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문은 바글바글 들려왔다. 큰 소음 속에서는 들리지 않았고 사위가 조용해져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었다.
그렇대…. 아니래…. 웃긴다…. 말도 안 되지…. 그러니까…. 바글바글…. 바글바글….
비웃음도 섞였었다. 마치 괴담 같아서 은주도 가볍게 흘려버렸다.
그런 척했다. 실은 관심 없는 척을 했었다. 웃기는 말이라고, 말이 되냐고, 은주도 남들처럼 비웃기도 한 것 같다. 다수가 그렇게 치부하는 분위기에서 그녀 혼자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용기의 문제였고 은주는 주로 대세에 묻어가는 부류에 속했다. 얼떨결에 아들이 시켜서 해 본 MBTI 테스트 결과도 그녀를 그런 유의 사람으로 말했다. 그래서 다들 하듯이 웃긴다며 맞장구를 쳤고, 꽁무니로는 슬그머니 뇌의 어느 주름엔가 소문을 저장했다.
몰래 저장해둔 소문은 은주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뭉근히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이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그 기억을 붙들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온전히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믿고 싶었던 간절함도 티 안 나게 슬그머니 힘을 보탰는지 몰랐다.
은주가 드디어 소문의 실체를 발견한 건 그로부터 넉 달가량이 지난 후였다. 그사이 그녀의 마음은 오락가락했었다.
것 봐…. 역시 웃기는 소문이었네. 진짜였음 이렇게 사람들이 모를 수가 있겠어.
하다가도,
아냐…. 진짜일 수도 있지. 괜히 연기가 났겠어? 뭐든 괜히 피어오르는 연기는 없단 말이지.
주방에서 혼자 중얼거리다 남편과 아들의 요상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남편은 그것도 갱년기 증상이냐고 물었고 복학생 아들은 피곤하면 좀 쉬라고 서툴게 걱정을 표현했다.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에 은주 자신도 스스로가 걱정되기 시작할 즈음, 그녀는 결국 그것을 발견했다. 황당했던 건 그것이 그녀가 지나치던 일상의 길들 위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무수히 지나쳤을 그것이 왜 그제서야 보였는지 그녀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은주가 매일 저녁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친 후 전 국민의 유산소 운동인 공원 걷기를 하기 위해 들락거리던 산들공원에 버젓이 있었다. 공원으로 통하는 열 곳 남짓한 샛길의 한 끄트머리에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맞으며 그것, 공중전화 부스가 분명히 서 있었다.
발견한 그 날은 은주 역시 일개미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대세의 움직임에 놓여 있을 때였다. 흐름에서 이탈하는 짓은 해 본 적도 없거니와 막상 눈에 띈 그것이 소문의 그것이 맞는 것인지도 반신반의하여 선뜻 다가가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진짜가 맞는가. 정말 가능한가. 헛것이 보인 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에 은주는 그날 밤 잠을 설쳤고, 다음 날 일부러 사람들이 헛헛한 시간대를 선택해 다시 공원을 찾았다.
밝은 시간에 와서 보니 그곳은 호수를 가운데 둔 둥근 공원의 동쪽 후미쯤 되는 곳이었다. 부스에 칠해진 하늘색 페인트는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 한눈에도 오래된 인상을 풍겼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았던 걸까. 여태 왜 이걸 한 번도 못 봤을까. 다시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끼이익- 뻑뻑해진 관절 접히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은주는 조심스럽게 부스로 들어갔다.
죽은 날짜를 누르면 된다나. 하긴 죽은 사람들은 그게 생일이니까.
그녀는 두개골 주름에서 찬찬히 소문을 꺼내 들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누가 그러라 한 것도 아닌데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고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얄상한 핸드폰에 길든 탓인지 오랜만에 잡아본 수화기는 무겁고 투박했다. 귀에 닿은 차가운 묵직함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진짜야…? 가짤까…? 헛소문일까…? 사실일까…?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지닌 채 은주는 소문이 하라는 대로 숫자를 떠올리며 꾹꾹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버튼을 누른 손이 쉬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가짜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한 번만 듣고 싶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말을 뱉으며 손가락을 거뒀다. 그리고 약 사 초 후, 기다란 연결음이 들렸다.
헉.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뭐야, 진짜 신호 가는 거 맞아?
당황하고 놀라는 사이 네 번째 연결음이 끝났다. 그리고 딸깍.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오-
아빠였다. 요, 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진짜 그녀의 아빠 목소리였다. 삼 년 전 마지막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하늘로 보내드린, 그녀의 아빠가 맞았다.
은주는 그날 기절할 뻔했다.