일루 건너왔는데”
“그러다 괴물한티 잡아먹히믄 어쩔라고?”
용이 아재는 화제를 바꾸며 장난기에 시동을 걸었다.
“괴물이여...?”
“오메 유나 몰르는구나.. 저 안에 괴물 살잖여-”
유나는 그날 저수지에 관한 대 특급 비밀을 전해 들었다. 이곳 곤졸 사람밖에 모른다는 저수지 괴물은 날이 따뜻할 때는 없는 것처럼 조용히 물속에 숨어있다가 날이 추워져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물속이 답답해져서 밖으로 나오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물이 얼기 시작해 얼음이 단단해지면 제아무리 괴물이어도 그 얼음을 깰 수가 없어 물 안에서 얼음을 깨려고 쿵 쿵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마을에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들린다고 했다. 아재도 어릴 적 한 겨울밤에 그 소릴 들은 적이 있는데, 저러다 괴물이 얼음을 다 깨고 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 밤새 한숨도 못 잔 적이 있다고 했다. 괴물이 그렇게 끈질기게 두드리다 보면 얇게 언 곳이 쩍 갈라지기도 하고, 어느 곳은 괴물의 주먹질 때문에 얼음이 위로 불쑥 올라오기도 한단다. 그러다 겨우내 얼음을 두드린 괴물이 지쳐 갈 즈음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저수지 얼음도 스르르 녹기 시작하는데 그럼 괴물은 따뜻해지는 물 온도를 느끼고 주먹질을 멈춘 후 다시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
“바보. 그때 나와야지!”
“괴물 나오믄 니 어쩔 건디? 안 무셔?”
용이 아재의 장난기는 여전히 진지하게 시동이 걸려있었다.
“아, 나오면 안 되는구나.. 그럼 빨리 얼음이 얼어야 하는데...”
“걱정 말어. 이놈이 머리가 나쁜 놈이라 얼음이 꽝꽝 얼어야 지가 갇힌 걸 안디야. 평생 못 나올 겨”
“엄마랑 아빠랑 건너올 때 나오면 어떡해요?”
유나는 사뭇 심각했고 용이 아재는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했다.
“얼음이 얼믄 여기서 가만히 들어보믄 알어. 괴물이 얼음 깰라고 쿵 쿵 두드리는지 쉬고 있는지. 근디 소리 날 때는 여 있으믄 안 뒤야. 괴물이 갑자기 확-! 뛰 나올 수도 있는 겨”
“악--”
용이 아재가 예상한 대로 유나는 괴물이 튀어나온다는 대목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마 당분간 유나는 저수지 쪽으론 얼씬도 하지 않을 거다. 용이 저 자신이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아재와 돌아오면서도 유나는 지게 위에서 멀리 보이는 저수지를 자꾸 돌아보았다. 차라리 엄마 아빠가 얼음이 얼기 전에 왔으면 했다. 그러면 그 위를 건너오려는 위험한 생각은 안 할 테니까. 괜히 그 위를 가로질러 오다가 갑자기 괴물이 얼음을 깨고 나와버리면 큰일이다.
유나는 엄마 아빠한테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달리기도 잘 못 한다. 엄마도 잘 못 뛸 것 같았다. 한 번도 엄마가 뛰는 걸 못 봤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유나는 지난번 혼자 왔을 때 그 앞에서 크게 소리 내서 울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소리를 듣고 괴물이 나타나 하마터면 아무도 몰래 잡혀갈 뻔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말한 뱜이 뱀이라는 것도 용이 아재 덕에 알게 되었다. 유나는 고개를 돌려 저수지를 뒤로하며 다시는 절대 혼자 저수지 근처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유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잠들 때까지 할머니에게 저수지 괴물 얘기를 들려주었다. 따로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아랫목 옆자리에 이부자리를 펴는 할머니를 유나는 건넌방으로 내쫓지 않았다. 저수지 괴물 얘기는 할머니도 다 아는 양 맞장구를 쳐주었고 그러니 절대 혼자서는 물가에 가면 안 된다며 할머니는 씩 웃었다. 유나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